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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기획특집] 북유럽의 아름다운 고도(古都) 에스토니아
출처
만민뉴스 제453호 PDF
날짜
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조회수: 11607
뉴스뉴스 세계 지도를 펼치고 에스토니아를 찾아보자.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나라이지만 여행 마니아들에게는 꽤 유명하다.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매우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노르웨이, 스웨덴이 나란히 있으며, 그 옆에 핀란드가 있다. 북유럽 중심에는 발트해가 있는데 핀란드에서 발트해를 가로지르면 에스토니아가 나온다.



중세와 21세기의 만남, 에스토니아

서유럽과 북유럽을 잇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발트해의 한가운데 위치해 무역하기에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다. 중세 시대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남은 이곳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럽 어디를 가도 고도(古都)는 많지만 탈린처럼 제법 큰 중세 도시가 완벽하게 보존된 곳은 드물다.

13세기에 지은 성곽과 성벽 사이로 1500년 완공 당시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한 올랍 성당이 솟아 있고, 광장 어귀에 있는 약국은 1422년에 세워진 현존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다. 특히 가장 오래된 시기인 13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많은 카타리나 골목은 관광 명소다.

이처럼 에스토니아는 중세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반면, 2008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전 세계 82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인터넷 온라인 금융 분야에서 세계 2위, 전자정부 분야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투표를 세계 최초로 실시한 곳이기도 하다. 1991년 옛 소련 붕괴로 독립한 에스토니아는 경제발전 동력을 IT 인프라 구축에 맞췄다. 이로 인해 북유럽에서는 에스토니아를 인터넷 강국을 의미하는 'e-스토니아'로 부르기도 한다.

뉴스탈린 시청 광장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킨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는 수백 년간 이민족의 지배와 고난 속에서도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켰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구소련에서 독립을 쟁취했다. 1918년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립공화국을 선언하지만 소련군의 침략으로 에스토니아의 독립전쟁이 시작된다. 그 결과 1920년 2월,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국회가 에스토니아의 영원한 독립을 인정하는 '타르투 평화조약'을 체결했지만 1940년 6월, 러시아와 독일은 비밀 조약을 체결하고 에스토니아를 러시아에 복속시키기로 한다. 이때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할 때여서 에스토니아는 강제이주와 집단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해 철의 장막 속에 갇혀 있던 중, 1985년 소련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정치'(사회주의체제라는 확고한 울타리 내에서 정치, 경제 개혁을 목표로 내부 개혁과 외부 개방을 지향, 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는 '신사고(Neues Denken)'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들었고, 이는 사회주의체제 붕괴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를 펼치기 시작하자 서서히 발트 민족의 의식을 일깨우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89년 8월 23일에는 탈린에서 발리우스까지 사람들이 손을 잡아 만든 '발트의 길' 행사를 통해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소련 위성국가들이 그렇듯 에스토니아도 1991년 8월 20일에 소련연방으로부터 탈퇴, 독립했다. 같은 해 9월에 UN 가입, 10월에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었으며, 2004년 3월에는 NATO, 5월에는 EU 회원국이 되었다.

뉴스알렉산더네프스키 성당 (러시아정교회)


EU 회원국 에스토니아의 문제와 종교

에스토니아는 이러한 역사로 인해 소련 잔재 청산이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에스토니아인들의 상당수가 추방 또는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그리고 도피성 해외 망명 등으로 조국을 떠났으며, 그 자리는 정책적으로 이주해 들어온 러시아인들이 채워나갔다. 따라서 현재 에스토니아 인구의 28%가 러시아인이며 수도 탈린은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40%에 달한다. 게다가 에스토니아 내의 러시아인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주류 계층이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를 무시한 과거 청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구 약 130만 명, 면적 45,226㎢(남한의 약 2분의 1)의 작은 나라인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인, 러시아계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언어는 공용어인 에스토니아어 외에 러시아어와 영어도 널리 사용한다. 과거 독일, 러시아 지배 영향으로 루터교회, 러시아정교회가 많은 편이지만 종교적 성향이 강하지는 않다.

루터교회는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복음주의 사상에 따라 세워진 개신교 교회이다. 마르틴 루터는 본래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교회 안에 들어온 새로운 것들을 정화하고 고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되찾으려 했다. 오늘날 루터교회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10세기 러시아에서 동방정교회를 받아들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 동방정교회가 되었다. 동방정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 개신교회와 함께 기독교의 3대 분파로 꼽힌다. 주로 러시아, 발칸반도, 서아시아 지역 등에 분포한다.

뉴스성 니콜라스 교회 (탈린의 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