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7] 정직한 자에게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는 하나님 [본문 : 잠언2:7-8]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조회수: 3349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존하려 하심이니라" (2:7-8)
▲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꿈 해석을 한 요셉 / 일러스트 김동호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존하려 하심이니라" (2:7-8)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손해이고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려고 소득을 속여 신고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이 물건값을 깎을 때 실제로는 이윤이 남지만 "이만큼 깎아주었으니 내가 손해를 보고 파는 것"이라고 거짓말합니다. 또 부모에게 용돈을 더 타내기 위해 책값이 얼마든다고 하며 값을 속이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부부 간에도 아내가 남편 몰래 계 모임을 하다가 깨지면 부부 싸움이 일어나고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는 배우자 몰래 불륜을 저지릅니다.
형제 간에도 이것은 그냥 형식적인 것이니 이름만 사인해 달라고 속여 보증을 서게 했는데 일이 잘 풀리질 않아 보증 서준 형제까지 망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렇게 서로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입니다.
이렇게 속이며 적당주의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속이는 자는 반드시 속임을 당하며 비판하면 비판을 받고 헤아리면 헤아림을 받으며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남을 속여 잠시 유익이 되는 것 같아도 결과는 자신도 속고 더 크게 당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속이는 것은 죄이며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정직했던 인물로 요셉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정직하게 행하였더니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벽한 지혜를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애굽 신하들이 해석을 하지 못하였기에 감옥에 있던 요셉이 왕 앞에 나와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입니까?
그런데 혹자는 꿈 해석만으로 어떻게 총리가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위기를 헤쳐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뿐 아니라 다니엘도 꿈 해석을 정확히 했습니다. 이들은 정직했고 진실했으며 악은 모양이라도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해석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첫 번째가 성결입니다.
세상에는 적당히 속이며 넘어가는 적당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적당주의는 악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러한 악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려움이나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시며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하나님은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행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아내를 두 번씩 빼앗겼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무사히 찾았으며 재물까지 풍성히 얻었습니다. 다니엘이나 요셉,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실을 온전케 하였기에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셨으니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건져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날마다 선을 좇아 행실이 온전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지켜 주십니다. 방패로 막으면 칼이나 화살이 나를 뚫을 수 없습니다. 나의 행실이 온전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시험 환란과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내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며 어떤 것이 온전치 않았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공평하게 행하는 길을 보호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부를 잘하며 간사한 사람이 출세하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서고금 역사만 보더라도 간사한 사람의 말로는 결국 비참하게 끝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옛 선조들의 삶을 보면 공평을 추구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도 후세에까지 존중받고 기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백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부유하게 살아가며 어려운 이웃을 구제했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가난과 어려움 속에 살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한 자를 고난 속에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십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은 포로 신분이었기에 가난해야 했지만 공평한 자의 길을 가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애굽 민족을 기근에서 구했지만 요셉의 가족도 그를 통해 기근 중에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존중받는 위치 속에서 많은 부귀를 누렸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그 성도들의 길을 보존하는 분입니다. 여기서 성도는 믿음을 갖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길을 보존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랑하시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종이 물질이 없고 가난하여 늘 빚을 내서 살아가거나 무능하면 이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만큼 존중받으며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고 풍족함 속에 나누는 삶을 살아가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며 참된 신앙인이 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니 질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건강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2:9-10)
여기서 공의는 편벽되이 치우치거나 가식이 섞이지 않은 참된 의, 즉 진리의 도를 말합니다. 공평도 역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것이지요. 진리의 도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이 없고 온전한 것을 나타냅니다. 또 정직은 마음이 바르고 곧은 것입니다.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에 타협하지 않고 굳세게 진리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공의와 공평과 정직을 좇아나가는 사람은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자이시요,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심판하며 행한 대로 갚아주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의와 공평과 정직한 자세로 선을 좇아 행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나 예수님도 공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며 선을 좇아 행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졌고 베풀 수가 있었으며 존중받았지요. 원수 마귀에게 놓임 받고 하나님의 주관 속에 마음껏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땅의 삶을 살아가면서 부모와 자녀, 혹은 부부, 이웃과 관계 속에서 공의와 공평과 정직을 좇아 선을 행하면 이러한 모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음이 성결하며 진리가 임한 사람은 하늘에서 선의 지혜가 와서 그 마음 안에 들어갑니다. 이런 지혜를 받으면 말하는 방법이나 판결 등 모든 일을 능력있게 이룰 수 있는 방법론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일에 부딪혀도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응답받아 일을 해결해 나갑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싸움이 일어나고 갈라지고 미워하고 다투며 상처받는 일이 많은데 이는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의와 공평과 정직과 선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를 받기에 형통한 길을 가게 됩니다.
