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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십자가''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출처
만민뉴스 제755호 PDF
날짜
2016년 9월 11일 일요일
조회수: 7776
나무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섭리가 담겨 있기 까닭이다. 십자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바로 알고 정립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참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


첫째 '축복'을 의미한다

고대 제국에서 십자가 처형은 흉악범이나 반역자와 같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범인에게 내려지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죄인들을 대신해 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것이다(갈 3:13).

'율법의 저주'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에 의한 저주를 뜻한다(롬 6:23).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죄를 지으며 살았다.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자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죄인 된 인류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려면 누군가가 대신 저주의 값을 치러야 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저주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에 달리도록 내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3:14~15).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를 파하셨다. 원수 마귀 사단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게 하여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을 스스로 어겼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의미는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가 깨어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으니 주를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저주의 상징이 아닌 '축복'을 의미한다.


둘째 '희생'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에(히 9:22) 예수님께서는 친히 피 흘려주심으로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희생의 값을 치러주신 것이다.

십자가 형벌은 먼저 채찍으로 몸을 가격하는데, 채찍에는 쇠구슬,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등이 박혀 있다. 채찍에 맞으면 깊은 타박상과 함께 살이 벌어지거나 찢겨져 나가고, 피부 밑의 골격 근육까지 찢어지면 살은 힘없이 매달려 있게 된다. 많은 피를 흘리기에 혈압이 떨어져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하고, 심한 목마름을 느낀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길이 2미터, 무게 40킬로그램 가량인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에 도착하면, 십자가에 몸을 고정하기 위해 손목과 발등에 약 13~18센티미터 정도의 굵직한 큰 못으로 손목 정중앙을 박고, 두 발을 위아래로 겹쳐서 발등 중앙의 둘째와 셋째 뼈 사이에 못을 박아 신경은 완전히 파괴된다.

손발이 못 박힌 채 수직으로 매달려 있으면 팔이 늘어지고 모든 뼈가 어그러진다. 몸무게에 따라 팔이 쳐지고 어깨뼈들이 어그러져 양쪽 어깨는 탈골이 된다. 산소 공급이 안 돼 숨쉬기가 어려워지니 혈액은 이산화탄소 과잉으로 산성이 증가되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면서 기절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십자가 처형은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 최악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사형법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셋째 '사랑'을 의미한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심으로 십자가의 처형을 받게 하셨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받으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를 아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일을 감행하셨다. 죄인 된 인생들을 구원할 길은 이 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원수 마귀 사단은 상상조차 못한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도 공의를 초월하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독생자 예수님을 그토록 처참한 죽음에 내어주실 만큼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이 사랑을 마음으로 느낀 사람은 그때부터 삶의 이유와 목적이 달라진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좇아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