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만민의 소식

제목
[삶의 진한 향기] 정구영 권사 (전 서울여대 총장)
출처
만민잡지 2006년 여름호
날짜
2006년 9월 26일 화요일
조회수: 4255
뉴스정구영 권사 (전 서울여대 총장)

우리는 가끔 삶의 진한 향기를 품어내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때로는 장미의 진한 향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산골짜기의 흰 백합화 같은 순결한 향이나, 라일락의 청순한 향, 혹은 후리지아 같은 달콤하고도 깨끗한 향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듯 어떤 종류의 꽃이든 그 특유의 아름다움과 향기 때문에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듯 이런 향기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우리는 그 향기에 취하여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곤 합니다.
가을철 소국 같은 단아한 향기를 지닌 한 사람을 한 신문을 통하여 만났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야단스럽지도 않지만 그 소박함이 오히려 정겹고, 그 깊고 진한 향기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 소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의 기사를 읽었을 때, 이분에게서 저는 진한 소국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이분은 삼계탕을 만들어 파는 식당 아저씨입니다. 지금은 성공해서 직원을 60명씩이나 두고 식당을 운영하지만 어린 시절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호떡장사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 여러 형제가 살아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신문배달, 껌팔이, 자장면 배달 등 안 해 본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가난하다는 것이 이유이기도 했겠지만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끝이 났습니다. 쌀 3가마 반 때문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조회 시간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단상에 나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쌀 3가마 반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이 어린 소년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쌀 3가마 반을 받으면서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학력이 여기서 끝나게 된 이유입니다.

그 후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점 경영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지난 세월들을 돌아봅니다. 가고 싶었지만 돈 때문에 갈 수 없었던 수학여행에 대한 아쉬움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만일 이분이 돈 때문에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에 대한 한풀이를 하듯이 전국을 일주하고 세계를 누비며 여행 다녔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특별한 삶의 향기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수학여행 계절이 오면 장애인, 소년 소녀 가장, 노인들과 더불어 2박 3일 제주도 수학 여행길에 오릅니다. 매번 이천만 원이 넘는 여행경비 전액을 대면서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본인은 여행 가이드로 변신하여 10년이 넘게 이들과 수학여행을 함께 하기를 해 오고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참으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이웃을 도와주고 있는데 이렇게 도와 준 돈이 15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진한 향내를 풍기는 삶이 아닙니까?

어렸을 적 공개적으로 구제받았던 부끄러웠던 경험을 통하여 그는 이렇듯 속 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향수 생산업자들은 발칸산맥의 장미를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딴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장미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겪는 갖가지 아픔들은 더 속을 깊게 만들고, 포근하고, 정겹고, 포용력 있는 그릇으로 빚어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119:71).
비록 우리가 지극한 아픔을 겪고 있더라도 그 아픔을 통하여 우리를 보다 맑고 진한 향기를 품어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감지한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