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목표 : 절대적인 선의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행함으로 온전한 선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선을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선과 악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선의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1. 온전한 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부르자 예수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셨지요.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신데 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 하신 것일까요?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더욱이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상태입니다.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업을 끝내시기 전까지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셔야 하는 화목제물의 입장이기에 스스로 선하다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온전히 선하시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만이 선의 기준이 됨을 알려 주기 위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성장하면서 만들어 놓은 양심에 비추어 “선하다.” 또는 “선하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양심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진리와 비진리를 섞어서 ‘이것이 옳다’라고 만들어 놓은 가치 판단 기준입니다. 따라서 양심은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된 마음으로, 각자의 배움이나 환경, 어떤 부모와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됩니다.
이러한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말씀만이 절대적인 선,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선을 이루려면 선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워 그대로 행함으로 마음에 일구어야 합니다.
믿음에도 성장 단계가 있듯이 선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하다고 인정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선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을 뿐 아니라 나쁜 감정 자체를 품지 않는 것입니다. 나아가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오히려 감동을 주는 선과,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우선 사람들은 선하다고 인정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선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에 대해 살펴겠습니다.
2.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선의 1단계’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도 함께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선의 1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을 욕하고 때리는데 맞대응하지 않고 잠잠히 참았다고 합시다.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알기에 또는 교양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꾹 눌러 참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선하고 온유해 보이므로 세상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눌러 참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 속에 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경우 한계에 이르면 결국 그 악이 표출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악을 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악을 버리고 어찌하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3.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선의 2단계’
상대가 악을 행할 때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어야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의 2단계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에 해당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상대가 아무리 나를 미워하며 힘들게 해도 악으로 생각지 않으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기 때문에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됩니다.
동정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은 마리아가 자신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잉태한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명백히 간음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니 율법대로 처리하거나, 참는다 해도 평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다고 말씀합니다(마 1:19). 마음에 악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상태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의 단계입니다.
물론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악을 행할 때 같이 악으로 갚지는 않는다 해도 순간 마음에 감정이 일거나 요동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지요. 그러나 이럴 때도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선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 나가면 나중에는 순간의 감정조차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셨으니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고 기도할 때 선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 그치지 말고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 비진리의 모습을 발견했다면 이 모습을 놓고 불같이 기도하여 버려 나가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합니다. 성령의 불로 죄성들을 태워 주심으로 성결한 마음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그럴 때 순간의 악한 감정조차도 일어나지 않는 선의 2단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최소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의 2단계’를 이루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부추기는 대로 악을 행한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 해도 지킴 받거나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만 이루어도 그 선이 영적인 빛으로 역사되어 어둠이 물러가기 때문에 자연히 각종 문제가 해결됩니다.
다음 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한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어떤 분야의 책임자로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랫사람의 실수로 일이 잘못되었습니다. 이때 “제가 더 돌아보지 못한 까닭입니다.”라며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조금이라도 아랫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선하다 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억지가 아닌 진심으로 내 탓으로 여기고 돌아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며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지요.
또 다른 예로, 다른 사람이 책망 듣는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때 ‘나는 상관없는 일이니 다행이다.’ 하지는 않습니까? 혹은 자신도 책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책망하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마음이 선한 사람은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해도 ‘내가 도와줬더라면 실수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봅니다. 더욱이 자신이 직접 관련된 일이라면 당연히 모든 상황을 진실하게 말하고 일에 대한 결과도 책임지려 하겠지요.
그러니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때론 손해 보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과연 선을 행하는 것이 손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사랑과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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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선의 1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 )이 있어도 함께 ( )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선의 2단계는 상대가 ( )을 행할 때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 )도 없다.
2. 양심은 왜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을까요?
3.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신데 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신 것일까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33~1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선의 단계’
선의 1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감정이 있지만 대항하지 않고 눌러 참는다.
선의 2단계 :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을뿐더러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다.
선의 3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선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단계이다.
선의 4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