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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기획특집]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교훈(2)
출처
만민뉴스 제499호 PDF
날짜
2011년 9월 18일 일요일
조회수: 11066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9~13)







뉴스 당회장 이재록 목사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은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당시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일곱이란 완전수로서 일곱 교회는 성령 시대의 모든 교회를 총칭합니다.

요한계시록 3:8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말씀합니다. 그러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축복의 말씀과 권면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1.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 사랑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주의 종과 교회라면 그 증거를 여러모로 나타내십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무수히 나타내며 사람으로서는 풀 수 없는 영계의 깊고 비밀한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가운데 풀어 주십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한다 해도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시지요. 때로는 연단의 과정 속에서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핍박이나 시험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축복이며 반드시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반면에 핍박하거나 시험한 사람들에게는 공의 가운데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는 사람이나 교회를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사람들이 모두 비참한 종말을 맞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자이며 적그리스도라 했습니다(요일 2:22). 그런데 "주님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믿는다하면서도 자칭 유대인같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요일 1:6). 이러한 사람 중에 몇을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와 주의 종임을 더욱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9에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여기서 '사단의 회'란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진리에 위배되는 말을 하며 교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무리를 말합니다. 또한 '자칭 유대인'이란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사단의 회에 속해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사람을 말하지요.

이들은 입으로는 하나님 자녀라 말하면서도 진리 안에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 정죄하며 수군거림으로 교회 안에 분쟁과 다툼을 일으켜 시험거리를 만듭니다. 자신의 생각과 틀에 맞지 않으면 심지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를 잘못되었다 하거나 이단이라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믿는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와 주의 종을 시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자칭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케 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이라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이 다 회개해 돌이킨 것은 아닙니다. 이미 그들의 죄가 성령 훼방, 모독, 거역에 해당하므로 회개하고 돌이켜 용서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마 12:31~32). 다만 자칭 유대인에 속한 사람 중에도 조금이나마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참된 진리의 말씀과 권능의 역사를 보고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들의 훼방이 오히려 더 큰 권능을 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악한 사람들을 주관해 시험과 핍박을 줄 수 있지만 이를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공의의 법칙에 따라 더 큰 권능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선과 사랑과 믿음으로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만큼 놀라운 권능의 차원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2.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배반치 않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인내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시험의 때를 면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계 3:10). 왜 인내의 말씀이라고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면 때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마음에 비진리를 좇고자 하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죄를 싸워 버리고 진리를 좇기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며 열심히 인내해야 합니다. 점차 진리의 마음이 비진리의 마음보다 강해지면 진리를 좇는 것이 쉬워집니다. 예전과는 달리 조금만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진리의 행함이 나옵니다.

하지만 진리의 마음이 비진리의 마음보다 커졌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서 악의 모양을 모두 벗어 버리기까지 늘 인내하며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저마다 믿음의 분량 안에서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말씀대로 지키려는 노력을 믿음의 행함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시험의 때'란,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사람, 주님을 배신하고 떠난 사람들에게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갖가지 시험의 때를 말합니다.

'시험의 때'가 의미하는 좀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때는 장차 이 땅에 임할 '7년 대환난의 때'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라면 더더욱 이러한 시험의 때를 만나지 않도록 깨어 근신하며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만약 적당히 교회만 왔다갔다 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며 세상과 타협한다면 결국 휴거되지 못하고 이 땅에 남아 7년 대환난을 겪습니다.

그러나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이 시험의 때를 면할 뿐 아니라, 그토록 사모하며 기다리던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7년 공중 혼인잔치에 들어갑니다. 주님께서 때가 이르러 공중에 강림하시면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곧이어 살아서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잔치를 합니다.

그동안 이 땅에서는 성령이 거두어지고 어둠의 세력이 주관하는 대환난에 접어듭니다.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휴거되지 못한 사람 중에 그나마 믿음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온갖 고문으로 주님을 부인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7년 대환난의 때를 면하려면 깨어서 열심히 기도하며 신부 단장을 해 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야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 안에, 곧 빛 가운데 사는 만큼 원수 마귀 사단과 같은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은데도 이런저런 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뭔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나 보다' 하면서 수군거리고 헤아리며 판단 정죄하는 사람도 있지요.

물론 하나님 자녀들이 진리 안에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시험이나 환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하나님께서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롬 8:28).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고통을 당한다면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가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신앙생활을 잘하는데도 시험이 왔다면 이는 축복을 주기 위해 허락된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시험당하는 것을 볼 때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에 이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보호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험에서 승리한 것이지요. 이 땅에서 받는 잠시 잠깐의 고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을 얻기 때문입니다(롬 8:18).



3.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믿음을 가졌을 때부터 인내의 말씀을 지켜왔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축복의 문을 열고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속히 임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성도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지요(계 3:11). 주님께서 속히 임하신다는 것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속히 임한다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더딘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코 더딘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성취되어 왔지요. 주님의 공중 강림이 아니라 해도 사람들은 강건해야 70, 80세인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 '속히 임하리라' 말씀하신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벧후 3:9~10).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처럼 속히 오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는 것입니다. 앞서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게도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 2:25) 하셨는데, 이때에는 단지 믿음이라도 지켜서 구원을 얻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하신 것은 단순히 구원의 차원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이 작은 초신자 때부터 하나님 말씀을 지켜 왔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해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 곧 상급을 빼앗기지 말고 꼭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정녕 믿음이 있고 천국을 소망한다면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중도에 포기해 면류관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나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안일하고 높아진 마음으로 사명 감당하는 사람도 자칫 촛대가 옮겨질 수 있음을 깨달아 처음 사명 맡았을 때의 열심과 마음가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뉴스4.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며 마침내 이기는 자가 됐을 때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계 3:12). 여기서 '하나님 성전'이란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그곳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에서 주축이 되는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작은 믿음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켜 행하며 주님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신앙이 성장할수록 더욱 변개하지 않고 진리를 행해 결국에는 온전한 성결을 이루며 모든 사명을 충성 되게 감당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 주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새 예루살렘 성의 기둥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축복의 언약을 주셨다 해도 자신이 그것을 붙잡지 않고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 실상으로 나타나기까지 변함없이 충성하며 승리해 나갈 때 약속하신 면류관과 상급은 물론, 새 예루살렘의 기둥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개함이 없으시므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주신 축복을 결코 빼앗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하시며 영원한 축복을 보장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시며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축복의 언약을 보장하셨습니다. 주님의 새 이름이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 죄를 대속해 구속 사업을 완성하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 주어진 영광스런 이름입니다(빌 2:9~11).

천국의 새 예루살렘은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처럼 없어질 곳이 아니며 거룩한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는 곳으로서, 영원한 예루살렘을 말합니다(계 21:1~2). 새 예루살렘은 이 땅에서 온전히 성결하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세세토록 누리는 곳이므로 '영광의 성'이라 부릅니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약속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행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주시는 약속입니다.

영광의 성 새 예루살렘은 적당한 믿음으로 적당히 충성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온전히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온 집에 충성하는 최고의 믿음과 신앙을 인정받아야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것도, 노력만 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불같은 연단을 통해 정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됐고,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사명도 생명을 다한 충성으로 감당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 비로소 새 예루살렘을 바라볼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적은 능력으로도 인내의 말씀을 변함없이 지킴으로써 온전히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기둥이 되는 축복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