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39] 여름에 거두는 자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7월 28일 목요일
조회수: 3286
▲ 삶을 성실하게 가꾸는 지혜/ 일러스트 김동호
1.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 10:4)
손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성실하게 노력하여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게으른 사람은 이웃에게 꾸러 다닐 수밖에 없지요. 집을 장만하고자 해도 열심히 일을 하며 목표를 이루기까지 지출을 줄이고 저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적인 비유를 들어 기록케 하셨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영적으로 깨우쳐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지런한 사람이 영적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기도하며 말씀대로 실천하면 의로운 사람이 되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 만일 룻이 게으르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그런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그녀는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성실하게 감당하였습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쉬지 않고 들에 나가 일을 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는 영육 간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기도 한 가지만 예를 들더라도 게을러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험 환란이 왔을 때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주일을 지킬 힘도 오질 않습니다. 혈기가 나고 내 안에 비진리가 꿈틀거려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5절에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하였습니다. 여름에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지혜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여름에 거둔다는 것은 기본적인 것 외에 더 거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공식적인 것만 거두는 삶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온실 재배를 통해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과일을 먹을 수 있습니다. 농가 소득도 높아지게 되었지요.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주어진 삶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 외에 그의 지혜로 잠언 삼천을 지었으며, 각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에게 지혜의 윤택함을 선사했습니다. 비단 솔로몬 왕뿐 아니라 누구든지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남다르게 파종하여 추수할 때가 아니어도 많은 열매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지각에 뛰어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는 만큼 선이 발전하지 못하고 악이 발전하였기에 공해와 수질오염, 전쟁과 테러 등 인류 평화에 위협을 가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썩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깨어 있어 많은 것을 수확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2.세종대왕의 명철과 지혜
10장 13절에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명철이 있는 사람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일례로 세종대왕은 얼마나 마음이 선하였습니까? 선한 임금이기 때문에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 25년에 세종대왕이 언문 28자를 제정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문자라는 것은 말이나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적기 위한 일정한 체제의 부호를 말합니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까지는 중국의 한자를 빌려와 대신 사용하였는데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말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 창제의 뜻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명철입니다. 세종대왕은 명철의 길이 보였기에 문자를 만들어 백성을 편하게 해 주고 문자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고 문물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명철이 있는 사람에게는 또한 지혜가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의 첫머리에서 한글 창제의 동기와 목적에 대해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를 가지고는 서로 통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뜻을 충분히 펼 수가 없다. 나는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배워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말 속에는 확고한 주체의식과 민본주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어리석은 백성을 위하여 왕이 문자를 만든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을 만든 당시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그 진가가 나타나지 못하고 진흙 속에 묻힌 구슬과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한문에 젖은 양반들이 한문을 진서, 즉 참된 글이라 하였고 한글은 부녀자나 상것이 쓰는 상글, 즉 언문이라고 천대하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고루한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완고하고 미련한 사람들은 이렇게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글의 유익을 얼마나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까? .
이처럼 명철했던 세종대왕은 지혜로운 정책들을 시행했습니다. 그 한 예로 공정한 재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죄인을 판결하는 데는 잡념을 가지거나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공평하지 못한 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형을 당할 만한 죄인을 판결할 때에는 이 사람을 어떻게 살릴 방법은 없을까? 여러 가지로 법률을 조사 연구하여 살릴 만한 이유를 찾아볼 것이며 무거운 죄를 판결할 때에는 어떻게 하면 그 벌을 가볍게 감해 줄 수 있을까?
이유를 여러 가지로 구하고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사정을 잘 조사하고 참과 거짓을 잘 살펴보고 난 후에 죄를 판결하여도 실수가 없다고 못할 것이거늘 사실도 알아보지 않고 덮어놓고 권세로써 처리하려고 하는 것은 그 소홀함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소홀히 하기 때문에 죄없는 사람을 극형에 처하는 옳지 못한 판결이 내려지고 공평하지 못한 재판이 생기는 수가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왕정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약을 먹고 죽거나 귀양을 갔습니까? 솔로몬 왕이 그랬던 것처럼 세종대왕도 이렇게 공정한 재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지혜로운 말들이 얼마나 백성에게 유익함이 되었겠습니까? 세종대왕뿐 아니라 명철했던 솔로몬이나 다니엘, 요셉 같은 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얼마나 지혜로웠는지요.
