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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말씀]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교훈(1)
출처
만민뉴스 제493호 PDF
날짜
2011년 8월 7일 일요일
조회수: 8892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요한계시록 3:1~3)




뉴스 당회장 이재록 목사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그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시대의 모든 교회를 총칭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교회를 일곱 가지 유형별로 분류하여 각 교회에 필요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 곧 사데교회에 향하신 주님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당시 '사데'라는 도시는 염직공업이 발달하여 부요하였으나, 사치와 부도덕이 만연하였고 거대한 신전이 있는 이방 종교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놓인 사데 교회는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사데 교회에 편지한 주님의 모습을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라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일곱 영이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 66권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있는지, 어떻게 응답받을 수 있는지 등 그 방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요 4:24). 따라서 일곱 영이란 완전한 하나님의 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을 두루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춰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비유하면, 일곱 영은 하나님 편에서 응답하기 위해 측정하는 저울과 같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 저울에 달아 무게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에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할까요?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측정하는데 크게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합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지식에 불과한 육적인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영적인 믿음을 측정합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과 내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의심 없이 믿으며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마음에서 악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둘째, 기도를 측정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살피지요.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는 습관을 좇아, 무릎을 꿇고, 힘쓰고 애써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겉모습이 아닌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우리는 중심의 기도를 하되 욕심 가운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따라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고 응답을 분명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쁨은 마음의 평안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과 죄의 담을 만들지 않음으로 화평을 이룰 때 마음에서 기쁨이 떠나지 않습니다.

넷째, 감사를 측정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 있을 때에는 감사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내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믿음이 아니므로 응답이 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계명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일곱 영은 이러한 십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하지요.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므로 계명을 지킬 때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5:3).

여섯째, 충성을 측정합니다. 하나님의 일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 주변의 모든 일에 충성하는지 살피지요. 물론 믿음이 있다면 항상 주의일에 우선순위를 두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과 직장의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를 하여 죄를 버려 나가는 영적인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가운데, 생명을 드리기까지 충성할 때 온전한 충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사랑을 측정합니다. 사랑은 앞에서 살펴본 여섯 가지 분야를 온전하게 엮는 띠와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하며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다 해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모든 것에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일곱 영은 믿음, 기도, 기쁨,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여 응답의 여부를 판가름하는데, 그 기준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각 사람의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에 따라 공의롭게 측정하십니다. 곧 믿음이 작은 사람은 측정 기준이 낮지만 신앙의 연수도 오래되고 믿음이 큰 사람이라면 기준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일곱 별을 가지셨는데, 별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5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며 아브라함 자손을 별에 비유하셨지요. 여기서 일곱 별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모든 주의 종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능력의 팔로 붙드시며 친히 주관하여 사용하시는 주의 종을 가리키지요. 주님께서는 이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셨다는 것은 일곱 영으로써 모든 것을 감찰하고 일곱 별로써 하나님 자녀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2.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통해 측정하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는 주님 앞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하신 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십니다. 사데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사람이 보기에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님께서 정확한 잣대로 측정하실 때에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말씀은 사데 교회 성도들 믿음이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 후 그의 후손은 다 영이 죽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이렇게 영이 살아난 사람은 비록 호흡이 끊겨 죽음을 맞는다 해도 성경은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말합니다(마 9:24).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때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죽었다'는 책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죽은 믿음이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약 2:14).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선악 간에 반드시 심판이 있음을 중심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만 지식적으로만 알 뿐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행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오늘날도 머리로는 말씀을 알지만 정작 행함은 따르지 않는 쭉정이 신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겉으로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고 찬송과 기도를 하지만 삶 속에서는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혈기를 내면 같이 혈기를 내는 등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야고보서 2장 20절에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말씀하신 것처럼 그 믿음이 결국 헛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함이란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한 행함을 의미합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변화시켜 나가며, 진리로 일구어진 마음으로부터 진실한 행함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행함 자체가 아니라 그에 담긴 마음입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면 자연히 행함이 따릅니다. 그러나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지도 않습니다. 설령 행한다 해도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외식에 불과합니다(마 6:1).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 겉으로는 말씀대로 행할 수도 있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함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사 29:1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행함과 함께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알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3.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에 책망의 말씀을 하신 후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계 3:2)고 하셨습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 이제는 진리 안에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에서 벗어나 이제는 행함이 따르는 참 믿음, 산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이어서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2)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는다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간다는 말씀으로서, 바꿔 말하면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까지 알려 주십니다. 곧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계 3:3)는 것입니다. 우리가배우고 받고 듣고 본 대로 행해 나가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빌 4:9). 만일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지키어 회개하라" 하신 대로 이제라도 회개하고 행해야 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단지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안 그러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행하던 길에서 완전히 돌이켜 바른길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할 때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처음에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며 성령받은 후 첫사랑의 뜨거움은 어떠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큰 은혜를 받고 성령이 충만했었는데 과연 그것을 얼마나 소중히 지키며 간직해 왔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처음에 가졌던 마음과 행위를 지키지 못하여 다시금 세상으로 빠지거나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회개하여 예전의 충만함과 뜨거움을 회복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4.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에게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시며 회개하지 않고 끝내 돌이키지 않을 때에 어떤 결과를 맞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만일 죄 가운데서 돌이키지 못한 채로 재림의 주님을 맞는다면 이미 때는 늦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잠든 사이에 도적이 들어오는 것처럼 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합니다. 그러나 어둠에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4~5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마 24:36). 하지만 성경을 통해 대략적인 시기는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임산부가 몇 날 몇 시에 아이가 태어날지 정확하게 모른다 해도 출산 예정일을 대략 추정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마지막 때의 징조를 알려 주셨으니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깨어 기도함으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벧전 4: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전서 1장 23절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썩지 아니할 씨'를 받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을 정성으로 가꾸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정녕 거듭난 사람이며, '살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식적으로만 담아 놓은 것은 참 믿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들은 말씀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해 나갈 때 마음에 심어진 말씀의 씨가 싹을 내고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로 맺히게 됩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있고 믿음도 있어 보이는 사람 중에도 실상은 죽은 믿음을 가진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의 기준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직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주의 종이나 일꾼이라 해도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게 가르치거나 행한다면 결코 귀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위치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 진정 그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마 5:19, 23:3).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이 먼저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가 장차 천국에서도 '크다' 일컬어지며, 이 땅에서도 말씀의 권세로써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