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간증

제목
하나님이 아빠가 돼달라는 엄마소원을 들어주셨어요 - 이나미 권찰 (동경타바타만민교회)
날짜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조회수
13427
뉴스 이나미 권찰 (동경타바타만민교회)

엄마 최정순 권사(왼쪽)와 다정한 포즈를 취한 이나미(시미즈나미) 권찰

저는 일본 도쿄 인근 사이다마 현에 살고 있는 29세 가정주부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10년 동안 저를 괴롭히던 질병을 치료받지 못한 채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치료해 주시고 영적인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금 힘을 얻곤 합니다.

✦가정불화로 비행 청소년이었지만

저는 문제아였습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가정불화 등으로 성격이 반항적으로 변해 중학교 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걷잡을 수 없는 길로 빠져들었지요. 중학교 1학년때 퇴학을 당해 학교를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퇴학을 당했습니다.

엄마 최정순(시미즈지혜) 권사님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돈 벌러 일본으로 오셨습니다. 사춘기 때 딸이 학업을 도중하차 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요.

마침내 1998년 10월, 엄마는 한국에 있던 저를 일본으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17세에 중학교 1학년부터 다니면서 새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23세에 전문대 비서학과에 들어갔지요. 1학년 말에는 대기업인 파나소닉에서 한국어 통역 및 번역 업무도 담당했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늘 안쓰러워서 무엇이든지 해 주려고 애를 쓰셨고, 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지요.

"하나님! 제 딸 나미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아빠 없이 자란 불쌍한 아이입니다. 하나님이 아빠가 되어 주세요"

✦ 자궁내막증으로 기흉까지 겹치면서 엄마의 사랑을 깨달아

2000년, 고등학교 때부터 생리통이 심했으나 다른 애들보다 좀 심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수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3년 뒤 진단한 결과, 자궁내막증이었습니다. 왼쪽 난소가 부어 있는데, 더 심하게 부으면 왼쪽 난소를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때는 생리통만 견디면 살만 했지요.

2008년 12월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검진 결과 기흉(氣胸: 흉부 부상 또는 결핵, 폐렴 등으로 폐의 표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 원인이며, 폐가 수축해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난다)이었고 오른쪽 가슴 부위에 구멍을 뚫고 튜브를 삽입해 공기를 빼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기흉도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매달 기흉이 재발했지만 가슴을 열어 큰 수술을 해야 하며, 그럴지라도 완치는 보장하지 못하고 너무 큰 흉터가 남으니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그 외의 치료법은 생리를 끊어 버리는 것인데 그때는 아직 미혼이라 좀 더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리통과 기흉으로 한 달이면 보름간을 고생했습니다. 생리 시작 일주일 전부터 몸이 무겁고, 뼈마디가 쑤시고 아팠지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음식을 좋아했던 제가 임산부가 입덧을 하는 것처럼 냄새에 민감하고, 밥을 입에 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배가 너무 아파 기어서 화장실에 가야 했습니다. 직장에도 이틀씩은 출근을 못했지요. 뱃속의 위와 장을 누군가가 빨래 짜듯 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고통스런 생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면 기흉이 재발했습니다. 한 5일 정도는 오른쪽 허파에 공기가 새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운동은 물론, 걷는 것조차도 삼가야 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철이 들었나 봅니다. 어느 날, 엄마가 떠오르면서 진한 사랑이 밀려왔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저는 엄마가 불쌍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고마워. 이제 잘할게, 엄마!"

✦『지옥』 단행본을 읽고 삶이 변화되니

2004년 1월, 엄마는 동경타바타만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의 소원은 제가 교회에 나가는 것이었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엄마는 저를 위해 기도하셨고, 수년 동안 제게 교회에 갈 것을 권유하고 또 권유하셨습니다.

2009년 8월경, 마침내 엄마에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 『지옥』 단행본을 받아 읽은 뒤 제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세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잘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뒤 동경타바타만민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막상 교회에 가니 평안했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당회장님께서 '지옥' 설교를 하셨기 때문에 더 깊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또한 당회장님을 통해 나타나는 성경상의 기사와 표적, 치유 역사를 보면서 참믿음을 깨우치기 시작했고, 말씀대로 행하는 영적 믿음을 소유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설교 말씀을 통해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 제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지요. 몸도 조금씩 호전되어 갔습니다.

✦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모든 질병을 치료받아

2009년 4월, 저는 한국인 모임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해 10월, 정경태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손수건 집회 때였습니다. "믿음이 강해지면 몸도 건강해진다"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는 '믿음과 성결을 주세요'라는 소원을 품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뒤 자리로 돌아와 기도를 드리는데, 그동안 지은 죄와 허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통회자복을 했습니다. 그 뒤 그토록 고통스럽던 생리통과 기흉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 아무렇지도 않네! 밥이 먹고 싶어요, 밥이!"

입맛이 돌고 통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엄마와 정 목사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얼마나 기뻐해 주셨는지요.

지금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함께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주일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저는 주일 저녁예배 전과 다니엘철야 시 찬양할 때 가사를 불러주는 가사 도우미를 하고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가사를 부를 때 지난날을 생각하면 저를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우리를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는 당회장님의 진한 사랑에 감동을 받습니다.

찬양 가사 한 절 한 절의 깊은 뜻을 음미하노라면 어느새 벅찬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