그렇다면 이런 명철에 따른 지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세종대왕은 문자를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론을 사용했습니까? 먼저는 일꾼들을 세워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중국말은 문법 체계가 다르고 어려워 오랫동안 학문을 공부한 학자들 외에 백성들은 사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자는 귀족이나 지배 계급의 문자는 될 수 있지만 백성을 위한 서민의 글자는 될 수 없었지요.
그런데 문자는 문화의 소산이며 매개체입니다. 문화는 백성의 것이지 일부 지배계급의 특권적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 세종의 의도이며 위상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왕 글자를 만들 바에는 다른 나라 글자보다 훌륭하고 편리하며 무슨 말이든 어떤 소리든지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학자들을 시켜 중국 사람들이 쓴 말소리 곧 음에 관한 책자인 운서를 철저히 조사하고 깊이 연구하도록 하였지요. 이 때 중국 명나라에 한림학사 한 사람이 라오뚱 땅에 귀양 와 있었습니다. 성삼문은 한자음에서 의문 나는 것을 물어보기 위해 라오뚱을 열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합니다. 이같이 훌륭한 임금이 열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뛰어난 학자들이 정열을 기울였기에 세종 25년 1443년에 훈민정음 28자의 역사적인 제정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할 것은 명철한 사람은 모든 길에 있어서 정도를 걸어간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정도를 걸으면 명철과 지혜가 옵니다. 사람은 왜 태어났습니까? 자녀를 낳고 키우며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죽기 위해 태어났습니까?
이것은 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길이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니 그분의 뜻을 깨우치고 순종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요 먹는 것은 삶에 필요한 한 분야일 뿐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하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구원받아 천국에 가야 할 것입니다.
잠언 10장 13절에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 지혜가 없는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거나 마시고 방탕하고 경고해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악이나 게으름으로 주변의 권면도 듣지 않고 자기 유익만 구하여 악을 행하거나 바른 도리를 좇지 못하는 것이 다 지혜 없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의 결말은 궁핍과 어려움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지혜롭지 못한 사람에게는 채찍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던 사울은 결국 왕위를 빼앗기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을 때에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좇아 순종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채찍이 준비되어 있으니 즉, 원수 마귀가 물어뜯기에 시험 환란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2011년 07월 28일 (목) 14:49:52 이재록목사sion7000@hanmail.net
1.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 10:4)
손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성실하게 노력하여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게으른 사람은 이웃에게 꾸러 다닐 수밖에 없지요. 집을 장만하고자 해도 열심히 일을 하며 목표를 이루기까지 지출을 줄이고 저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적인 비유를 들어 기록케 하셨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영적으로 깨우쳐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지런한 사람이 영적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기도하며 말씀대로 실천하면 의로운 사람이 되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 만일 룻이 게으르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그런 축복을 받았겠습니까?
그녀는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성실하게 감당하였습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쉬지 않고 들에 나가 일을 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는 영육 간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기도 한 가지만 예를 들더라도 게을러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험 환란이 왔을 때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주일을 지킬 힘도 오질 않습니다. 혈기가 나고 내 안에 비진리가 꿈틀거려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5절에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하였습니다. 여름에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지혜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여름에 거둔다는 것은 기본적인 것 외에 더 거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공식적인 것만 거두는 삶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온실 재배를 통해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과일을 먹을 수 있습니다. 농가 소득도 높아지게 되었지요.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주어진 삶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 외에 그의 지혜로 잠언 삼천을 지었으며, 각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에게 지혜의 윤택함을 선사했습니다. 비단 솔로몬 왕뿐 아니라 누구든지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남다르게 파종하여 추수할 때가 아니어도 많은 열매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지각에 뛰어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는 만큼 선이 발전하지 못하고 악이 발전하였기에 공해와 수질오염, 전쟁과 테러 등 인류 평화에 위협을 가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썩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깨어 있어 많은 것을 수확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2.세종대왕의 명철과 지혜
10장 13절에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명철이 있는 사람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일례로 세종대왕은 얼마나 마음이 선하였습니까? 선한 임금이기 때문에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 25년에 세종대왕이 언문 28자를 제정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문자라는 것은 말이나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적기 위한 일정한 체제의 부호를 말합니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까지는 중국의 한자를 빌려와 대신 사용하였는데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말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 창제의 뜻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명철입니다. 세종대왕은 명철의 길이 보였기에 문자를 만들어 백성을 편하게 해 주고 문자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고 문물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명철이 있는 사람에게는 또한 지혜가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의 첫머리에서 한글 창제의 동기와 목적에 대해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를 가지고는 서로 통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뜻을 충분히 펼 수가 없다. 나는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배워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말 속에는 확고한 주체의식과 민본주의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어리석은 백성을 위하여 왕이 문자를 만든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을 만든 당시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그 진가가 나타나지 못하고 진흙 속에 묻힌 구슬과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한문에 젖은 양반들이 한문을 진서, 즉 참된 글이라 하였고 한글은 부녀자나 상것이 쓰는 상글, 즉 언문이라고 천대하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고루한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완고하고 미련한 사람들은 이렇게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글의 유익을 얼마나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까? .
