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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우리가 버려야 할 악의 큰 뿌리 4가지
출처
만민뉴스 제577호 PDF
날짜
2013년 4월 14일 일요일
조회수: 9841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7장 3절을 보면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려면 마음 안에 있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뿌리 깊은 악을 발견해 버리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신속히 발견해 버려야 할 악의 큰 뿌리는 무엇일까?



진실치 못해 변질되는 육의 속성 '거짓됨'

진실치 못한 사람에게는 거짓된 모습이 많이 있다. 사람과의 약속은 물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을 전할 때 보태거나 빼서 거짓말하기도 한다.

상대를 속이고자 고의로 하는 거짓말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자신이 거짓말하는지조차 모르며, 자신이 한 말이 결국 거짓말이 될 줄 모르고 하는 경우도 있다.

베드로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했다(마 26:34~35). 하지만 베드로는 그날 밤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았다.

물론 베드로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지만, 막상 현실에 직면하니 두려움에 그 말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 마음에 거짓의 속성이 남아 있으면 스스로를 장담할 수 없으며, 자신의 고백도 지킬 수 없다. 따라서 신속히 거짓된 마음을 발견해 버려야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뜻을 좇지 않고 내 유익을 구하는 '정도를 걷지 못함'

정도를 걷지 못한다는 말은 '바르게 행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마음과 생각은 물론, 행동도 바르지 못한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법과 질서에 따라 바르게 살아간다면 이 사회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 자녀들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사로운 정이나 욕심에 이끌려 일을 어그러지게 만들고 불의한 것을 취한다면 이는 정도를 걷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 헷 족속 사람들은 매장지를 거저 주고자 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정당한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을 볼 수 있다(창 23:13).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정도를 좇았다. 결국 그들은 사자굴과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나와 크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단 6:16~23; 3:19~27).

이처럼 하나님 뜻이라면 자신의 유익을 조금도 구하지 않고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 이런 마음에서 바른 행함이 나오며 정도를 걸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같이 어떠한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정도를 걸었기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다.


한 번 낸 말과 정한 마음을 지키지 않는 '간사함'

한 번 마음먹은 것을 이행하지 못하고 변개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꾸 바꾸는 것은 간사함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처음에 결심한 일이 변했다면 이는 마음에 간사함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도 간사한 마음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은 처음 계획을 변개하는 것은 물론 열심히 충성하며 함께할 듯 하다가도 배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함이 없는 마음을 가지면 명예와 권세, 물질 등 세상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그래서 간사한 속성을 버리고 진실에 가까워진 사람일수록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낸 말은 반드시 행하고 한 번 정한 마음은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사소하게 생각하고 어긴다면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다. 자기 자신과는 물론,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마음에 정한 바를 지키고 행할수록 마음에서 간사함은 사라지고 진실함이 임한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않는 '멸시함'

멸시는 업신여기고 낮추어 보고 깔보는 것이며, 권세와 직위로 상대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이다. 곧 교만하고 거만해짐으로 나오는 모든 행동이 이에 해당된다.

소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사람을 멸시하는 행동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달라고 할 때에나,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삼상 8:5, 출 16:8).

우리가 주 안에서 각 지체를 이루고 있으되 하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전 12:20). 만일 각 지체가 서로 멸시한다면 몸은 한 시도 평안할 수 없고, 제구실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체는 각자 고유의 역할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설령 지식과 학식이 다르며 인격과 교양이 다르고 부유한 정도가 다르다 해도 남을 멸시해서는 안된다. 입이 눈더러 너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결국 눈이 없음으로 인해 입뿐만 아니라 온몸까지도 구덩이에 빠지고 마는 어리석은 모습이 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말씀했다. 따라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곧 섬김의 자세가 된다면 결코 남을 무시할 수 없다. 항상 자신의 위치와 본분을 잊지 않고, 설령 사랑받고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다 해도 그 마음가짐이나 행함은 변함없이 겸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