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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善)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세 가지 항목
출처
만민뉴스 제762호 PDF
날짜
2016년 11월 6일 일요일
조회수: 7734
빛이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이루려면 진리로 선악을 잘 분별해야 한다. 사람 편에서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선을 이뤄 보석같이 곱고 아름다운 참 자녀로 나오기 바란다.


POINT 1. 자기 정당화를 버려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부족한 부분은 부지런히 채워 나가야 한다. 그런데 알면서도 변화되려고 노력하기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핑계 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교회, 가정, 직장 등 자신이 감당해야 할 영육 간의 모든 일을 영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로 바쁘니까. 중한 사명을 맡았으니까. 저 일보다는 이 일이 더 중요하니까.' 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분야를 인정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한다면 이는 자기 유익에 맞춰 진리를 이용하는 간사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주의 일로 인하여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모든 분야에서 두세 가지밖에 행하지 못했다 해도 마음 다해 사랑과 섬김으로 행한다면 상대방이 그 마음의 진실을 느끼므로 서운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사단이 송사할 수 없다.

과연 자신이 정말 바빠서 도저히 더 내어줄 수 없는지, 아니면 영적인 사랑이 부족한 것인지, 마음이 더 가는 일에만 힘을 쏟고 다른 일은 제쳐놓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마음은 아닌지 점검해 봄으로 범사에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좇으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마음이 있다면 철저히 버려야 할 것이다.


POINT 2. 교만을 버려야 한다

사울은 원래 평범한 백성에 불과했고,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왕이 되어 섬김을 받으니 어느 새 마음이 높아져 왕좌를 마땅히 자기 것이라 여기며 권세를 휘두르는 데 익숙해졌다. 사무엘 선지자조차 두려워할 지경이었다.

착하고 충성스러운 신하 다윗을 죽이려 하고, 제사장의 성읍 전체를 몰살시키는 무서운 만행을 저질러도 주변에서 감히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이처럼 교만은 참으로 교묘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높아져 버린다. 마음의 할례를 통해 성결을 이루기 전에는 언제든지 교만한 모습이 드러날 수 있으니 자신에게 교만이 있다고 인정하고 불같이 기도함으로 뽑아버려야 한다.

가령, 각종 예배에 잘 참석하고 기도를 쉬지 않으며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고 자기 분야의 업무도 잘 알고 있다면 그동안 자신이 헌신해 온 것만 생각하여 자신의 마음의 할례가 더딘 줄 모를 수 있다. 불편함, 서운함 등의 감정이나 판단, 정죄 같은 죄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눌러 놓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직분이 높고 연륜도 있다 하여 아랫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한다. 교만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악을 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변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교만은 질서를 어기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총무가 일꾼 중 한 사람에게 행사 장소를 분홍색 천으로 장식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일꾼은 흰색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건의를 하지만 그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고 하자. 이때 일꾼이 임의로 회장한테 가서 허락받아 일을 진행한다면, 질서를 어기는 것은 물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간사함까지 동원된 것이다. 그런데 회장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불순종한 것도 아니고 주어진 사명도 잘 감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만을 버리고 겸비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 항상 자신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빌 2:3 ; 벧전 5:5).


POINT 3. 자기 보기에 열심을 하나님께 향한 열심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 향한 열심이 있는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게 된다. 단지 어떤 일을 열심히 해내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와 더불어 충성하고, 항상 화평함을 좇으며 사랑 가운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반면, 자기 보기에 열심을 가진 사람은 책임감과 열정은 뜨겁지만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을 행한다. 가령 처음 직분을 맡아 행정적인 일에 능숙하지 않은 회장을 경험이 많은 총무가 도와주면서 불편해하거나 임의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또 회장이 할 일을 자신이 다했다는 자긍심, 혹은 불만스러운 마음을 가득 담아서 은근히 찌르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아랫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맞게 움직여 주지 않으면 마음이 상해 짜증 섞인 말도 나오고 상대를 찌르는 말도 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야만 하고, 자신의 사명 이상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충성 되게 잘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자신의 열심 속에 눈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일하는 과정에서 화평을 깬다거나 질서를 어겼다는 지적이라도 받으면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 방관하기도 한다. 더구나 총회에서 낙선이라도 하면 자신이 선하지 못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충성했는데 내게 돌아오는 것이 고작 이것인가?' 하고 서운해하며 열심 내던 모습마저 변질된다.

하나님께 향한 열심이었다면 결코 변질될 수 없고 오히려 마음이 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으로 성숙해진다. 사람 보기에 열심이었기에 변질되고 인정도 못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열심 낸 것이 아니라 자기 성격 속에서 나온 열심이었던 것이다. 과연 자기적인 열심인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내는 열심인지 점검하여 참된 선의 마음을 이루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