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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6] 생명의 지식을 구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명철을 찾아야 [본문 : 잠언2:1-4]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조회수: 1593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2:1-4)

뉴스▲ 도굴꾼은 무덤 속에 보물을 꺼내가지만 우리는 명철이란 보물을 찾아야 일러스트 / 김동호


'말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을 간직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이룰 때까지 순종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함을 이룬 후에도 마음속에 항상 기억될 수 있는 것이지요.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구세주가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말씀해 주실 때에 그말씀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두고 끝까지 간직하여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까지 지켜 나왔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들은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었기에 메시아가 그녀에게 잉태되었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일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천국에서는 얼마나 존중받고 영광된 위치를 차지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마리아는 구세주가 아니며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복을 달라고 빌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복을 달라고 기도해야지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우상으로 섬기면 오히려 그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를 지혜에 기울이라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엘리사를 보면 스승 엘리야를 붙좇았기 때문에 갑절의 영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이나 엘리야가 따라오지 말라고 하고 선지자의 생도들도 그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좇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갑절의 영감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참으로 부유한 자가 되고 영생의 길을 가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고자 원한다면 이렇게 사모하는 중심으로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 명철은 밝은 길을 예시하는 것으로, 우리 마음은 길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 말씀이 항상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기도하는 방법론에 대해 여러분에게 세밀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혜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명철에 둔다는 것은 마음에 그대로 담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절에 "지식을 불러 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식은 사물의 이치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단어가 지식으로 입력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구별하며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지식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얻으면 됩니다. 솔로몬은 애초부터 지혜를 받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일천번제를 드리므로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마음의 소원을 물으실 때에 지혜를 구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명예와 부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으니 넘치는 명예와 부까지 덤으로 얻은 것입니다.

또 고넬료 역시 무엇을 얻고자 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군대 장교로서 이방인이었지만 범사에 기도하며 선행과 구제를 하였지요. 그의 선과 행함이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받고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말씀을 들었으면 선을 행하므로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킬 때에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이번에는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인다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소리를 높이는 것은 다투거나 혹은 집중시켜 관심을 끌려고 할 때 등 이런 저런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자기 악함 속에 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본문에서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소리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명철을 얻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인내로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통해 눈을 뜨겠다는 일념으로 소리를 높였습니다.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니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으니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부르짖으라 하셨습니다(렘 33:3).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우리 속마음을 아심으로 부르짖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크게 부르짖을 때 속히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고, 찾게 하시고,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마 7:7).

그러면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지금은 귀금속도 발달하여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마는 솔로몬 왕 시대에 은은 부귀의 상징이었습니다. 옛 우리 조상들도 궁궐이나 양반 사회에서 은가락지 등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귀히 여기며 부귀와 권세를 과시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은은 주로 장신구나 성막의 기물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또 우리가 명철을 얻기 위해서는 보물을 캐듯 하라고 하십니다. 보물을 실은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바다 속에서 수색 작업을 벌인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도굴꾼들은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보물이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이나 황제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꺼내갑니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근래에는 뇌관과 폭약 등 현대적 장비까지 동원하여 무덤을 파헤칩니다. 중국에서는 "부자가 되고 싶으면 무덤을 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굴 광풍이 번져 전국적으로 무덤이 파헤쳐진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응답받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이렇게 귀한 은이나 보물을 찾듯이 노력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조그만 일에도 시험에 들거나 서운해하며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보물 찾듯이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에 걸려 넘어지다가 천국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향한 적은 없었는지요?

우리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있었던 사육신과 생육신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섬겨온 임금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초개같이 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임금을 섬기는 육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늘나라에 가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명철을 얻어야 하니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2:5-6)

마리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였으며 이룰 때까지 명심하였습니다. 이렇게 마리아처럼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 지켜 나가면 하나님 마음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지혜에 귀를 기울여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또 순종하였으며 명철을 구하는 사람이 된 후에는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깨달았지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창 22:12).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체험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깨닫고 하나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매장지로 막벨라 굴을 살 때 그 땅에 있던 거주민이 공짜로 주겠다고 했으나 정가를 치뤘습니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린 온역을 그치게 하려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값을 치르고 샀습니다(삼하 24장). 왕에게 그냥 바친다고 하는 것을 사양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온전히 자기 것을 만들어 훗날에 시비가 없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음식에서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지식만 갖추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지식을 올바로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또 지혜나 명철이 있더라도 지식이 없으면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명철을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지혜와 명철이 있는 만큼 유익한 것인데 여기에 지식이 많으면 자신이 갖고 있는 지혜와 명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도 말씀을 아는 것이 힘인데 생명의 지식이 없다면 지혜나 명철이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인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지혜와 명철이 어우러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잘 알지만 지혜와 명철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와 명철은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활용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식을 조금 배운 사람과 많이 배운 사람이 있는데 이들에게 지혜가 똑같이 임한다면 많이 배운 사람이 그 지혜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이 배웠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온전히 앎을 의미합니다. "진리 안에서 온전한 앎"이란 어떤 것일까요?

말씀을 들었으면 영적으로 깨달아 마음에 심어 양식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말씀을 듣고 지식으로 끝난다면 이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지요.

선 자체이시며 성결한 마음을 갖고 계신 예수님에게 하늘의 지혜가 임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가르침을 통해 지식도 갖추고 계셨습니다. 명철도 있었으니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하나님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서나, 삶이나 환경 등 모든 것을 바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다 갖추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산상수훈 가운데 팔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만일 가난해지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듣는 이들이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지혜롭게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또 명철은 능력을 나타내 보임으로 그 길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친 후 그대로 행하게 될 때 받게 되는 축복을 알려주셨으며 권능을 행하며 말씀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2010년 11월 03일 (수) 11:22:59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