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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제목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 최금옥 교구장
출처
날짜
2007년 6월 26일 화요일
조회수
3765
뉴스저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탓에 이사를 자주 하게 되어 한 곳에서 교회생활을 오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척이나 사모하였기에 난해한 성경 구절들을 대할 때면 그 말씀들을 속시원히 풀이 받고 싶었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가르치는 목자를 만나 평생 섬기며 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기도원과 부흥성회를 찾아다녀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는 항상 갈급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본교회로 인도받아

1992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님으로부터 이재록 목사님의 '영혼육' 설교 테이프를 건네받고 테이프 첫 면부터 마지막까지 듣는 동안 내 영혼은 기뻐 뛰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십자가의 도' 설교테이프를 들으면서는 평소 궁금하게 여겼던 '선악과를 두신 이유'와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등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설교 테이프 앞면에 적혀 있는 교회 주소를 보고 만민중앙교회를 찾아 나섰습니다.
막상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보니 정말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때 귀한 교회와 목자를 만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뜨거운 감사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이 송이꿀같이 달아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낮에는 파출부, 우유배달 등의 일을 하며 야간에는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수업이 끝나면 곧장 교회로 가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2시간 정도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바쁜 생활이었지만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이 곤할 때면 이재록 목사님의 '음성전화사서함' 환자기도를 받고 다시 힘을 얻어 일터로 나가곤 했습니다.

뜨겁게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가 되니

1996년 1월 초, 교구 식구들과 함께 사택을 찾아가 당회장님께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당회장님! 올해 100명 이상 전도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하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 때 당회장님께서는 "하나님! 1996년도에 100명 이상 전도를 목표로 삼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전도 목표를 꼭 이루어 목자의 기도를 보장해 드려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할 수 있을까' 항상 궁구하며 지혜를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의 지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본교회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기사와 표적을 담은 사진들을 모아 전도에 활용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모아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칠삭동이가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살아나 지금은 잘 자라 밝게 웃고 있는 모습, 뇌성마비로 뒤틀리고 굳은 팔이 펴진 모습, 뇌졸중으로 들것에 실려와 기도받고 일어선 모습, 썩어들어 가는 손이 치료받아 새 살이 돋은 모습, 교통사고로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할 여인이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은 후 목발을 버리고 기뻐 뛰며 감격해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보여 주며 전도를 하면 대부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마음문을 열게 되지요. 이뿐 아니라 힘들고 곤고했던 지난날의 제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현재 변화된 모습을 대비해 보여 줄 때 사람들은 많은 은혜를 받고 마음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지인 만민중앙소식을 적극 활용하였는데 제 이름과 연락처를 새긴 고무인이 찍힌 종이를 만민중앙소식에 붙여 가가호호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신문을 받아 본 사람들이 제게 전화를 걸어 궁금한 내용을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궁금해하거나 오해가 된 부분들을 대화로써 해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 명, 두 명 전도가 되어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희열이 넘쳐났습니다. 저는 주로 공단 지역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이 지역 일부에서는 가출한 남녀 청소년들이 혼숙을 하며 본드를 흡입하는 등 난잡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이라면 어디인들 못 가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젊은이가 저와 대화하기를 원해서 집으로 찾아가게 되었는데 다섯 명의 친구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니 처음에는 반응이 냉랭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며 은혜를 받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녹아져 여섯 명 모두가 교회에 등록하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 지역에서 동거하던 부부들이 본교회에 인도받아 이제는 남부럽지않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술과 도박으로 세월을 보내던 많은 분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점점 변화되어 이제는 뜨겁게 전도에 열중하고 계시기도 하지요. 이렇게 제 마음은 항상 영혼 구원에 있어 하루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아까워서 텔레비전은 전혀 보지 않고 빨래하는 시간, 밥먹는 시간도 일 분 일 초를 아껴서 하루에 100여 가정, 어떤 때는 약 200 가정의 대문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손이 부르트면 볼펜으로 대문을 두드리면서 열심히 전도에 힘썼습니다. 한편, 교회에서 항상 기도하고 있는 세계선교에 저도 나름대로 이바지하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을 찾아보니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 곁에 있었습니다. 구로공단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비롯한 많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직접 증거하여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한 다음, 그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 곳에서 복음을 증거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한 교회에서 자격을 갖춘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 수고 등이 필요한가? 그러나 스스로 이 나라를 찾아온 그들에게 복음을 잘 전파하고 양육하여 다시 보낸다면 너무나 쉽게 세계선교가 이루어지고, 그토록 기도하시고 애쓰고 계시는 목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까?' 하면서 믿음으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진실 앞에는 모든 것이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파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밀가루, 쌀, 김치, 라면, 로션 등을 사들고 찾아가 전도했습니다. 옷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옷을 주고 이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불을 가져다주며 부지런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한두 번 찾아가서 실패했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끈기있게 찾아가 하나님을 증거하면 그들도 진실과 사랑을 느끼고 결국 교회에 나왔습니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된 외국인들이 저를 '미스 최'라고 친근하게 부른답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할 따름입니다.

112명을 전도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

1996년 한 해 동안 112명을 전도,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목자의 기도를 보장해 드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요. 그래서 1996년 한 해의 수고를 인정받아 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성지순례 대상자로 선정되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립니다.
제 마음은 단지 도구로 사용되는 호미와 같은 마음입니다. 김을 매는 호미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김을 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인의 손에 이끌리어 도구로만 사용되듯이 저 역시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고 주인으로부터 버림받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더욱더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