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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 26]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사냥하는 마귀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4월 14일 목요일
조회수: 3043
▲ 성전에서 사고 파는 매매행위를 금하신 예수님 일러스트 ㅣ 김동호
등불이 있으면 어둠 속에서도 목적지를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등불과 같이 아름답고 빛과 같이 유익한 것입니다.
1. 명령은 등불이요 법이 빛이 되는 이유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 6:23)
명령은 우리에게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고 말씀한 것을 말합니다. 명령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사람이 지켜야 할 당연한 본분이고 양약이 되며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일 성수, 기도, 금식, 십일조, 감사헌금, 사랑, 용서 등을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행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러한 말씀은 등불과 같이 우리 인생을 올바로 인도해 주며 축복과 영생을 얻게 합니다. 시편 기자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하셨습니다.
그러면 법이 어떻게 빛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다보면 하나님의 법을 깨우치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다면 가족 간에 화평을 이루고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부모는 그 자녀를 낳은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자기 삶의 가치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십계명만 보아도 빛이 되어 우리를 화목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법은 빛이 되어 우리 삶을 아름답고 유익하게 해 줍니다. 우리를 굴레 씌우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왜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훈계하고 책망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훈계란 아직 배움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단의 송사거리를 만들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빛과 길잡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책망은 훈계보다 훨씬 강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때 성전 안에서 사람들이 매매를 하고 돈을 바꾸어 주는 것을 보셨습니다. 멀리 지방에서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이 제물로 쓰일 짐승을 구입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과 바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이 팔고 있는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며 상을 엎고 책망하셨습니다.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막 11:17).
예수님의 책망을 통해 우리는 교회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여선교회에서 바자회를 하거나 특산물을 싸게 판매해서 남은 수익금으로 이웃돕기를 하겠다고 건의가 들어와도 일체 하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훈계를 통해 제자들은 훌륭한 사도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책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 색을 탐하지 말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잠 6:24-25)
이방 계집이나 호리는 것 등의 육적인 비유를 통해 영적인 의미까지 아울러 말씀합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관영되다 보니 부부가 아닌 남녀가 불륜을 저질러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만나고, 아내는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즐깁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타락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행위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방 계집은 '악'을 뜻합니다. 즉, 악이 우리를 호려서 그 안에 빠지는 것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일례로 내가 어떤 이를 미워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이방 계집과 같습니다. 육체의 일은 내 안에 있는 죄성, 즉 육신의 일이 행함으로 나타난 것으로 불의, 불법 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미움을 버리는 것이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호리는 것에 넘어가는 것일까요?
사람은 본성 속에 이성을 요구하며 육체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안에 방탕함이 있기 때문에 취하도록 마시고 타락을 향해 색을 좇아갑니다. 색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성을 요구하는 색이 있는가 하면 동성끼리의 색도 있습니다. 현란한 유혹을 좇아 들어오는 색이나 육체를 좇는 색 등이 있는데 본문은 색을 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색을 탐하면 행함으로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요일 2:16)이 바로 색에 속합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이것이 좋다, 저것을 갖고 싶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기를 즐겨하며 선을 좇아 행하여 성령의 열매와 팔복, 사랑의 열매를 맺고자 노력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눈과 마음과 생각과 입술이 되면 자신을 세상에서 지킬 수 있기에 색을 탐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3.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사냥하는 원수 마귀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 6:26)
인간 편에서 생각하는 생명과 하나님 편에서 말씀하는 생명은 다릅니다. 사람은 호흡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어도 죽은 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계 3:1).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서 성령을 받고 거듭나 죽은 영이 살아난 사람만이 생명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음란한 계집이 생명을 사냥할 수 있을까요?
원수 마귀 사단은 음란한 계집, 즉 사람의 악을 통해 사주하여 죄를 짓게 하고 사망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사울 왕은 교만함과 권세에 대한 욕심을 통해 원수 마귀에게 넘어가 생명을 사냥 당하였습니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에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 18:8-9)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쫓아다녔습니다. 자신의 권세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는 자신에게 좋은 일만 했던 다윗을 죽이고자 쫓아다녔지만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음란한 계집인 악의 노예가 되니 육의 생명뿐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에 영원한 생명도 사냥 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 마귀는 각 사람에게 가장 약한 부분을 통하여 죄를 짓게 하고 사망의 길로 이끌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어떤 사람은 간음으로, 어떤 사람은 거짓말로 사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분야에서 죄를 짓기 쉬운지 발견하여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빨리 개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비진리에 빠질 수 있는 육체의 일이나 육신의 일을 가지고 원수 마귀가 공략하기 때문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9). 원수 마귀는 우리 안에 있는 비진리의 마음과 생각을 사냥하려고 합니다. 도적질할 마음이 있으면 이 마음을 사냥하여 도적질하게 만듭니다.
내 안에 사기성이 있으면 이를 사주하여 사기를 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를 짓고 영원한 사망, 즉 지옥으로 이끌어갑니다. 내 안에 그런 사냥거리가 없으면 원수 마귀가 나를 피해가는 것입니다.
