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만민의 소식

제목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용서''
출처
만민뉴스 제709호 PDF
날짜
2015년 10월 25일 일요일
조회수: 8733
예수님께서는 수제자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쳐 주셨다(마 18:22). 마태복음 5장 23~24절에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하셨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는지 점검해 봄으로 참 평안과 기쁨이 넘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끝이 없는 긍휼과 용서

성경을 상고해 보면 '과연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사랑의 깊이가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18장 7~8절에 보면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40일 후에 망하리라 했던 하나님을 모르는 니느웨 백성이라 해도 왕 이하 온 신하와 백성, 짐승까지 재를 무릅쓰고 금식하며 회개할 때 긍휼로 용서해 주셨다(욘 3장).

또한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을 하니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도 생명이 연장되었고(왕하 20장), 그 아들 므낫세도 포로로 잡혀 갔으나 겸비하게 하나님 앞에 간구하니 다시 왕이 될 수 있었다(대하 33:10~13).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비의 모습에 비유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서 모진 고난과 십자가 처형을 받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고,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신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을 용서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곧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깊은 사랑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버림받기를 원치 않으시고 살리고자 하시며, 어찌하든 그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 3:9).


마음에 임한 선(善)의 정도에 따라 다른 용서의 차원

용서에도 그 차원에 따라 단계가 다르다. 겉으로는 용서한다고 하지만, 속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진정한 용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용서의 차원을 네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때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기 바란다.

① 마지못해 용서하는 경우

마음에서는 전혀 용서하고 싶지 않고 여전히 감정과 미움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용서하는 척하는 것이다. 상대가 자신보다 윗사람이거나 자신이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일 때는 자기 유익을 위하여 용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인 경우에는 굳이 감정을 눌러 참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쉽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상대에 따라 마지못해 용서하는 경우는 용서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외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진리대로 행하고자 용서하는 경우

마음에서부터 온전히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리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은 알기에 그나마 용서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결국 마음에서부터 용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아직 마음이 선으로 일궈져서 용서한 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생각하는 한계 안에서만 용서할 수 있다. 그 한계를 넘어갈 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③ 마음에서부터 용서하는 경우

겉으로만 용서하는 척하거나 머리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상대를 용서하는 차원이다. 하지만 이렇게 용서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그 이상의 것을 주지는 못한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큰 해를 입혔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고 그냥 없던 일로 하고 용서해 주었다. 물론 나쁜 감정도 갖지 않고 긍휼의 마음으로 용서한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염치없게도 더 도와달라고 하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 깊은 용서의 차원에 들어가면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④ 마음에서부터 용서할 뿐 아니라, 한없는 긍휼로 그 이상을 베푸는 경우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말씀하신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해 주었으면서도 그 위에 사랑을 더해 상대의 형편을 살피는 것이다. 혹여 상대가 먼저 도움을 요구해도 성령이 막으시는 경우가 아니라면 주고 또 주게 된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조금의 불편함이나 상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오직 상대가 신앙생활을 잘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생각한다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무조건 용서하는 것만이 선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상대가 거듭거듭 용서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변화의 노력이 없다면 이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담을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