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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말씀] ■ 기획 특집 일곱교회 - 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교훈 (2)
출처
만민뉴스 제485호 PDF
날짜
2011년 6월 12일 일요일
조회수: 988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10~11)



뉴스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도 책망도 아닌 권면의 말씀을 들은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아시고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단의 회로 인한 훼방을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목자와 성도들은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오늘날에는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한 채,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활의 확신이 없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1.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3년 동안 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충분히 믿을 수 있도록 나타내셨습니다. 장차 십자가에 달려 운명할 것과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할 것도 미리 말씀해 주셨지요.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뿔뿔이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죽음 앞에서도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칼에 목을 베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톱에 켜 죽임을 당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기를 자청한 이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엄청난 순교의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주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보았기에 부활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치니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바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함께 목격한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소망 가운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희생했기 때문에 로마의 엄청난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결국 로마의 국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말로만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표적이 나타났기에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막 16:20).


2. 오늘날 서머나 교회와 같은 경우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오늘날 서머나 교회와 같은 입장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똑같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나라, 특히 북한에 들어가 하나님 권능을 나타낼 분들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은 지 이미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북한에는 우리의 부모, 형제, 일가친척 등이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고백할 만큼 자기 민족의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선교의 문이 열리면 남다른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많은 선교사와 일꾼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들어가게 됩니다. 막상 북한에 들어가면 생각한 것보다 경제적인 사정이나 현실적인 상황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순교해야 하는 상황까지 만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부요하면 주변의 환경과 조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부요하다는 것은 마음에 천국의 소망이 넘치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과 성령 충만함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고후 6:10).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부요함이 충만할 때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3.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주님께서는 장차 서머나 교회가 고난을 받지만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며 좀 더 구체적으로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결하기 전까지는 여러 시험 환난과 고난이 올 수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영육 간의 부요함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이며,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과정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받는 핍박과 환난이라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며, 아직 진리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시험과 환난이라 해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약 1:2~4).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성도 중에 몇 사람이 감옥에서 환난을 겪는데, 이것이 마귀의 역사임을 말씀하셨지요. 많은 사람이 사단과 마귀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해 혼용하기도 하는데 성경에는 분명히 사단과 마귀를 구분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쉽게 말해 악한 영의 가장 우두머리인 루시퍼의 마음이며, 마귀는 그 수하에 부리는 영으로 각각 하는 일이 다릅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해 악한 생각을 품게 하고 비진리의 마음이 요동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악한 생각이나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만듭니다. 즉 생각 속에 사단의 사주를 받은 것이 행함으로 나타났을 때 이것을 가리켜 마귀의 역사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을 헐뜯고 비방할 때 기분 나빠하며 미워하게 만드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내가 분해서 못견디겠다. 억울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 욕을 해주든가 때리든가 해야지!' 하는 악한 생각을 불어 넣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악한 생각에 그친다면 사단의 역사이지만, 이러한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상대를 욕하거나 때리는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마음을 사로잡아 주관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따라서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하신 말씀은 악한 사람의 마음을 마귀가 사로잡아 악한 행동을 나타나게 한다는 의미이지요. '옥'은 어떤 법의 기준에 어긋났을 때 대가를 치르기 위해 들어가는 곳입니다. 따라서 옥이 있다는 것은 법과 그것을 주관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법이 있고, 죄의 경중에 따라 판결을 받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어서 진리 안에 살 때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만, 진리를 어겼을 때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줍니다. 진리를 어기고 죄를 지은 만큼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특히 마귀의 주관에 따라 행함으로 짓는 죄인 육체의 일에 대해서는 보응이 따릅니다. 이것을 가리켜 '마귀가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받는 시험 환난은 죄의 경중에 따라 달라짐은 물론,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설령 같은 죄를 지었다 해도 믿음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받는 형벌이 다르지요.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십(10)은 십진법에서 만수로서 꽉 찬 숫자이므로 이 안에는 모든 경우가 다 포함됩니다. 따라서 '십 일 환난'은 죄로 인해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환난을 총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가령, 신하가 왕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곧 왕과 나라를 위해 생명까지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주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순교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눈에 보이는 육적인 충성, 곧 육의 생명만 드리는 순교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인 순교, 곧 살아서 하는 순교입니다. 육적인 순교도 영적인 순교의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순교라 할 수 있지요.
영적인 순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모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생명을 다하기까지 죄를 싸워 버린 사람에게는 자아가 없고, 오직 내 안에 진리인 하나님 말씀만이 살아 있어서 성경 66권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사도 바울과 같이 '자기'를 철저히 죽이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사람이라면 사명을 잘 감당하며, 죽어 가는 영혼들을 위해 눈물 뿌려 사랑의 간구를 합니다. 이렇게 성결한 마음으로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충성입니다.
오늘날 회교권이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순교의 믿음을 내보일 만한 기회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드리는 순교는 아니라 할지라도 순교에 준할 만한 시험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게 하십니다. 물론 시험을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일 때에는 그러한 시험도 오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1:12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즉 아무에게나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참고 하나님께 옳다 인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모든 시험과 환난을 통과하고 죽도록 충성했을 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은 천국 중에서도 3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과 상급입니다(『천국』(상, 하) 참조).


5.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죄악을 싸워 버리고(히 12:4) 진리 안에 살아가는 사람을 '이기는 자'라고 하시며,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둘째 사망이란 무엇이며 '둘째 사망의 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부르시면 이내 몸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 결국 썩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육의 생명이 끝나 죽는 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둘째 사망이란, 사람의 주인인 영혼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0:12 이하를 보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 설령 생명책에 기록되었다 해도 그 이름이 지워지거나 흐려진 사람들을 불못에 던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진리와 죄악 가운데 살아가며 진리인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못한 사람, 곧 이기지 못한 사람은 결국 구더기도 타 죽지 않는 지옥불 속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받는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시험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한 사람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가진 분들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읽는 모든 성도가 어떠한 시험 환난이라도 이기고 생명 다해 충성함으로써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원하십니다.
나아가 진리를 알지 못해 사망으로 가는 사람들을 향해 시험과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리를 좇아 구원에 이르도록 담대히 외쳐야 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뉴스
이것이 곧 우리 모두의 사명이요, 이것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각 사람과 교회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과 영원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딤전 5:22). 그리하여 종국에는 흠도 티도 없이 온전히 성결되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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