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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기''와 ''생명의 씨''
출처
만민뉴스 제736호 PDF
날짜
2016년 5월 1일 일요일
조회수: 9215
뉴스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다. 농부가 밭에 씨를 심고 알곡을 거두듯이 하나님께서도 사람에게 생기와 생명의 씨를 심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알곡 성도를 거두기 원하신다.


첫 사람 아담에게 불어넣으신 '생기'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의 역사를 베푸시기 전에 웅장한 소리를 머금은 영롱한 빛의 형태로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계셨다(요 1:1 ; 요일 1:5).

이러한 근본의 빛과 소리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생기'로 역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生氣)를 불어넣으시니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되었고(창 2:7), 마른 뼈들에게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생기가 들어가게 하시니 큰 군대가 되었다(겔 37:10). 7년 환난 중에 순교한 두 증인이 살아날 때도 생기가 들어가서 역사한다(계 11:11).


범죄한 아담에게 남은 '생기의 흔적'
작은 씨앗과 같은 형태인 ̒생명의 씨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고, 아담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에덴동산에서 생육하고 번성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불어넣으신 생기는 에덴동산에서 낳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자동적으로 전달됐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불순종하는 죄를 지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내어보내신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서 생기를 대부분 거두시어 흔적만 남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씨'이다.

작은 씨앗과 같은 형태로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남아 있는 생명의 씨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서 낳은 후손들에게는 전달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태아가 6개월이 됐을 때에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서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심어 주신다.

뉴스범죄한 아담 후손에게 주시는 '생명의 씨'
몸의 중심이 되는 심장의 한 세포에 심겨져

생명의 씨는 바다에 떠 있는 부표에 비유할 수 있다. 부표는 선박에 항로를 지시하거나 바닷속에 있는 위험물의 존재를 경고하기 위해 설치된다. 이와 같이 사람 몸에서 위치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중심이 되는 부위인 심장의 한 세포에 생명의 씨가 심겨진다.

바다에서 부표의 위치가 고정된 것처럼 생명의 씨도 항상 몸의 중심부에 고정되어 있고 그 중심부에 있는 세포와 겹쳐 있다. 몸의 세포는 계속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도 생명의 씨는 고정된 위치에서 새로운 세포를 통해 온몸의 다른 세포들을 조절하는 것이다.


'생명의 씨'가 깨어나 생명활동을 시작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은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어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의 후손에게 주시는 ̒생명의 씨̓는 마음이 선할수록 싹을 틔우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 마음 안에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행 2:38). 성령이 임하시면 죽은 영이 살아나 마치 딱딱한 껍질에 싸인 씨앗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생명의 씨가 깨어나는 것이다(그림 1, 2).

싹을 틔운 씨앗이 물과 햇빛을 공급받아야 잘 자라듯이 생명의 씨도 깨어난 후에는 영적인 물과 빛을 공급받아야 자랄 수 있다. 곧 영적인 물인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고, 영적인 빛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영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이다(요 3:6, 6:63).

뉴스하나님께서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서 사람 몸의 중심이 되는 핵 속에 심어 주셨기에 생명의 씨가 깨어나서 생명 활동을 시작하면 생명의 씨를 감싸고 있는 영이 성장하게 된다(그림 3). 영이 몸의 중심에 있는 세포핵을 덮을 만큼의 크기가 되면 영의 마음이라 하며, 더 커져서 핵을 두르고 남을 정도의 크기가 되면 온 영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그림 4).

여기서 영과 세포핵을 그 크기로 비교한 것은 물리적인 크기보다는 몸을 조절하는 권한이 영에 있느냐, 육에 있느냐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이다. 영의 크기가 세포핵을 덮을 만큼 커지면서부터는 몸이 육의 흐름을 타지 않는다. 그리고 더 커져서 온 영이 되면, 몸의 기능 조절이 온전히 영의 차원에서 이뤄진다.

영이 몸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혼도 영이 조절할 수 있다. 영이 혼을 지배하고 다스리기에 육신의 생각이나 비진리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게 된다. 요한삼서 2절에 기록된 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이처럼 몸의 기능 조절이 영의 차원에서 이뤄질 때 나타나는 현상은 몸의 모든 기관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게 되고, 질병 균과 바이러스가 틈타지 못하며,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 또한 노화되지 않으며 회춘할 수 있다.

그런데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영을 낳아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살전 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