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의 소식
제목
믿음으로 기도받고자 마산에서 횡성까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던 제가 살아났습니다. - 김자애 자매
출처
날짜
2001년 6월 24일 일요일
조회수: 8003
"자애야! 왜 그래!"
지난 5월 28일 오후 1시경,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저는 왼쪽 가슴 아래가 죄여 오고 속이 울렁거리며 토혈이 시작되었습니다.
놀란 선생님과 친구들은 저를 부축하여 화장실로 갔고 그 곳에서 검붉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고, 학교 인근 마산 연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큰 병원에 가 보세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CT 촬영 결과 아무 이상이 없어 원인은 알 수 없으며 다만 나중에 검사한 결과 뇌수막염 같다고만 하였습니다.
한편, 제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오신 할머니 조명자 권사님은 의식이 없이 산소호흡기를 의지한 채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저를 본 순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 받은 손수건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셔서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져왔고, 7시간 동안이나 의식을 잃은 채 병실에 누워 있던 저에게 얹고 간절히 기도하셨더니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손발이 오그라들고 막대기 같이 뻣뻣하게 되었으며 혀마저 굳어 말을 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병원에서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여 더 이상 진료를 할 수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손수건 기도로 7시간 만에 깨어난 후"
그러나 저는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어. 하나님께 맡길 테야."
이튿날 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머니! 이제 집으로 가요" 말씀드렸고, 이어 할머니와 마산 만민성결교회 성도님들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횡성에서 「전국 지역장 교육」에 참석하고 있던 어머니(임신숙 사모)도 제 소식을 듣고 5월 29일 밤 11시경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제 온몸은 더욱 오그라들었습니다. 또한 혀가 굳어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어머니는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당회장님 뵙고 싶니? 당회장님께 가서 기도 받자, 응?" 그 말씀에 저는 이재록 목사님을 뵙고 기도 받으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믿음으로 횡성에 도착하니
그리고 5월 30일,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가 아침 7시경 최윤석 집사님께서 저와 어머니, 할머니를 태우고 이재록 목사님을 강사로 「전국 지역장 교육」이 열리고 있는 강원도 횡성을 향해 달렸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횡성까지 가는 동안 저는 세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손발이 굳어 싸늘해졌고 순간 순간 숨을 몰아 쉴 때 가래가 나왔지만 뱉지를 못해 기도(氣道)가 막혔는데, 이는 죽음 직전의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영(靈)이 '붕' 뜨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제가 죽어도 하나님 품 안에 안기니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셨지만 마음 속에서는 목자만 뵈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와서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온전함을 입을지니라, 살아날지니라"
긴장 속에 5시간을 달려 횡성에 도착한 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이 계신 숙소로 업혀 들어갔습니다. 그 때 제 눈동자는 완전히 풀리고, 팔과 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으며, 혀와 손발은 뻣뻣이 굳어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니 능치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께서 거하시는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아득하게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제 영이 '아! 나는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목사님께서 손을 제 몸에 얹는 순간 팔다리에 힘이 주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온전함을 입을지니라, 살아날지니라"
이재록 목사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를 마치시는 순간 저는 눈을 떴고 그 후 20초도 안 되어 저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굽은 양손을 만져 주시자 "쫘악" 펴졌으며, 혀도 풀어져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거짓말처럼 온전해진 저는 스스로 걸어 식당으로 가서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다 먹었는데, 불과 몇 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재록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은 정말 신기하고도 놀랍기만 했습니다.
"죽어가던 몸이 살아나고 마이너스였던 시력도 1.2로 회복되었어요."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행복하기 이를 데 없어 즐겁게 대화를 하던 중 원래 마이너스 시력인 제가 안경을 쓰지 않고도 약 4m 정도 떨어진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작은 눈금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3시 17분이다! 엄마, 그렇지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심한 난시와 근시와 약시로 인해 안경을 쓰지 않으면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3중 압축 유리로 만든 특수 안경을 6살 때부터 착용해 왔었지요.
오후 행사를 마치신 이재록 목사님께서 찾으신다는 말을 듣고 가서 뵈었더니 창조의 권능의 빛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는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정상으로 걷게 되었지요.
또한 발톱이 파고들어 곪아가던 왼쪽발가락에 딱지가 져 떨어진 후 발톱이 자라고 있고, 안과에 가서 시력측정을 한 결과 양쪽 눈이 모두 1.2 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주 건강한 상태임이 밝혀졌습니다.