진리의 지식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목적과 계획과 방법 등을 깨우쳐 줍니다. 이러한 지식이 지혜와 겸비될 때 우리 영혼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2010년 11월 10일 (수) 10:25:38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
▲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꿈 해석을 한 요셉 / 일러스트 김동호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존하려 하심이니라" (2:7-8)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손해이고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려고 소득을 속여 신고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이 물건값을 깎을 때 실제로는 이윤이 남지만 "이만큼 깎아주었으니 내가 손해를 보고 파는 것"이라고 거짓말합니다. 또 부모에게 용돈을 더 타내기 위해 책값이 얼마든다고 하며 값을 속이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부부 간에도 아내가 남편 몰래 계 모임을 하다가 깨지면 부부 싸움이 일어나고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는 배우자 몰래 불륜을 저지릅니다.
형제 간에도 이것은 그냥 형식적인 것이니 이름만 사인해 달라고 속여 보증을 서게 했는데 일이 잘 풀리질 않아 보증 서준 형제까지 망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렇게 서로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입니다.
이렇게 속이며 적당주의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속이는 자는 반드시 속임을 당하며 비판하면 비판을 받고 헤아리면 헤아림을 받으며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남을 속여 잠시 유익이 되는 것 같아도 결과는 자신도 속고 더 크게 당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속이는 것은 죄이며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정직했던 인물로 요셉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정직하게 행하였더니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벽한 지혜를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애굽 신하들이 해석을 하지 못하였기에 감옥에 있던 요셉이 왕 앞에 나와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의 완벽한 지혜입니까?
그런데 혹자는 꿈 해석만으로 어떻게 총리가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위기를 헤쳐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뿐 아니라 다니엘도 꿈 해석을 정확히 했습니다. 이들은 정직했고 진실했으며 악은 모양이라도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해석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첫 번째가 성결입니다.
세상에는 적당히 속이며 넘어가는 적당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적당주의는 악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러한 악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려움이나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시며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하나님은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행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아내를 두 번씩 빼앗겼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무사히 찾았으며 재물까지 풍성히 얻었습니다. 다니엘이나 요셉,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실을 온전케 하였기에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셨으니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건져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날마다 선을 좇아 행실이 온전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지켜 주십니다. 방패로 막으면 칼이나 화살이 나를 뚫을 수 없습니다. 나의 행실이 온전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시험 환란과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내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며 어떤 것이 온전치 않았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공평하게 행하는 길을 보호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부를 잘하며 간사한 사람이 출세하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서고금 역사만 보더라도 간사한 사람의 말로는 결국 비참하게 끝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옛 선조들의 삶을 보면 공평을 추구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도 후세에까지 존중받고 기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백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부유하게 살아가며 어려운 이웃을 구제했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가난과 어려움 속에 살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한 자를 고난 속에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십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은 포로 신분이었기에 가난해야 했지만 공평한 자의 길을 가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애굽 민족을 기근에서 구했지만 요셉의 가족도 그를 통해 기근 중에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존중받는 위치 속에서 많은 부귀를 누렸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그 성도들의 길을 보존하는 분입니다. 여기서 성도는 믿음을 갖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길을 보존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랑하시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종이 물질이 없고 가난하여 늘 빚을 내서 살아가거나 무능하면 이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만큼 존중받으며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고 풍족함 속에 나누는 삶을 살아가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며 참된 신앙인이 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니 질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건강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2:9-10)
여기서 공의는 편벽되이 치우치거나 가식이 섞이지 않은 참된 의, 즉 진리의 도를 말합니다. 공평도 역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것이지요. 진리의 도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이 없고 온전한 것을 나타냅니다. 또 정직은 마음이 바르고 곧은 것입니다.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에 타협하지 않고 굳세게 진리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공의와 공평과 정직을 좇아나가는 사람은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자이시요,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심판하며 행한 대로 갚아주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의와 공평과 정직한 자세로 선을 좇아 행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나 예수님도 공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며 선을 좇아 행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졌고 베풀 수가 있었으며 존중받았지요. 원수 마귀에게 놓임 받고 하나님의 주관 속에 마음껏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땅의 삶을 살아가면서 부모와 자녀, 혹은 부부, 이웃과 관계 속에서 공의와 공평과 정직을 좇아 선을 행하면 이러한 모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음이 성결하며 진리가 임한 사람은 하늘에서 선의 지혜가 와서 그 마음 안에 들어갑니다. 이런 지혜를 받으면 말하는 방법이나 판결 등 모든 일을 능력있게 이룰 수 있는 방법론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일에 부딪혀도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응답받아 일을 해결해 나갑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싸움이 일어나고 갈라지고 미워하고 다투며 상처받는 일이 많은데 이는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의와 공평과 정직과 선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를 받기에 형통한 길을 가게 됩니다.
진리의 지식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목적과 계획과 방법 등을 깨우쳐 줍니다. 이러한 지식이 지혜와 겸비될 때 우리 영혼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2010년 11월 10일 (수) 10:25:38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