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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화평을 온전히 이루는 비결
출처
만민뉴스 제797호 PDF
날짜
2017년 7월 16일 일요일
조회수: 7141
주 안에서 '화평'이란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화평의 마음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입술의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일 서운함이나 불편한 마음이 있을 때 말이나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과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마치 검은색 잉크병을 호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는 것과 병마개를 열고 주변에 뿌리는 것은 매우 다르듯이,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앞서 일하는 일꾼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 하여 불평, 불만하는 말을 할 때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입을 맞춘다면 사단의 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작은 것 하나에도 올무가 되어 부딪힘이 될 수 있고 서로의 마음이 갈려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도 어렵게 된다.

또한 진리가 아닌 자기 생각으로 헤아리고 판단하며 수군거리는 사람의 말을 듣고 별생각 없이 동조했다면, 일부러 악한 마음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해도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속의 악이 발동할 수 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주 안에서 화평을 이루기 원한다면 스스로 입술의 말을 조심하되 악한 비진리의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말고 선한 것만 보고 들으며, 선한 말만 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랑으로 이끌 수 있어야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


둘째, 서로가 서로를 섬겨줘야 한다!

주 안에서 화평하지 못한 이유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유익을 먼저 구하거나,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의를 강하게 내세우고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김의 마음이 된다면 단지 겸손할 뿐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한 것을 좇아 필요한 부분을 채워줌으로 화평이 깨어질 리 없다.

섬김이란 마치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녀를 돌볼 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소금이 제 맛을 내기 위해 온전히 녹아지듯이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다. 항상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 화평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서로가 서로를 섬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11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했듯이 하나님께서는 머리된 일꾼이 섬김의 본을 보이기를 원하시며, 모두가 마음 중심에서 먼저 섬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서로 권면하고 도와줌으로 영적으로 힘이 되어 주기를 원하신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순종함으로 어찌하든 마음을 같이 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곧 섬김인 것이다.

이처럼 서로 상대를 섬기는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어져야 한다. 나, 내 것, 내 욕심, 내 가족, 나 보기에 의로움, 내 고집 등 이런 것들이 다 없어진 사람이라야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섬길 수 있다.

진리를 들어 알고, 섬겨야 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라면 불편한 일들을 만날 경우 마음에 담아놓게 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열매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라는 것을 철저히 깨뜨리고 벗어버림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섬김을 이루어야 한다.

예수님의 섬김이 진실이 아니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온전히 감당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영혼들을 구원하시려는 섬김의 마음이셨기에 끝내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셨다. 이러한 참된 섬김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임해 서로가 서로를 섬김으로 온전한 화평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어야 한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할지라도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했고(출 32:32 ; 롬 9:3),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행 7:60).

하나님께서 싫어버린 바 된 영혼들을 위해 간절한 사랑으로 간구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온전한 사랑이 있어야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된다. 이러한 사랑은 자기적인 것이 전혀 없으며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름의 상을 좇아가는 믿음의 형제들에게는 어찌해야 할까?

빌립보서 2장 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했고, 야고보서 2장 15~16절에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했다.

이는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를 돌아보며 도울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었다(행 4:32). 이처럼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으려면 상대를 변함없는 믿음으로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해도 사랑으로 견디며 변함없는 믿음으로 그가 잘될 것을 바라는 마음, 판단 정죄하지 않고 상대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며 변함없이 상대가 잘될 것을 바라봐 주는 마음, 곧 이같은 진정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화평의 마음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고전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