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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 - 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6월 10일 금요일
조회수: 2178
뉴스▲ 억울하게 사약을 받았어도 임금을 경외했던 충신은 / 일러스트 김동호


1. 지혜와 명철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잠 8:13)

앞 절에서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는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가 어떻게 지혜와 명철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을 알려줍니다. 만일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얼굴만 보아도 밉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싫어집니다. 더욱이 상대로 인해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 이상 보복해 주려고 하거나 상대가 잘못 되기를 바랍니다. 악이 많을수록 악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고부간 갈등도 미움에서 나옵니다. 또 부자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면 지존파 등 엄청난 폭력을 휘두르는 조직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예를 들은 것입니다. 성경에도 미움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고 피의 제사를 드렸던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자 아벨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또 사도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악한 사람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을 미워합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가 어떤 행동을 해도 좋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것을 깨우쳐야할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하기를 이렇게 미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축복을 받고 만사형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영육 간에 강건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과 어둠을, 비진리를 모양이라도 미워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일터와 사업 터에서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여 섬기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이기심과 거짓, 교만 등 악을 버리고 빛 가운데 살았는데,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했는데 축복을 받지 못했는지요? 하나님 말씀은 진실 자체요, 참되기에 축복 받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만큼, 악을 버리고 변화되는 만큼 축복을 받는 것을 봅니다. 가정에 문제가 많고, 일터와 사업 터가 어렵고 시험 환란이 계속 되고 있다면 말씀으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답이 정확하게 나올 것입니다.


2. 진정한 충신은

만일 사람이 누군가를 극진히 사랑하면 죽어가면서도 충성하는 것을 봅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 가운데 충신이 왕으로부터 사약을 받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모함하는 간신배들의 말에 넘어간 왕이 사약을 내린 것입니다. 이 신하는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왕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궁궐 쪽을 향하여 공손히 절을 올린 후에 사약을 마시고 죽었던 것입니다. 왕을 경외하였기에 사약을 내린 것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어떤 이유도 대지 않았으며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했기에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경외하는 사람의 행함을 보면 생명을 아끼지 않았으며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백했습니다(롬 8:38-39).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기에 상대가 싫어하는 것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우리가 알았으니 당연히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그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죄요, 악이기에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수군수군하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며 마귀가 좋아하는 어둠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람이 원래는 마귀의 자녀로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악을 버리고 성결되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게 되면 악에 속한 모든 것은 보고 싶지도 않고 상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악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버려나갈 때 참된 평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3.도략과 명철의 차이

계속하여 13절에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악에 속한 몇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교만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면서 자신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찬양하는 사람이 "나는 이렇게 찬양하며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 보다 낫다" 생각한다면 이 자체가 교만입니다. 나는 공부를 잘하니 공부 못하는 저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남을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또 무엇을 지적해 주면 싫어합니다.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이나 칭찬만 좋아합니다. 또한 거만한 사람에게는 상냥한 미소나 상냥한 웃음, 친절과 자비, 긍휼 같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독선적으로 행할 뿐입니다. 잠언 22장 10절에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하였으며 9:7-8에는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악한 자들의 죄를 지적하니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왕의 죄를 지적하자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악인을 책망하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말을 보태고 빼면서 흠을 만들어 퍼뜨립니다. 그러니 거만한 자를 책망해 봐야 유익이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또 악한 행실은 세상에서도 많은 유형이 있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순종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다투고 감정을 갖는 것 등을 말합니다. 패역한 입은 진리에 어긋난 구부러진 말이나 경거망동한 행동,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 등이 해당합니다. 이런 사람의 입은 거칠고 악하며 독을 머금고 있습니다.

선한 입에 대한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고자 하실 때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간청한 아브라함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조롱하며 비웃는 사람들은 참으로 악한 입이었습니다.

계속하여 8장 14절에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다" 말씀합니다. 즉, 지혜가 있는 곳에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략은 '기이하고 묘한 꾀'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도략은 완벽한 방법론을 의미합니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 했지만 주인이 팔지 않으려고 했기에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민하던 아합과는 달리 아내 이세벨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략을 꾸몄습니다. 그런데 이 도략은 악에서 나왔기 때문에 엄청난 악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류인 깡패들을 매수해서 나봇을 죽였던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악한 사람이 좇는 도략과 선한 사람이 좇는 도략이 다릅니다. 그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도략은 명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도략은 어떻게 대처하였느냐는 방법론으로 악한 것이나 선한 것이 모두 포함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명철과 다른 점입니다. 명철은 밝고 환하고 온전한 것으로 모든 면에 유익이 되는 선한 방법론을 말합니다. 이세벨은 악에서 나온 방법만 알고 있었을 뿐 참된 지식이 없었기에 자신의 이러한 행동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반역한 아들 압살롬이 죽임을 당해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신하들에게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을 죽이는 것이 더 마음 아픈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마음을 알지 못했기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리를 좇아 죽이지 말라는 선한 모략을 베풀었지만 아랫사람들이 미련하여 따라주지 못한 것을 봅니다. 영적인 지식은 사람에게 힘이 되고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2011년 06월 10일 (금) 11:01:55 이재록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