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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영적 성장의 핵심, 신뢰도 체크!
출처
만민뉴스 제722호 PDF
날짜
2016년 1월 24일 일요일
조회수: 8148
'신뢰(信賴)'란 무엇일까?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뜻이며,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인 신뢰가 아닌 양쪽 모두 서로 신뢰할 때 온전하다 할 수 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주 안에서 신뢰로 하나 되면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과연 나는 주 안에서 신뢰로 하나 되어 있는지 다음 세 가지 분야로 점검해 보자.


하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정도는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긴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 말씀은 크게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당부하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신뢰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지 성경 말씀대로 살아간다.

혹여 어떤 손해를 보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해도 변함없이 순종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그 말씀에는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로의 신분에도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기 위해 왕의 진미를 사양하였고,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는 우상 앞에 절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나님 뜻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오직 순종만 하는 그들을 하나님 또한 신뢰하시기에 풀무불 속에서도 전혀 상하지 않도록 지켜 주셨고 사자 굴에서도 보호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게 해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믿음의 행함으로 신뢰를 쌓아 하나님께 인정받고 신뢰받을 수 있는 자녀로 그 사랑 안에 거하기 바란다.


둘!! "나를 데리러 오실 주님을 진정 믿고 있는가?"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정도는 '나를 데리러 오실 주님을 얼마나 믿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진정 신뢰한다면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가게 된다. 거룩하고 온전하신 주님을 닮아가고자 힘쓰며 주님처럼 영혼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한 제자들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을 비롯해 빌립이나 스데반 집사도 따르는 표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증거하였다.

이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을 신뢰하는 성도들을 주님께서도 신뢰하셔서 능히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심으로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따라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한다'는 말씀과 같이 온전한 신뢰관계로 주님과 하나 되려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 마음을 진리로 일구어야 한다. 주님과 하나 된 사람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다(요 15:7).


셋!!! "설교를 들을 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는 않는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처럼 오늘날 여러 유형의 교회가 있고 많은 주의 종이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교회에 세우신 목자인 경우, 성도들이 신뢰하는 정도는 '증거하는 말씀에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예배 시간에 '왜 꼭 저렇게 말씀하실까?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르네? 누가 저렇게 말씀드렸을까?' 등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롬 8:7)이 떠오른다거나 그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 것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면 온전히 '아멘' 할 수 없고,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니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말씀을 하셔도 육신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요, 목자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는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속한 권능(시 62:11)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난다면 창조주 하나님과 주님께서 목자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이처럼 목자를 온전히 신뢰하면 항상 선으로 생각하며, 설령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에도 '저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으시겠지. 많은 사람을 깨우쳐 주시고 진리로 선으로 이끄시기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선으로 생각할 때 당장은 깨닫지 못한다 해도 기도 중에 성령이 깨우쳐 주실 수 있고, 이런 체험들이 쌓임으로 목자에 대한 신뢰가 온전해진다. 목자의 입장에서도 이런 주의 종이나 일꾼을 신뢰할 수 있다.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오해하지 않으니 가까이 대할 수 있고 중요한 일도 믿고 맡길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 4절을 통해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고백하였다. 즉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얼마나 사도 바울을 사랑했고, 사도 바울이 얼마나 그들을 신뢰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과 다시 오실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목자를 만나 마지막 때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이뤄갈 수 있다. 온전한 신뢰관계를 이루어 이 땅에서는 물론, 가장 영광스러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