이처럼 명철했던 세종대왕은 지혜로운 정책들을 시행했습니다. 그 한 예로 공정한 재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죄인을 판결하는 데는 잡념을 가지거나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공평하지 못한 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형을 당할 만한 죄인을 판결할 때에는 이 사람을 어떻게 살릴 방법은 없을까? 여러 가지로 법률을 조사 연구하여 살릴 만한 이유를 찾아볼 것이며 무거운 죄를 판결할 때에는 어떻게 하면 그 벌을 가볍게 감해 줄 수 있을까?
이유를 여러 가지로 구하고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사정을 잘 조사하고 참과 거짓을 잘 살펴보고 난 후에 죄를 판결하여도 실수가 없다고 못할 것이거늘 사실도 알아보지 않고 덮어놓고 권세로써 처리하려고 하는 것은 그 소홀함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소홀히 하기 때문에 죄없는 사람을 극형에 처하는 옳지 못한 판결이 내려지고 공평하지 못한 재판이 생기는 수가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왕정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약을 먹고 죽거나 귀양을 갔습니까? 솔로몬 왕이 그랬던 것처럼 세종대왕도 이렇게 공정한 재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지혜로운 말들이 얼마나 백성에게 유익함이 되었겠습니까? 세종대왕뿐 아니라 명철했던 솔로몬이나 다니엘, 요셉 같은 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얼마나 지혜로웠는지요.
그렇다면 이런 명철에 따른 지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세종대왕은 문자를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론을 사용했습니까? 먼저는 일꾼들을 세워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중국말은 문법 체계가 다르고 어려워 오랫동안 학문을 공부한 학자들 외에 백성들은 사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자는 귀족이나 지배 계급의 문자는 될 수 있지만 백성을 위한 서민의 글자는 될 수 없었지요.
그런데 문자는 문화의 소산이며 매개체입니다. 문화는 백성의 것이지 일부 지배계급의 특권적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 세종의 의도이며 위상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왕 글자를 만들 바에는 다른 나라 글자보다 훌륭하고 편리하며 무슨 말이든 어떤 소리든지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학자들을 시켜 중국 사람들이 쓴 말소리 곧 음에 관한 책자인 운서를 철저히 조사하고 깊이 연구하도록 하였지요. 이 때 중국 명나라에 한림학사 한 사람이 라오뚱 땅에 귀양 와 있었습니다. 성삼문은 한자음에서 의문 나는 것을 물어보기 위해 라오뚱을 열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합니다. 이같이 훌륭한 임금이 열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뛰어난 학자들이 정열을 기울였기에 세종 25년 1443년에 훈민정음 28자의 역사적인 제정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할 것은 명철한 사람은 모든 길에 있어서 정도를 걸어간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정도를 걸으면 명철과 지혜가 옵니다. 사람은 왜 태어났습니까? 자녀를 낳고 키우며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죽기 위해 태어났습니까?
이것은 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길이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니 그분의 뜻을 깨우치고 순종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요 먹는 것은 삶에 필요한 한 분야일 뿐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하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구원받아 천국에 가야 할 것입니다.
잠언 10장 13절에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 지혜가 없는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거나 마시고 방탕하고 경고해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악이나 게으름으로 주변의 권면도 듣지 않고 자기 유익만 구하여 악을 행하거나 바른 도리를 좇지 못하는 것이 다 지혜 없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의 결말은 궁핍과 어려움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지혜롭지 못한 사람에게는 채찍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던 사울은 결국 왕위를 빼앗기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을 때에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좇아 순종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채찍이 준비되어 있으니 즉, 원수 마귀가 물어뜯기에 시험 환란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2011년 07월 28일 (목) 14:49:52 이재록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