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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이재록 목사의 잠언강해- 29] 그물에 걸려드는 사람들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5월 13일 금요일
조회수: 1880
뉴스▲ 원수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지 말자/ 일러스크 김동호


1. 죄를 지으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잠 7:13-15)


몸을 팔아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행위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과거에 이런 세계에서 살았다 해도 현재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주 안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 미움과 다툼, 사기를 치는 등 비진리 속에 살아가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본분을 잃은 채 살아가는 사람은 몸을 팔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인과 다름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살다가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으며 빛의 세계를 알고 나면 이런 행동이 얼마나 추악하고 무례하고 슬프고 부끄러운 일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발견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도하며 열심히 버려 나가면 깨끗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사랑과 화평 속에 행복한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14절을 보면 호리는 여인이 화목제물을 드렸기에 만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여기서 무엇에 대한 화목제물인지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여인은 상대의 마음에 맞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교태를 부리며 상대를 휘어잡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가정이 파괴되고 인생을 망친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나 기도하며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에게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그럴듯한 명분으로 호리는데 여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법도를 어긴 것은 탐욕과 교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살찐 짐승을 죽이기가 아까웠으며 제사장을 대신해서 자신이 번제를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 말씀만 명심하고 탐욕이 없었더라면 탐스러운 짐승이 눈에 들어왔겠습니까? 발람 선지자 역시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에 원수 마귀가 역사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자 하면 원수 마귀가 방해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는 성결을 이루고자 결심한 사람은 마귀의 훼방을 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이 성결을 이루고자 결심했더니 화를 낼 일이 많이 생겼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경우 때를 좇아 금식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열심히 선을 행하고 참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럴 때 위로부터 힘이 옵니다.


2. 푸주간에 들어가는 소처럼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沒藥)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7:16-18)

여기서 '화문 요'는 꽃무늬로 수놓은 아름다운 요를,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은 애굽에서 수입해 온 이불을 말합니다. 몰약과 침향과 계피는 향을 내는 것으로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매우 비싸고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누구나 유혹받을 수 있는 물품으로 궁중이나 귀족들이 사용하였지요. 이런 최고의 물품이 필요한 것은 말로만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만반의 준비로 마음을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도 이와 같이 사람을 유혹하여 패망의 길로 빠지게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뿐 아니라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사람도 유혹해 옵니다. 일례로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구미가 당기는 유혹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맛에 딱 맞게 오는 것일수록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 속에 문제점이나 속임수가 숨어 있기 십상입니다.

믿음이 있는 진실한 사람은 영적으로 분별해서 진리에 어긋난 것은 과감히 버리고 정도를 좇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은 후 매장지를 살 때 땅 주인이 그냥 주고자 했지만 거절하고 정가를 주고 구입했습니다. 지혜로웠던 아브라함은 현실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은 후까지 생각하여 정가를 주고 샀기 때문에 자신이 죽고 왕이 바뀐 후에도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7:19-22)

여인은 남편이 은을 가지고 멀리 갔으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서 소년을 안심시킵니다. 소년이 유혹에 빠져들어가니 제 삼자가 봤을 때 소가 푸주간에 죽으러 들어가는 것과 같고 미련한 사람이 쇠사슬에 매이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만일 자녀가 이렇게 올무에 빠져든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그러면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소가 푸주간에 도착하면 죽음을 맞게 되고 가죽은 가죽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팔립니다. 또 쇠사슬에 묶이면 빠져나갈 희망이 없습니다. 쇠사슬에 묶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세상 죄악 속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방탕한 길로 간 것을 말합니다.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야 될 사람들이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 바로 푸주간으로 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소년처럼 행동하는 것이 멸망당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세상이 온통 죄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유혹이 와도 물리치고 절제하며 정도를 좇아갑니다. 천국으로 가는 좁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7:21-23)

활을 쏘는 사람은 목표물을 겨냥하여 일격에 쓰러뜨리고자 합니다. 화살이 날아가 심장이나 간을 뚫을 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깊이 박히면 화살을 뺄 수도 없습니다. 유혹에 빠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한번 유혹에 빠지면 좀처럼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린 시절에 새를 잡아 본 적이 있는지요? 그물 망 안에 먹이를 놓고 새를 기다리면 한 두 마리가 날아와 탐색전을 벌입니다. 처음에는 그물망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아무 기척이 없으면 그물 안으로 조금 들어가 먹이를 먹고 나옵니다. 그래도 괜찮으면 더 깊이 들어가 먹이를 먹습니다. 그물 안쪽에 먹이가 많이 있기에 나중에는 여러 마리가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럴 때 낚아채면 새는 그 안에 갇혀 잡힙니다. 그렇다면 그물에 걸려드는 새만 미련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영적으로 보면 이와 마찬가지로 화살이 간을 뚫고 새가 그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미련한 경우가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방탕함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다가 가정이 흔들리고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 그러합니다. 또 하나님 말씀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용서하라, 화평하라, 거룩하라 등 빛 가운데 살아갈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을 무시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는 사람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냥꾼은 짐승이 다닐만한 길에 덫을 놓고 기다리다가 걸려들면 쾌재를 부르고 즐거워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 마귀가 그물을 쳐 놓고 있다가 사람이 그 안에 걸려들면 한 마리 잡았다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전 3:18).

2011년 05월 13일 (금) 16:09:32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