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만민의 소식

제목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렸음에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만민뉴스 제761호 PDF
날짜
2016년 10월 30일 일요일
조회수: 8079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믿음의 행함을 통해 각종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아 영광 돌리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우쳐 주시고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영적인 믿음을 갖게 해 주신다. 이처럼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렸음에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응답의 원리를 깨달아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 바란다.


첫째, 응답받기 위해 각자가 채워야 할 분량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주실 때 일곱 영을 통해 측정하시는데, 이는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충성, 사랑의 일곱 가지 항목을 말한다. 물론 믿음의 분량에 맞춰 측정하시기에 각각 그 합격선은 다르다.

그런데 자신의 믿음 안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행하지 않고 응답받을 생각만 한다면 이는 시험을 앞둔 학생이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성적을 바라는 욕심과 다름없다. 기도도, 충성도 안하고 작은 일에 쉽게 마음이 상하고 그것을 돌이키려 하지도 않으며, 주일 성수, 십일조 등 계명을 여전히 자기 편의대로 지키면서 응답받을 생각만 하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응답하고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때에도 그릇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혹여 나는 여전히 믿음을 갖지 못해서, 또는 믿음이 연약해서 주님을 슬프시게 하는 모습은 아닌지를 살펴보아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소유하기 바란다(고전 2:10 ; 엡 4:13).


둘째, 부정적인 말을 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다. 즉 마음으로 믿으면 마음의 할례를 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되니 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이 사실을 진정 믿는다고 확증하는 행위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믿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입술의 고백대로 되는 것'이 영계의 법칙이다(잠 18:21).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다. 그래서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응답이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응답받았다는 확신이 오면 가장 좋은 때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전혀 염려하지 않고 기다리게 된다.

혹여 응답의 확신이 없다면 계속 믿음으로 고백하며 기도해 나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을 받아야 한다. 마음에서 응답받았음이 확실하게 믿어지는 믿음,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응답받기 위해 채워야 할 공의의 분량을 채우면 응답은 즉시 임하게 된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애초에 응답의 확신이 없었음을 나타낸다. 현실 그대로를 말한 것 같지만 이는 응답을 받을 수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믿음의 고백을 못한 것이다.

더욱이 명심해야 할 것은 부정적인 표현을 하면 이미 채운 분량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응답을 못 받았다며 불평불만하고 서운해하며 실망한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혹시나 하는 요행을 바랐다는 것이다.

만일 응답이 지연되는 듯하면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봄으로 아직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서 채워야 한다. 범사에 하나님 앞에 긍정적인 고백, 믿음의 고백을 할 때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단번에 오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가 해결되면서 서서히 축복이 임하고, 질병이나 연약함이 치료될 때도 점차로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면 믿음의 고백으로 받으시고 더 신속하고 확실하게 역사해 주신다. 한 번의 축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형통하게 하시고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셋째,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보장받는 종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때 하나님의 사람에게 축복을 빌게 하심으로 스스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큰 응답이 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엘리야가 극심한 가뭄 가운데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식사거리인 가루 한 움큼과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오라고 했을 때 사르밧 과부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경우 없는 청을 하지?' 했다면 가루 통의 가루와 기름병의 기름이 다하지 않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왕상 17장).

그러므로 사랑하는 양 떼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보장받는 종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축복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종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도 합당치 않은 일이지만 특히, 기사와 표적, 권능을 행하는 종을 판단하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민수기 12장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모세를 판단한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의 보장받는 종을 판단하고 의심하는 등 육신의 생각을 한다면, 졸음과 잡념이 틈타 축복의 비결이 담긴 말씀을 듣지 못하기도 하고 들어도 깨달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이런 악한 생각이 있었다면 자신의 마음 안에 얼마나 큰 악이 있는지 깨달아 철저히 통회자복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