며칠 후에는 학교에 가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노라고 간증했더니 친구들은 너무 놀라워 "너 그 때 죽는지 알았어. 이재록 목사님 대단하시구나!"하며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저를 살려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지난 5월 28일 오후 1시경,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저는 왼쪽 가슴 아래가 죄여 오고 속이 울렁거리며 토혈이 시작되었습니다.
놀란 선생님과 친구들은 저를 부축하여 화장실로 갔고 그 곳에서 검붉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고, 학교 인근 마산 연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큰 병원에 가 보세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CT 촬영 결과 아무 이상이 없어 원인은 알 수 없으며 다만 나중에 검사한 결과 뇌수막염 같다고만 하였습니다.
한편, 제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오신 할머니 조명자 권사님은 의식이 없이 산소호흡기를 의지한 채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저를 본 순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 받은 손수건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셔서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져왔고, 7시간 동안이나 의식을 잃은 채 병실에 누워 있던 저에게 얹고 간절히 기도하셨더니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손발이 오그라들고 막대기 같이 뻣뻣하게 되었으며 혀마저 굳어 말을 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병원에서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여 더 이상 진료를 할 수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손수건 기도로 7시간 만에 깨어난 후"
그러나 저는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어. 하나님께 맡길 테야."
이튿날 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머니! 이제 집으로 가요" 말씀드렸고, 이어 할머니와 마산 만민성결교회 성도님들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횡성에서 「전국 지역장 교육」에 참석하고 있던 어머니(임신숙 사모)도 제 소식을 듣고 5월 29일 밤 11시경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제 온몸은 더욱 오그라들었습니다. 또한 혀가 굳어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어머니는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당회장님 뵙고 싶니? 당회장님께 가서 기도 받자, 응?" 그 말씀에 저는 이재록 목사님을 뵙고 기도 받으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믿음으로 횡성에 도착하니
그리고 5월 30일,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가 아침 7시경 최윤석 집사님께서 저와 어머니, 할머니를 태우고 이재록 목사님을 강사로 「전국 지역장 교육」이 열리고 있는 강원도 횡성을 향해 달렸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횡성까지 가는 동안 저는 세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손발이 굳어 싸늘해졌고 순간 순간 숨을 몰아 쉴 때 가래가 나왔지만 뱉지를 못해 기도(氣道)가 막혔는데, 이는 죽음 직전의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영(靈)이 '붕' 뜨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제가 죽어도 하나님 품 안에 안기니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셨지만 마음 속에서는 목자만 뵈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와서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온전함을 입을지니라, 살아날지니라"
긴장 속에 5시간을 달려 횡성에 도착한 후,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이 계신 숙소로 업혀 들어갔습니다. 그 때 제 눈동자는 완전히 풀리고, 팔과 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으며, 혀와 손발은 뻣뻣이 굳어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니 능치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재록 목사님께서 거하시는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아득하게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제 영이 '아! 나는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목사님께서 손을 제 몸에 얹는 순간 팔다리에 힘이 주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온전함을 입을지니라, 살아날지니라"
이재록 목사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를 마치시는 순간 저는 눈을 떴고 그 후 20초도 안 되어 저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굽은 양손을 만져 주시자 "쫘악" 펴졌으며, 혀도 풀어져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거짓말처럼 온전해진 저는 스스로 걸어 식당으로 가서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다 먹었는데, 불과 몇 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재록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은 정말 신기하고도 놀랍기만 했습니다.
"죽어가던 몸이 살아나고 마이너스였던 시력도 1.2로 회복되었어요."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행복하기 이를 데 없어 즐겁게 대화를 하던 중 원래 마이너스 시력인 제가 안경을 쓰지 않고도 약 4m 정도 떨어진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작은 눈금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3시 17분이다! 엄마, 그렇지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심한 난시와 근시와 약시로 인해 안경을 쓰지 않으면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3중 압축 유리로 만든 특수 안경을 6살 때부터 착용해 왔었지요.
오후 행사를 마치신 이재록 목사님께서 찾으신다는 말을 듣고 가서 뵈었더니 창조의 권능의 빛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는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정상으로 걷게 되었지요.
또한 발톱이 파고들어 곪아가던 왼쪽발가락에 딱지가 져 떨어진 후 발톱이 자라고 있고, 안과에 가서 시력측정을 한 결과 양쪽 눈이 모두 1.2 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주 건강한 상태임이 밝혀졌습니다.
며칠 후에는 학교에 가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노라고 간증했더니 친구들은 너무 놀라워 "너 그 때 죽는지 알았어. 이재록 목사님 대단하시구나!"하며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저를 살려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