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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획특집]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교훈(1)
출처
만민뉴스 제498호 PDF
날짜
2011년 9월 9일 금요일
조회수: 90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3:7~8)




뉴스 당회장 이재록 목사


초대교회 사도들이 사역하던 당시 빌라델비아는 전체 인구가 1천여 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포도 생산지로 유명한 그곳 사람들은 디오니소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를 숭배할 만큼 포도주와 춤 등 향락을 즐겼다고 합니다.

또한 빌라델비아는 교통의 요충지로 당시 사데, 버가모, 트로이를 거쳐 로마로 가는 관문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세운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교회로, 오늘날 많은 교회의 표상이 됩니다.



1.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신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사람보다 뛰어나며 죄에 물들지 않고 흠과 점이 없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뜻입니다. 원래 거룩하다는 표현은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고 진실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사람에게는 거룩하다는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벧전 1:16). 요한복음 10:34~35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은 사람이란 말씀대로 지키고 행하는 사람을 뜻하며,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신이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이라 인정한다 해서 정말 하나님과 같은 신의 차원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온전한 하나님 자녀로서 영의 사람, 진리의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리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다음으로, '진실'은 거짓이 없는 참을 뜻하며 변개하지 않는 것, 좌우로 치우치거나 간사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진실할 때 믿음도 주어지며 하나님 말씀이 살아 역사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이 곧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진실하지 못할 때에는 말씀에 대한 의심이 생기거나 비진리에 유혹될 수 있고, 진실한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고전 2:13).



2.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어떤 축복의 문이든 열 수 있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만큼 다윗이 하나님 앞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격을 얻기까지 다윗에게는 혹독한 연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한 뒤 그녀가 잉태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죽게 만든 일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아가 얼마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충성된 사람이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삼하 11장). 다윗은 그처럼 선한 부하를 적군의 손에 죽게 만드는 엄청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특별히 다윗이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하여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권세를 가진 왕의 위치에 있었기에 마음 깊이 내재된 본성 속의 악이 결국 이런 범죄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그럴 만한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질 때 언제든지 범죄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셨기 때문에 다윗에게 연단을 허락하여 철저히 자신을 발견하고 깨달아 온전한 성결로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은 혹독한 연단을 받으면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길 때 자신을 멸시하고 저주하는 백성을 벌하지 않았습니다(삼하 16장). 오히려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지요. 이전에 왕의 권세로 죄 없는 우리아를 죽게 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연단을 통해 하나님 앞에 합한 사람으로 변화된 후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계보를 통해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 결국 구원의 문이 열리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특정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 거룩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 나가는 만큼 건강, 물질, 명예, 권세의 문이 열리고, 종국에는 가장 큰 축복이라 할 수 있는 새 예루살렘의 문을 여는 열쇠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다윗의 열쇠, 곧 모든 축복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축복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로써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구원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열리고 그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행 4:12). 원수 마귀 사단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모든 축복의 문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열고 닫으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정확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3.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칭찬에 앞서 하늘 문을 열고 마음껏 축복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특히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문을 여셨으니 사람이나 천사나 원수 마귀 사단이라 해도 닫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함께할 것을 보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고백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하시며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는 말씀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셨던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놀라운 권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의 언약은 빌라델비아 교회뿐만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는 모든 사람과 교회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고 인도해 가시는 사람과 교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앞에 열어 주신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



4.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처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적은 능력'이란 우리가 처음 주님을 영접하여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의 상태를 말합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새들이 깃듭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겨자씨와 같이 작은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신앙생활을 해 나감에 따라 점차 성장하여 큰 믿음에 이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처음에 가진 적은 능력, 즉 작은 믿음을 가졌을 때부터 배운 주님 말씀을 지키며 열심히 믿음을 키워 왔습니다.

사실 처음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지켜 나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길 능력이 그만큼 적기 때문에 진리를 알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혈기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은혜받아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적은 능력을 가졌을 때에는 기분 상할 일이 생기면 이내 혈기를 내고 맙니다. 하지만 적은 능력을 가졌다 해도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열심히 기도하며 말씀을 하나하나 지켜 나감으로 신속히 믿음이 성장하여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실제로는 큰 능력을 가졌는데도 지극히 적은 능력을 가진 것과 같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시며 권세도 능력도 똑같이 지닌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사람의 몸을 입으셨기에 배고픔이나 추위, 육신의 피곤함, 십자가의 모진 고통 등을 보통 사람과 똑같이 느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지극히 적은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입고서 구세주로서의 사명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매우 큰 능력을 가진 분인데도, 지극히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공의에 맞추어 행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곧고 중심이 좋은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큰 능력을 주어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공의에 맞추어 한 단계, 한 단계 이끄셔서 적은 능력으로부터 마침내는 큰 능력으로 역사해 가시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 말씀을 지켜 행함은 물론 그 이름을 배반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을 배반한다는 것이 꼭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주님을 저버리고 떠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넓은 의미에서는 그 이름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막상 시험이 오면 노력해 보지도 않은 채 다시금 세상 풍조를 좇아 타협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의 뜻을 알면서도 작은 것이라 하여 행치 않다 보면 어떤 시험 환난이 왔을 때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불평 불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쯤이야' 하며 진리를 어긴 것이 결국에는 주님을 완전히 배반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 그 행함이 주님께 칭찬을 받을 만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살며, 시험 환난이 와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든든한 반석 위에 서 갔습니다.

우리가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 말씀을 지키며 배반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내고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과 싸워 이기려면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하므로 불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죄와 어둠, 육이 무엇인지 알아 신속히 벗어 버리고 선과 의와 빛 등 진리에 대한 것도 밝히 알아야 합니다. 자칫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진정 주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지적과 책망을 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데, 그것을 통해 주님의 뜻을 더 밝히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오늘날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경우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친히 간섭하는 제단에 대해 밝히 깨우침을 주시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오늘날에도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라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어떤 핍박이나 연단이 온다 해도 끝까지 인내하여 사랑과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이러한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축복이 그대로 임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보장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며 놀라운 권능의 차원에 이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영적인 권세의 문, 큰 기사와 표적과 희한한 능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권능의 문 등 많은 축복의 문을 열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적인 축복의 문을 열어 갈 때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격 조건을 갖춘다면 개인적으로도 새 예루살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더 가까이 주어집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후 지금까지 빌라델비아 교회를 모델 삼아 주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칭찬받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어떠한 핍박이나 시험도 인내하며 나아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창조의 권능을 허락하셔서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단번에 지금과 같은 권능이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공의에 맞추어 때로는 혹독한 연단의 과정을 겪으며 믿음으로 승리했을 때 하나님께서 한 단계씩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열쇠를 주셨다 해도 그 열쇠로 문을 열어 그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는 것은 개인의 몫이고 각 교회의 몫입니다. 학개 2:9에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신 것처럼 비록 적은 능력을 가졌다 해도 저마다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이전보다 더 창대하게 이루고 많은 열매를 내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겠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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