2011년 04월 14일 (목) 17:18:14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
등불이 있으면 어둠 속에서도 목적지를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등불과 같이 아름답고 빛과 같이 유익한 것입니다.
1. 명령은 등불이요 법이 빛이 되는 이유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 6:23)
명령은 우리에게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고 말씀한 것을 말합니다. 명령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사람이 지켜야 할 당연한 본분이고 양약이 되며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일 성수, 기도, 금식, 십일조, 감사헌금, 사랑, 용서 등을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행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러한 말씀은 등불과 같이 우리 인생을 올바로 인도해 주며 축복과 영생을 얻게 합니다. 시편 기자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하셨습니다.
그러면 법이 어떻게 빛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다보면 하나님의 법을 깨우치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다면 가족 간에 화평을 이루고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부모는 그 자녀를 낳은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자기 삶의 가치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십계명만 보아도 빛이 되어 우리를 화목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법은 빛이 되어 우리 삶을 아름답고 유익하게 해 줍니다. 우리를 굴레 씌우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왜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훈계하고 책망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훈계란 아직 배움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단의 송사거리를 만들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빛과 길잡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책망은 훈계보다 훨씬 강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때 성전 안에서 사람들이 매매를 하고 돈을 바꾸어 주는 것을 보셨습니다. 멀리 지방에서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이 제물로 쓰일 짐승을 구입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과 바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이 팔고 있는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며 상을 엎고 책망하셨습니다.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막 11:17).
예수님의 책망을 통해 우리는 교회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여선교회에서 바자회를 하거나 특산물을 싸게 판매해서 남은 수익금으로 이웃돕기를 하겠다고 건의가 들어와도 일체 하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훈계를 통해 제자들은 훌륭한 사도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책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 색을 탐하지 말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잠 6:24-25)
이방 계집이나 호리는 것 등의 육적인 비유를 통해 영적인 의미까지 아울러 말씀합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관영되다 보니 부부가 아닌 남녀가 불륜을 저질러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 몰래 다른 여자와 만나고, 아내는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즐깁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타락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행위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방 계집은 '악'을 뜻합니다. 즉, 악이 우리를 호려서 그 안에 빠지는 것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일례로 내가 어떤 이를 미워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이방 계집과 같습니다. 육체의 일은 내 안에 있는 죄성, 즉 육신의 일이 행함으로 나타난 것으로 불의, 불법 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미움을 버리는 것이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호리는 것에 넘어가는 것일까요?
사람은 본성 속에 이성을 요구하며 육체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안에 방탕함이 있기 때문에 취하도록 마시고 타락을 향해 색을 좇아갑니다. 색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성을 요구하는 색이 있는가 하면 동성끼리의 색도 있습니다. 현란한 유혹을 좇아 들어오는 색이나 육체를 좇는 색 등이 있는데 본문은 색을 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색을 탐하면 행함으로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요일 2:16)이 바로 색에 속합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이것이 좋다, 저것을 갖고 싶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기를 즐겨하며 선을 좇아 행하여 성령의 열매와 팔복, 사랑의 열매를 맺고자 노력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눈과 마음과 생각과 입술이 되면 자신을 세상에서 지킬 수 있기에 색을 탐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3.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사냥하는 원수 마귀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 6:26)
인간 편에서 생각하는 생명과 하나님 편에서 말씀하는 생명은 다릅니다. 사람은 호흡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어도 죽은 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계 3:1).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서 성령을 받고 거듭나 죽은 영이 살아난 사람만이 생명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음란한 계집이 생명을 사냥할 수 있을까요?
원수 마귀 사단은 음란한 계집, 즉 사람의 악을 통해 사주하여 죄를 짓게 하고 사망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사울 왕은 교만함과 권세에 대한 욕심을 통해 원수 마귀에게 넘어가 생명을 사냥 당하였습니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에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 18:8-9)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쫓아다녔습니다. 자신의 권세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는 자신에게 좋은 일만 했던 다윗을 죽이고자 쫓아다녔지만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음란한 계집인 악의 노예가 되니 육의 생명뿐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에 영원한 생명도 사냥 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 마귀는 각 사람에게 가장 약한 부분을 통하여 죄를 짓게 하고 사망의 길로 이끌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어떤 사람은 간음으로, 어떤 사람은 거짓말로 사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분야에서 죄를 짓기 쉬운지 발견하여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빨리 개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비진리에 빠질 수 있는 육체의 일이나 육신의 일을 가지고 원수 마귀가 공략하기 때문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9). 원수 마귀는 우리 안에 있는 비진리의 마음과 생각을 사냥하려고 합니다. 도적질할 마음이 있으면 이 마음을 사냥하여 도적질하게 만듭니다.
내 안에 사기성이 있으면 이를 사주하여 사기를 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를 짓고 영원한 사망, 즉 지옥으로 이끌어갑니다. 내 안에 그런 사냥거리가 없으면 원수 마귀가 나를 피해가는 것입니다.
2011년 04월 14일 (목) 17:18:14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