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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38]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본문: 잠언 10:1-3]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7월 21일 목요일
조회수: 3291
뉴스▲ 하나님의 의는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 일러스트 김동호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잠 10:1). 이 구절은 아비와 어미를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기쁨이 되고 미련한 아들은 아비의 슬픔이 된다고 하지 않고 왜 어미의 근심이 된다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남자는 하늘로, 여자는 땅으로 표현합니다. 여자가 밭이라면 남자는 씨가 되지요. 아비는 가정의 가장으로서 인도자요 머리의 역할을 하며, 어미는 남편을 돕고 자녀를 감싸고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총명하고 지혜롭다는 말을 들을 때 기쁘고 즐겁습니다. 또 자녀가 학문이나 예술, 운동 등 어떤 분야에서 뛰어나면 더욱 자랑스러운 마음이 됩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각국 궁정에 널리 알리기 위해 모차르트가 10살 되기 전에 함께 유럽을 여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자녀가 지혜롭고 뛰어나면 부모가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반면에 자녀의 행실이 방탕하고 범죄하면 가문의 수치요 아비의 부끄러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아비는 어미에게 "어찌하여 바로 가르치지 못했는가?"하고 나무랍니다. 아이를 감싸고 가르치고 보호하는 것이 어미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아비는 주로 밖에서 활동하기에 자녀의 장래에 대해 큰 뼈대를 세울뿐 일일이 간섭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성전까지 장차 건축할 아들이니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솔로몬과 같은 아들은 당연히 아비의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아들인 암논은 왕실 전체의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를 낳은 어미는 고통이 더욱 컸을 것입니다. 암논이 누이를 범하니 압살롬이 분노하여 그를 죽이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다윗 임금과 대면하지 못합니다. 압살롬이 자기 어미의 고향으로 피신하였으니 어미 역시 얼마나 근심의 나날을 보냈겠습니까? 다윗 왕은 날마다 슬퍼했지요.

다니엘의 부모는 성경에 기록이 없지만 이런 아들을 둔 부모는 참으로 흡족할 것이며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가인의 부모는 아들을 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이렇게 아비의 기쁨이 되는 사람은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면 모든 사람의 기쁨이 되고 사랑받을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사람 지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며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자가 되면 무한한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는 것입니다(시 37:4).


2. 불의를 피하며 의리를 지키는 지혜

10장 2절에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하였습니다. 이세벨의 남편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의한 행동의 결과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아간이나 발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이 제안한 물질에 탐이나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계략을 알려 줍니다. 그 결과는 칼날로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한 사람들이 잘 살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심판이 따릅니다.

그러나 불의를 행한 사람을 모두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 중에 몇 사람만 대표적으로 심판하여 드러내도 불의를 행한 사람들이 이를 보고 깨우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 사도를 속였을 때 그 혼이 저주 받아 떠났습니다. 혼이 떠났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함께 하는 종을 속이는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과 같기에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경우입니다. 불의를 행한 사람들은 언제 자기 죄가 드러날지 모르기에 불안과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다리를 뻗고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지요. 불의한 것을 소득으로 얻은 사람들은 그것이 유익함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행동의 결과는 영원한 사망으로 떨어질 뿐입니다. 반드시 이 모든 것에 대해 보응을 받습니다.

또 의리는 친구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어떤 의리를 내보였습니까? 롯이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신 318 명을 거느리고 쫓아갔습니다. 여러 나라 왕들이 동맹한 연합군과 생명을 건 전투 끝에 승리하여 조카 롯과 재물과 부녀와 인민을 찾아왔습니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도 다윗에게 의리를 지켰습니다. 그 결과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요나단의 자손이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는 하나님 앞에 참된 의를 좇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시며 영광을 돌리게 하셨지요. 여기서 말하는 의리는 생명을 걸고 정도를 지킨 것을 뜻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신앙을 위한 의리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온전한 것과 아버지 사울이 옳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편을 들지 않고 다윗을 지켜 주었으니 이것이 참된 의입니다. 내 가족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을 알면서 상대에게 피해를 가게 하는 것은 비굴한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의리를 지킨다고 보증서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요 참된 의가 아닙니다. 상대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여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은 의가 아닙니다.


3.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10장 3절에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 속에 옳다고 여기는 의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가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하나님은 하나님 보기에 의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질병이 있지만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어떤 병도 틈타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양반은 가난하여 굶주릴지라도 일을 하지 않고 글을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는데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열심히 땅을 일구고 일을 해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의로운 영혼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요셉이나 다니엘같이 진리를 좇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의로운 사람은 결코 굶주리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니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요셉으로 인해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여호와의 복이 임하니 주인이 자기 소유를 다 위임할 정도로 신임했지요. 요셉이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좇았기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지만 결과는 형통하였습니다. 감옥에서 애굽 총리가 되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롭게 사는 것 같은데 어려움이 계속 되고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는 사람 보기에 의를 행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는 자신의 양심과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양심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부모나 학교 교육, 책자, TV 등을 통해 보고 듣고 가르침 받으면서 느낌과 함께 입력시켜 온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양심이 다르고 의가 다릅니다. 만일 무협지를 읽으면서 원수 갚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받아들였다면 그 사람은 이런 행동을 의의 기준을 삼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고 용서하고 희생해 주고 섬기고 낮아지고 이해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의가 아닌 것을 의로 알고 입력시켜 양심을 만들었으니 이 양심을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 양심이 옳으며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옳다고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난 후 예수님을 통해 진리만 가르침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둠의 세상에서 교육 받아온 사람들에게 배워 의를 만들었으니 그 안에는 옳은 것도 있지만 진리에 비춰보면 대부분 옳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선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진리의 거울에 비추니 거짓되고 의롭지 않음을 깨우쳤습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깨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나를 온전히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말씀만 좇아 나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의인은 사람이 보기에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로운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리지 않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믿음으로 순종한 이 한가지 의를 보신 하나님은 가뭄이 끝날 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굶주리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무에서 유가 창조됩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어떤 것을 깨우칠 수 있을까요? 만일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빨리 지혜를 터득하여 의를 이루기 바랍니다. 의를 지키다가 손해를 보았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의를 지키며 믿음과 사랑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불 속에 있어도 건져 낼 수 있고 물속에서도 건져 올리시며 감옥에 있을지라도 건지실 수 있습니다.

또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신다고 했으니 하나님은 어떤 악인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얼마나 악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은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악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노아 때에도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였고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지면에서 쓸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쓰레기와 같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심을 알게 됩니다. 내 안에 악이 있는 만큼 응답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2011년 07월 21일 (목) 09:29:23 이재록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