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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정도'(正道)를 걷는 온전한 중심을 이루려면?
출처
만민뉴스 제651호 PDF
날짜
2014년 9월 14일 일요일
조회수: 10122
잠언 10장 9절에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말씀하고 있다. 바른 길 곧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지키고 인도하시니 큰 평안과 축복이 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도에서 벗어날 때는 결국 불의가 드러나 수치를 당하게 되고 악행의 도움을 받게 된다. 과연 '정도'를 걷는 온전한 중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변개함이 없어야 한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정도를 좇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변개함이 없는 중심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사육신(死六臣: 조선 세조 때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잡혀 죽은 여섯 명의 충신)들은 자신뿐 아니라 삼족이 죽임을 당한다 해도 결코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임금과 나라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켰다.

성경에도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됐어도 많은 신하와 백성이 다윗을 저버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하며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신의를 지키는 길을 택한 이들에게 생명을 구해주실 뿐 아니라 자자손손 후대까지 영광을 누리게 하셨다.

시편 106편 3절에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한 대로 정녕히 하나님 앞에 정도를 걸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범사에 축복이 임한다.


간사함이 없어야 한다

야고보서 1장 8절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한 대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간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처음 계획한 대로 행하지 않고 변개하는 것은 물론, 충성하는 듯하다가도 배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0절을 통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했다. 데마는 사도 바울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고 표적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상을 사랑해 사도 바울을 떠난 것이다. 이는 곧 주를 버리고 구원에서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정함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유혹에도 쉽게 빠질 수 있으므로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좇아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편벽되이 행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이나 자신에게 한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다.


욕심을 좇아 정욕을 채우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다. 사람의 육적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주어졌다고 하자.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좋은 말, 좋은 일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좋은 것이라고 해서, 당장 유익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항상 진리로 분별해 진리에 맞지 않을 때는 비록 내게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과감히 버리고 좇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패전시킨 연합군을 뒤쫓아 그들을 쳐서 파하고 모든 빼앗긴 재물과 사람들, 사로잡힌 조카 롯을 되찾아 온 적이 있다. 이때 아브라함을 마중 나온 소돔 왕이 사람은 자신에게 보내고 물품은 아브라함이 취하라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욕심에 끌린 것이 아니라 어떤 편이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했다(창 14:22~23). 곧 자신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할까 하여 소돔 왕으로부터 한 가지도 재물을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아내 사라가 죽은 후 그 매장지를 살 때에도 그 땅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거저 주겠다는 것을 굳이 합당한 가격을 주고 사는 것을 볼 수 있다(창 23장). 바로 후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의 온전한 중심을 보시고 물질의 축복을 크게 주셨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도 주셨다.



세상에서는 착하고 순진하면 오히려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 안에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도의 길을 간다면 만사형통의 길, 마음의 소원과 간구와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럴 때 가는 곳마다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정도를 좇은 요셉이 점점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았어도 결국은 그 길이 왕 다음 가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와 형제, 칠십 인을 구원하며 이스라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지위를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정도를 걸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것이 바로 형통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하신 대로 정도를 걷는 온전한 중심을 이뤄 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축복이 삶 가운데 풍성히 넘쳐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