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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zoom in 줌인] 찬양의 본질과 자세
출처
만민뉴스 제372호 PDF
날짜
2008년 8월 24일 일요일
조회수: 9447
음악은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며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이처럼 선한 용도로 사용되면 많은 유익을 주지만 자칫 악용되면 수많은 사람을 타락의 길로 이끄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주 안에서의 음악은 영혼을 살찌우며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찬양의 능력으로 영혼이 새로워지며 응답과 축복받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뉴스구원받은 하나님 자녀가 그 은혜에 감사해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찬송 중에 거하시는(시 22:3) 하나님께서는 찬송, 곧 곡조 있는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위로와 기쁨을 주며(시 105:2-3), 상한 마음을 치료하고(삼상 16:23),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도움을 주며(행 16:25-26)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는 등 많은 축복을 주신다. 그냥 찬양한다고 해서 이러한 축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릴 때 영육간에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음악의 시초는 하나님 찬양

시편 69:31에는 찬양 드리는 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황소 한 마리를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에 그리 부유하지 않은 사람은 양이나 염소를 예물로 드렸고, 그것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나 곡물가루를 드렸다. 그런데 여러 제물 중 가장 귀한 황소의 제사보다도 중심에서 드리는 찬양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다.

태초부터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하나님 영광을 찬양해 왔고 세세토록 영원히 찬양하며 경배드릴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는데, 찬양을 담당한 천사장 루시퍼는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로 하나님 영광을 찬양하며 항상 그 곁에서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권세와 위엄도 주어지고 다른 천사들과 달리 인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무수히 흐르면서 점차 교만이 싹트자 하나님께서 원래 주었던 마음이 변질되었다.

결국 하나님을 배반한 루시퍼는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 때가 이르러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로서 어둠의 세력을 주관하고 있다. 천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에는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아름다웠던 루시퍼는 타락한 후 매우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세상의 유행이나 흐름을 통해서 어떻게 하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

루시퍼와 음악

특별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의 조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온몸에 섬뜩한 문신이나 장식을 달고 마구 뒤엉킨 머리를 흔들며 찢어지는 듯한 악기의 소리와 괴성으로 자기도취되어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이상한 가사와 멜로디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이러한 음악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심한 일탈 행동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타락하기 전 찬양을 담당한 루시퍼가 세상 음악을 사주해 사람 마음을 사로잡아 가며 사람들로부터 숭배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 음악이란 가사나 곡 또는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 등 여러 가지 면을 보았을 때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음악을 말한다.

세상 음악 중에서도 세상사를 아름답게 표현하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녕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굳이 세상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세상 음악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천국을 소망하게 만드는 찬양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혹여 빼앗거나 세상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는 음악이 있다면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음악의 시초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찬양받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찬양 듣기를 즐겨하며 그 입술에서는 세상 음악이 아닌 찬양이 흘러나올 것이다.

뉴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찬양하는 사람의 기교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 순종 그리고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신다. 찬양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으며 창조주 되심과 그 위대하심을 목소리와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는 7년 환난 중에 순교한 14만 4천 명의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주를 위해 순교할 만큼 진리 안에서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그들의 찬양이 주님의 음성처럼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으며 거문고 타는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도 악이 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마음이길 원하신다. 마음 다해 하나님과 주님을 찬양하며 성령의 능력을 구할 때 성령의 감동을 입는다. 이럴 때에 세상을 이기고 죄를 벗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임하며 믿음, 소망, 사랑이 더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같이 기도하며 마음의 성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 범사에 선을 행하며 모든 사람과 화평하며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합당한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과 성결의 은혜를 부어 주고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하신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찬양

사도행전 16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드린 찬양은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졌다 해도 하나님을 믿는 그 신뢰가 변함없던 바울과 실라는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 있었다. 깊은 감옥에 어둠을 가르고 울려 퍼질 때 천국에서도 그들의 찬양이 울려 그 향은 하나님 보좌를 진동시켰던 것이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남유다 왕국의 여호사밧 왕 시대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연합해 유다를 침공해 온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성가대를 조직해 거룩한 옷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여호와를 찬송케 한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뢰해 나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적군끼리 서로 싸워 대승을 거둘 수 있도록 하셨다.

또한 사무엘상 16장에는 다윗이 수금을 켤 때 사울에게서 악신이 떠났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은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며 영혼이 잘되므로 응답과 축복이 임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하며, 찬양하는 영혼 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이 영육간에 풍요로워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