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만민의 소식

제목
신속히 죄성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으려면
출처
만민뉴스 제765호 PDF
날짜
2016년 11월 27일 일요일
조회수: 7968
사람의 마음 안에는 미움, 혈기, 간음, 시기, 질투 등의 죄성(罪性)들이 있다. 이러한 죄의 성질을 좇아 범죄하려고 하는 속성이 바로 육신의 정욕이다. 그래서 사람은 육신의 정욕이 발동할 때 마음과 생각, 행함으로 죄를 범하게 된다(요일 2:16). 그러면 우리가 마음 안에 있는 죄성들을 발견해 신속히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육신의 정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느낌'에 대해 바로 알고, 그 느낌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깨달아야 변화될 수 있다.


'느낌'과 함께 마음에 심기는 '죄성'

오늘날 마약, 음란물, 폭력성 게임 등에 중독되어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음에 '느낌'이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이에 대해 더 세게 느끼고 싶어지니 중독이라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논에 모를 깊게 심은 것과 건성건성 심은 것이 뽑히는 데 차이가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 심긴 '죄성'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음란물을 본다면 그 장면은 지식적으로 뇌세포의 기억장치에 입력되지만, 그 죄성은 느낌과 함께 마음에 심어진다. 그래서 선정적인 장면을 보면 예전에 심긴 그 느낌이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한번 잘못 심어진 느낌은 빼내기가 쉽지 않고, 강하게 심어질수록 빼내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이처럼 마음에 죄성이 심길 때 느낌이 함께 입력되기 때문에, 반대로 죄성이 발동할 때도 그 느낌이 함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혈기를 낼 때 '욱' 하고 부글부글 올라오는 느낌,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할 때 냉랭한 느낌, 교만할 때 으쓱한 느낌, 음욕이 올라올 때 꿈틀거리는 느낌 등 죄성과 함께 느낌이 올라오면서 죄를 범하게 된다.


죄성이 심기지 않으려면 '선한 느낌으로 심어야'

가령 혈기가 무엇인지 알아도 마음에 그 죄성이 없다면 혈기를 낼 상황에서도 그 느낌이 올라오지 않으니 혈기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해야지 생각해도 마음에 미움이라는 죄성이 없다면 밉거나 싫은 느낌이 없으니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낌과 함께 죄성이 마음에 심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같은 상황에서도 선한 느낌으로 심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설움과 슬픔과 고통으로 느꼈다면 동시에 마음에는 욕심, 탐심, 질투, 미움의 죄성들이 심어진다. 그래서 성장한 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경우, 그것이 싫고 시샘하여 미워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부모나 주변의 가르침을 통해 상대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졌을 때 기뻐하고 좋게 여기는 선한 느낌으로 심었다면, 성장해서도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을 볼 때 함께 기뻐하고, 혹여 내가 좋은 것을 가졌다면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질의 어려움으로 인해 부모가 서로 싸우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녀가 본다면 그 자녀에게는 '어떻게든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마음이 심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뺏고 싶고 더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또한 자녀에게 "착하게 살아라." 해도 부모가 매일 부부싸움을 하고 혈기 내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의 마음에는 그 느낌이 입력되어 혈기에 대한 두려움, 공포, 힘듦이 생기고, 나중에 성장한 후에는 그것이 다시 분출되기도 한다.

부모가 실제로 기쁘고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새 예루살렘 소망 가운데 달려갈 때, 자녀에게도 '새 예루살렘이 저렇게 좋구나. 행복하구나.'라고 좋은 느낌으로 입력된다. 반면에 힘들고 어려운 모습을 자녀에게 보인다면 자녀는 '새 예루살렘에 가려면 저렇게 힘든 거구나.' 하는 느낌이 마음에 심어져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이 생기지 않게 된다.


이미 입력된 것은 '선한 느낌'으로 배신, 간음 등의 죄성은 '나쁜 느낌'으로

상대를 보며 '왜 저렇게 행동하지? 이해가 안 된다. 참 싫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느낌을 내 안에 계속 입력시키면 상대가 싫어진다.

상대에 대한 미움을 버리고자 할 때에는 선한 마음으로 상대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하고, 또한 상대 의도를 좋은 뜻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해 나가다 보면 점점 그 느낌이 희석되니 같은 상황에서도 상대에 대한 미움이 생기지 않게 된다.

이처럼 죄성 중에는 선한 느낌으로 바꿔 나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나쁜 느낌으로 입력시켜야 하는 것이 있다. 미움, 욕심, 시기, 판단, 정죄 등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선한 느낌으로 바꿔 나가야 하는 반면 배신, 간사함, 거짓말, 간음, 혈기 등은 나쁜 느낌으로 마음에 심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아내를 지나가는 남자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면 그 남편은 아주 불쾌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깨우쳐진다면 간음이라는 죄성이 아주 싫은 느낌으로 입력되어 벗어버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죄성의 느낌이 아주 추하고 더러운 느낌으로 입력되면 죄성을 신속히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받으면서 상대성을 체험해 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 안에 심긴 죄성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느낌인 줄 모른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대는 죄악이 관영해 죄성의 느낌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중독되어 죄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세상의 죄악을 차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든지 인간 경작을 통해 처음에 느꼈던 죄성의 느낌이 얼마나 악하고 더럽고 추한지를 깨달아 선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