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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우리가 이뤄야 할 ''''주를 향한 참사랑''''
출처
만민뉴스 제779호 PDF
날짜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조회수: 6466
이방인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과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맨 처음 만난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 우리도 주를 향한 사랑이 더욱 뜨거워져 믿음의 선진들처럼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영적인 사랑

막달라 마리아가 풍족하지 못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눅 8:2~3) 어려운 현실을 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변함없이 따를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 또한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기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었다(행 21:10~14).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와 사도 바울이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아름다운 영의 마음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영적인 사랑은 영의 마음에서 비롯되며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늘 예수님 곁에서 공궤하면서도 그분의 마음을 결코 힘들게 하지 않았다. 만일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섬기게 되지만, 영의 마음은 영의 생각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항상 그 마음에 맞추려 한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도 막달라 마리아를 보실 때 평안하셨고 그 섬김을 부담 없이 받으실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이방인의 사도'라는 큰 사명을 맡길 만한 신뢰가 있었던 것도 사도 바울이 주님을 영으로 사랑하여 그 마음을 잘 헤아려 나갈 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와 사도 바울처럼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는 '나'라는 자아를 온전히 깨뜨려야 한다. 육신의 생각과 자기적인 의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써 영의 마음을 이루어야 한다. 그럴 때 영적인 사랑 속에 상대의 마음을 결코 힘들게 하거나 부담감을 주지 않고 평안함을 줄 수 있으며, 항상 그 마음을 헤아려 섬김으로 기쁨을 줄 수 있다.


그 누구보다 더 불타는 열정적인 사랑

막달라 마리아는 단 하루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만큼 뜨겁게 사랑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임을 잘 알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도 잘 알았기에 때로는 냉대하시기도 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지만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인성적인 분야에는 한없는 사랑이 있으시지만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신성적인 면을 더 보이셔야만 하는 그 마음까지 온전히 헤아렸기에 모든 것을 사랑으로 여긴 것이다. 주님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면, 그것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해서 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참된 사랑은 누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문하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로서 로마의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어 출세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믿었기에(빌 3:7~8)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던 것이다. 이 열정은 순교에 이르기까지 식지 않았고 늘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그 누구보다 주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했기에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난을 당할 때에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고 깊은 감옥에 가둬도 문제되지 않았으며, 세 번이나 파선하여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낼 때에도 두려움이나 요동함이 전혀 없었다. 예전에 주님을 핍박했던 자신의 모든 일을 가려 주시고 하늘에 상급 쌓을 수 있는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게 하시며,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심에 감사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낮아질 수 있음에 감사했던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함이 없는 사랑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했다는 이유로 자신도 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갔다. 제자들은 이미 두려워 숨어 버렸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도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갔고, 이때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된다(요 20:1~18).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되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섬겼고 그 사랑이 결코 변개하지 않았기에 이런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의 부활을 전할 것을 말씀하시며 머지않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해 주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주님의 부활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전했다.

사도 바울도 순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향한 사랑이 변개하지 않았다.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했지만 그 마음이 주님으로 가득했기에 육체의 고통은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핍박들을 오히려 더욱 값진 열매를 맺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았고 그 모든 고통은 더욱 힘차게 달려갈 수 있게 하는 채찍질로 여겼다. 이처럼 변개함이 없는 사도 바울이었기에 하나님 뜻을 받들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에도 감사와 기쁨이 넘쳤고 이제 곧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소망으로 가득했다.

이처럼 사도 바울과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능력 주시면 하겠나이다." 한 것이 아니라 "주께 받은 사랑이 너무도 귀하니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하겠나이다."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했다. 그리하여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서도 지극히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