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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가족이 행복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 - 임종서 피택장로 (2대대 11교구, 제일문화인쇄 대표)
날짜
2011년 1월 30일 일요일
조회수
14587
임종서 피택장로 (2대대 11교구, 제일문화인쇄 대표)

뉴스1990년 7월 1일부터 우리 가정에 참된 행복이 시작됐습니다. 아내 전미화 권사가 만민중앙교회에 등록하여 우리 가족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아내, 간절히 원하던 딸을 낳고

그날 아내는 이웃인 조양수 권사님에게 전도를 받아 난생 처음 성전 계단을 오르면서 무척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의자에 앉는 순간 "주님! 제가 이제야 왔습니다"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요. 교회에 가기 전, 아내는 신혼여행 때 경주에서 받아온 찬불가를 정리했습니다. 이러한 행함을 보신 하나님께서 첫 날부터 은혜를 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아내 덕에 저는 한 주 뒤인 7월 8일, 교회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아내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약한 몸이 강건해졌습니다. 긍정적인 입술로 변하고 입에서는 찬양이 흘러 나왔지요. 아들을 낳은 후 4년 동안 임신이 안 되었을 때입니다. 아내는 초신자였지만 기도를 받으면 제가 원하는 딸을 임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배 때마다 단에서 해 주시는 '환자를 위한 기도'를 믿음으로 받더니 약 4개월 후 잉태의 축복이 임했고 결국 저희 부부는 딸을 품에 안았습니다.


온전히 주일을 지키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저는 이런 축복을 받았는데도 영적인 변화가 더디었습니다. 직장으로 인해 교회를 격주로 출석했는데 그것도 마지못해 다녔지요.

1990년 겨울, 허리 통증이 심해 예전처럼 침을 맞았는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당시 교구장이셨던 조혁희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지요. 겨울인데도 땀이 날 정도로 성령의 불이 뜨겁게 임하는 체험을 한 후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주일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온전한 주일성수의 중요성'에 대한 설교를 듣고 저녁예배까지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서 담배가 싫어졌고, 금단현상 없이 끊을 수 있었지요. 또한 사업터에도 축복이 임했습니다. 매출이 늘면서 인수받을 때 안았던 부채를 상당 부분 상환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후에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2001년 8월에는 처음으로 하계수련회에 참석해 뜨거운 태양 아래 화상을 입을 정도로 봉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얼굴이 흉할 정도로 허물이 벗겨졌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고 좋게 변한 것입니다. 이 일은 제게 믿음이 되었고, 그 후 남선교회 기관장, 조장 등의 사명을 더욱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교구 조장을 맡으면서 승합차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닐 때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길 때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부터는 아내와 함께 샬롬성가대를 하면서 얼마나 행복하든지요.


성결을 사모하니 가정과 사업터에 복합적인 축복이 넘쳐

2010년 여름, 자녀들이 교회 일에 충성하던 중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과 가족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후 주님을 사랑하며 성결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또한 사업터에는 몇 년 동안 끊겼던 거래처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일감이 들어왔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장학금을 받았고, 무용을 하는 딸은 MMTC(만민세계선교훈련원) 일본 단기선교, 에스토니아 연합성회 공연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아내는 시무권사로 취임했으며, 저는 샬롬성가대 총무와 피택장로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여러 모양으로 축복해 주시니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동안 저를 대신하여 영적인 가장 역할을 한 아내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술 담배를 끊지 못할 때에도 오래 참아 주었고 세상에서 힘들고 지쳐 집에 들어와 화풀이를 해도 아무 말없이 섬겨주었습니다.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많이 보았지요. 그러니 싸움이 되지 않고, 화평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으며, 자녀들도 부모에게 순종 잘하고 서로 챙겨주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녀가 되고자

아내는 딸 보라를 잉태했을 때부터 무용과 찬양으로 세계 선교를 이루는 데 쓰임받을 수 있도록 늘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딸은 어렸을 때부터 찬양과 무용을 좋아했습니다. 예술중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찬양과 무용 활동을 해온 까닭에 국립전통예고에 입학할 수 있었고 대학에서도 무용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흰돌성가대, 단비중창단에 이어 예술선교단과 천상의 무용팀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지요.

고집이 셌던 아들 환택이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온순해졌습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사랑하지 않고 착하게 잘 자랐지요. 군 복무를 하면서 고참의 권유에도 술을 마시지 않았고 군종으로 봉사했습니다. 2004년 대학 진학을 위해 기도하던 중, GCN(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 방송 선교를 위해 일꾼이 많이 필요하다는 설교를 듣고 방송영상학과를 지원했습니다.

현재 KBS방송 전문 과정 방송연출 6개월 코스를 수료했고, 교회에서는 비디오카메라 촬영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대견한지요.

이러한 행복과 귀한 사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성결의 말씀과 권능으로 믿음이 자라도록 이끄신 당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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