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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참된 신뢰와 사랑의 비결
출처
만민뉴스 제834호 PDF
날짜
2018년 4월 15일 일요일
조회수: 7635
생명 다한 사랑을 드리기에 합당하고, 온전히 신뢰할 만한 삼위일체 하나님께 우리는 어떠한 신뢰와 사랑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나님, 주님, 성령님과 참된 신뢰와 사랑을 이루는 비결에 대해 살펴본다.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다. 과연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이란 무엇일까?

'육신의 생각'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으로서 정욕을 좇아 마음을 요동하게 만들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면 범사에 자기 기준에 맞춰 판단하고 자기 유익을 좇아 생각하므로, 옳은 일을 잘못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선한 일을 악하다고 오해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이 틀린 줄을 모른 채 살아간다.

쉬운 예로,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인사를 잘 받아 주지 않고 표정이 좋지 않으면, '나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나?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주 무례한 사람이네.' 하며 순식간에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상대의 상황과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간사함과 변개함 속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사무엘하 6장을 보면 다윗 왕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면서 너무 기뻐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자 이를 본 아내 미갈이 품위 없이 천한 행동을 했다며 업신여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다윗의 행위를 미갈은 자신의 악함과 교만함 속에서 악으로 판단한 것이다.

누가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한 여자에게 안수하자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사실에 분을 내며 무리에게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 고침을 받으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고, 비참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그 마음에 사랑과 선이 없으니 자기 의와 틀에 맞춰 판단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 안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 욕심 등 비진리와 자기 의와 틀 때문에 육신의 생각이 나오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버려야 한다. 선한 것을 선하다고 깨닫지 못하게 하는 자신의 악을 발견하여 신속히 뽑아 버리고 범사에 영의 생각을 해야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는 말씀처럼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받아 선하신 뜻을 깨우쳐야 합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이방 여인이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기를 간구하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자신을 낮춰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끝까지 매달린다.

이처럼 겸비한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즉시 응답해 주셨다. 만일 이 여인이 자존심을 내세웠다면 예수님께 서운함을 품을 수 있고 낙심해 응답받기를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응답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변함없이 선한 고백으로 매달렸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이미 아셨기에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게 하셔서 응답받을 만한 공의의 분량을 채우게 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할 때 쉽게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며 변개하는 사람들에게 참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 이 여인의 겸비한 고백을 끌어내신 것이다.

이처럼 선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선과 사랑을 믿기에 그렇게 하신 이유에 대해 궁구하게 된다. 따라서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후, 마음의 악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버리는 만큼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우칠 수 있기에 내 안에 악한 생각과 비진리가 있고, 세상 사랑함이 있으면 보혜사 성령은 역사하실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선한 마음으로 궁구하면 깊은 뜻도 깨우칠 수 있고, 그 뜻을 깨우쳐 나가는 만큼 신뢰도 점점 깊어지게 된다.


사랑이 커지는 만큼 신뢰도 커집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 당시 함께하며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했지만 십자가의 사건을 겪은 후에는 그 사랑의 차원이 더 깊어졌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던 스승, 더구나 선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참혹한 고난을 당하셨다. 그런데 자신은 그분을 지켜드리기는커녕 모른다고 부인했고, 심지어 저주하는 말까지 내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어떤 책망도 없이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셨고 처참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다.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고난을 목도한 후 베드로의 사랑은 예전과 달라졌고, 그 사랑이 깊어진 만큼 신뢰도 전혀 달랐다.

전에는 어린 여종 앞에서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살기등등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도 담대히 복음을 외칠 뿐 아니라,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할 때도 그 신뢰에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오직 뜨거운 사랑과 굳건한 신뢰 속에 영광스러운 순교를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참된 신뢰와 사랑 가운데 온전히 하나 되어 이 땅에서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위로와 사랑을 드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