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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제목
아집과 교만으로 가득찬 삶 속에 참 생명이 피어나고 - 유익선 장로
출처
날짜
2007년 3월 3일 토요일
조회수
4241
뉴스저는 주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을 선택하든지 나를 선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 그렇지 않으면 하면서 아내를 윽박지르곤 했습니다. 원래 불같은 성격에다가 의협심이 강한 편이어서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 때문에 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달리 정이 많아 남을 돕는 일에는 인색하지 않았으므로 제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저를 가까이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처음 대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과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경찰이라는 특수직에 근무하다 보니 여느 사람들처럼 가정에 충실할 수 없었고, 세상 쾌락을 좇아 살아가니 부부 싸움은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기도로 주님을 영접하고

1987년 어느 날, 아내 박수경 집사는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였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는데, 눈은 이미 치료가 불가능하여 양쪽 눈 중간의 신경을 절단해야 하며, 심장도 약해 심장 보조기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동훈이, 동혁이를 출산한 후부터 점점 시력이 저하되면서 결국 오른쪽 눈이 녹내장으로까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그 동안 제 잘못이 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내가 동네 가까운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심장병을 치료받는 등 차츰 건강과 활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가지 긁는 모습이 사라졌고, 항상 제 의견을 존중해 주려는 마음이 엿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교회에 다닐 것을 권유하였으나 저는 "당신이나 잘 다녀!" 하면서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저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내의 정성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을 주관하여 교회에 다닐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92년 10월, 저와 아내는 부천에서 도봉구 번동으로 이사와서 가까운 교회에 다니면서 함께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어느 날, 아내는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만민중앙교회에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왜 가까운 교회를 놔두고 2시간이나 걸리는 교회에 다녀야 하느냐" 하며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 당시, 아내는 이웃을 통하여 본교회와 이재록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본교회에 인도받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니

저는 이 일로 인하여 마음이 곤고해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결국 아내의 권유로 본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이라는 직업상의 이유와 믿음이 없던 탓에 주일성수는 엄두도 못냈고 주일 대예배만 한 달에 한두 번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갖는 어떠한 모임도 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심방 전화가 오면 받기 싫어서 전화기 코드를 아예 빼 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고 있던 중 갑자기 '너는 지금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느냐? 교회에 왔으면 무슨 소득을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 교회에서 무슨 보람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시간부터 찬송도 크게 부르고 기도도 부르짖어 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즉시 술과 담배를 끊고, 새벽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 내용과 방법을 몰랐기에 평소 교회에서 하는 기도 제목을 떠올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매주 단에서 선포하시는 생명의 말씀은 저의 자아와 교만을 단숨에 깨뜨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경찰에 오래 근무한 탓에 사람들을 경계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기에 누군가를 신뢰하거나 믿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시며 친히 본을 보여 주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진실함에 큰 감동과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꾸 보고 싶어지고 만나고 싶은 충동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샘솟기 시작했고, 하나님과 목자에게 무엇으로 기쁨을 드릴까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 생명이 피어나고 범사에 축복을 받아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니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와 일터에서도 축복은 넘쳐났습니다. 불화의 연속이었던 가정이 복음화되니 항상 은혜가 넘치는 가정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명령이나 일방지시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 주고 상대의 마음이 되어 줄수록 점점 행복한 가정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생활에도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유명 메이커의 구두나 양복 한 벌 사 입지 않고, 남을 대접하는 일 외에는 결코 값비싼 음식을 사 먹지 않았으며, 가전제품이 아무리 오래 되었다 해도 망가져 못쓰게 되지 않는 한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 등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하며 헌금하기를 힘쓰는 등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청년선교연합회 부장의 사명을 맡고부터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져 지도교사님을 도와 회원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직장이 없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기도 하고, 근무가 없는 날에는 기관 임원들과 열심히 심방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부흥을 주시며 청년들의 사랑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장에서도 넘치는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1995년, 신월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인데 새벽 3시 경, 전화번호가 입력되지 않은 채 호출기가 계속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하여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트럭이 무엇인가를 싣고 있었습니다. 수상한 느낌이 들어 검문을 해 보니 마늘을 훔치고 있던 차량인지라 범인을 검거하였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요. 그 외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검문과 검색을 통해 특수강도와 절도범을 검거할 수 있도록 축복하셔서 2회에 걸쳐 양천경찰서에서 표창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느덧 생명의 말씀들이 하나 하나 꿀과 송이꿀같이 달았고 여름날의 얼음냉수와 같이 제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믿음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가용이 제가 타고 가던 오토바이를 덮치는 사고를 당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쪽 다리가 심하게 다쳐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영적인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다"라는 당회장님의 설교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즉시 상처에 손을 얹고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주위에 있던 동료와 사고 운전기사는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 괜찮다"며 극구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더 악화되면 곤란하다는 운전기사의 간곡한 권유에 못이겨 병원에 갔더니 10주의 진단이 나왔습니다. 저는 기브스만 한 채 곧바로 교회로 향했습니다. 마침 그 날은 극동방송 신년 특집 프로그램인 '우리 교회 좋은 교회' 실황 녹화 방송이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저는 녹화가 끝난 후 믿음으로 당회장님의 간절한 기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그 즉시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열심히 전도에 힘쓰니

저는 하나님과 목자로부터 큰 은혜를 받은지라 그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영혼을 구원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전도를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제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막상 전도를 해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증거하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 계시고 제가 그 말씀을 듣고 변화된 삶을 살고 있기에 자신있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상관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던 제가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힘든 일들을 스스로 찾아 하는 사람이 되었고, 주민들을 대할 때는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생각하며 그들의 불편을 해소해 주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된 모습속에 이재록 목사님의 간증수기와 설교테이프, 만민중앙소식을 돌리며 복음을 전하였더니 지난 해에는 45명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항상 사랑으로 대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과 기도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