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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
출처
만민뉴스 제690호 PDF
날짜
2015년 6월 14일 일요일
조회수: 9454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은 채 지식적인 믿음으로 육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할례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면서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도 있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고 육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을 몇 가지로 살펴보며,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아 영적인 신앙생활로 변화되길 바란다.



첫째, 영의 양식을 먹으면서 탄식하는 모습이 있다

주님을 영접해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죄의 문제를 해결받아 기쁘고 행복하다는 고백을 많이 한다. 그런데 시험이 오고 핍박과 환난이 오면 이내 힘들다 하고, 또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뚫지 못할 때에도 힘들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분명히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알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곤고한 탄식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사실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탄식이 클 때는 죄와 싸워 버리는 마음의 할례 과정에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이다.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백했다(로마서 7:24). 바로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러한 탄식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그만큼 '나'라는 것을 깨뜨려감에 있어서 날마다 죽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육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탄식하는 모습이 있다면 이는 신속히 돌이켜 항상 기쁨과 감사,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달려가야 한다.


둘째, 소망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이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있다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중에 하나는 죄를 크게 지은 것도 아닌데 기질적으로 염려와 근심이 많고, 또 부정적인 사고의 습관이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늘 두려워하는 경우들이다.

조금 기침만 해도 '폐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어디가 조금만 아파도 '암이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늘 부정적으로 가장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직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는데다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보다 심판하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이 더 앞서므로 하나님을 오해해 두려워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이 있기에 더 근신하며 성결을 향해 달려갈 수 있으며, 성결돼 가는 만큼 온전한 사랑 안에서 이 두려움이 녹아져 결국 사라지게 된다.

신앙생활에서 나오는 두려움은 대부분 진리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운 대로 순종하면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기뻐하시니 내 안에 기쁨이 넘쳐 소망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쯤이야.' 하며 진리와 반대로 살아간다면 아는 만큼 행하지 못하게 되므로 두려움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오히려 감사하며 그 원인을 찾아 바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셋째,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이 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거나 허물이 있을 때 또는 그로 인해 어떤 징벌을 받거나 보응을 받으면 '저 질병은 이런 문제로 오는 건데, 왜 저런 연단을 받을까.' 하며 나름대로 아는 진리 안에서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판단하는 사람들은 어떤 허물을 알았을 때 어떻게든 남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또 상대가 허물이 있는데도 그 죗값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는 '남들이 저 사람 저렇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하며 답답해한다. 더욱이 그 상대가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을 때는 더 답답해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고, 전해야 속이 시원하고 그 사람이 죗값을 받아야 그 마음이 시원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 상대가 가족이라면 어떨까? 과연 남들에게 그 죄상이 알려져 손가락질 받고 죗값을 치러야 속이 시원할까? 물론 무조건 죄를 덮어 주라는 것은 아니다.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 말씀대로 먼저 그 사람에게 권하고, 만일 듣지 않으면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증참케 하며,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는 절차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마 18:15~17).


넷째, 평강과 안온, 안식이 없는 모습이 있다

욥기 3장 26절에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 한 대로 그 모습에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다면 영적인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다. 믿음 있는 일꾼이라도 그 얼굴에 평강이 없이 근심과 수심이 가득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온전하게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강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염려와 근심이 있고 걱정하고 불안해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진정 맡기는 사람은 염려 근심 걱정이 없다. 따라서 평강이 없는 것은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기지 못하니 내가 할 수밖에 없고, 내가 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가 없어서 평강이 없고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기에 물욕, 명예욕, 권세욕,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 등 이 땅의 미련으로 인해 평강이 없고, 죄의 담이나 육신의 생각으로 인해 또 기도하지 못하므로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강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아는 만큼 죄에서 떠나 진리 안에 거할 때 성령이 기뻐하시므로 충만함이 온다. 이처럼 영혼이 잘돼야 물질, 가족, 건강 등 어떠한 것에도 염려가 없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평안해야 안온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마음에 천국이 이뤄질 때 참된 안식도 누릴 수 있다. 물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염려로 애통해야 할 때도 있지만 내 마음 안에 있는 안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