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9
제23과사랑은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것
고전 13:4
읽을말씀 : 고전 13:4 | 외울말씀 : 요일 2:15~16 l 참고 말씀: 잠 14:30
교육목표 :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투기하는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자랑하며 믿음의 형제 자매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한다.
투기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기, 질투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사랑받을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나보다 지식이 많고 부유하며 능력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고, 비슷한 조건을 가진 상대가 승승장구하면 부러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상대가 밉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아 행복을 짓밟고 싶어 하지요. 한편으로는 ‘저 사람은 인정받고 사랑받는데 나는 뭔가? 왜 나는 늘 이 모양인가?’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1.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대부분 낙심하는 마음은 시기, 질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상대가 잘될 때에 낙심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지요. 낙심하거나 자책하며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自己)’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자아(自我)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악한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투기가 심해지면 상대에게 해를 가하거나 죽이기도 합니다. 투기는 악하고 추한 마음의 죄성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에 투기하는 사람은 구원받기 어렵습니다(갈 5:19∼21). 눈에 보이도록 드러나는 죄, 곧 현저한 육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투기의 유형
먼저는, 이성 간의 사랑에서 비롯된 투기입니다. 이성에게 더 사랑을 받으려고 투기하는 것입니다. 바로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이들은 자매 지간이지만 남편 야곱의 사랑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지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영적인 사랑이 있었다면 상대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투기하므로 불행하였으며 자녀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음으로, 상대가 나보다 나으므로 투기하는 경우입니다. 대체로 상대가 부유하고 지식이 많으며 외모나 능력 면에서 앞서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투기가 일어납니다. 자신보다 앞서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미워하고 헐뜯습니다. 내가 잘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경쟁자의 약점을 알리기도 하고 누명을 씌워 상사의 눈 밖에 나도록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를 따돌리거나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있지요. 부모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형제간에 다투며 헐뜯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형제들 간에 투기하는 경우입니다. 질서나 직분 또는 신앙이 앞서거나 열심히 충성하는 형제, 자매를 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경우 보통 자신과 나이나 직분이 비슷한 상대, 잘 아는 사람에 대해 많이 나타납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잘못이나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괜히 불편하고 부글부글합니다. 서로를 잘 알다 보니 자신보다 별로 나은 것도 없고 이런저런 부족함도 많은데 사랑받고 인정받으니 불만스러운 것이지요. 이러한 투기는 주의 종과 성도 사이에, 혹은 교회와 교회 사이, 교단 사이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끼리, 주님의 몸 된 교회 간에 투기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투기로 인생을 허비한 사람입니다. 충신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의 사랑을 더 받자 투기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많은 군사를 이끌고 오랜 세월 다윗의 뒤를 쫓아다니다가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14:30) 한 대로 투기는 자신을 상하게 하니 백해무익합니다. 따라서 남보다 앞서고 싶다면 투기함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투기하는 이유는 믿음이 적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적으면 세상 부와 명예, 권세 등을 더 갖기 위해 투기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주 안에서 맺어진 형제 자매가 가족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어찌하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고 주의 일에 열심을 냅니다.
2.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자랑이란 ‘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기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보다 더 나은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내세워 인정받고 싶어 하지요. 이러한 자랑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이웃에게 자랑한다고 합시다. 함께 기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공부를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어떻겠습니까? 대개 자존심이 상하지요. 속이 상한 나머지 괜히 자녀를 나무랍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선한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자기 자녀가 공부를 잘해도 함부로 자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웃의 자녀도 잘하기를 바라며, 잘되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칭찬해 줄 것입니다.
자랑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데에는 몹시 인색합니다. 남이 드러나는 만큼 자신이 가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찌하든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랑이 다툼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이처럼 자랑하는 마음은 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멉니다. 스스로 자랑하면 높아지고 인정받을 것 같지만 진심 어린 존경이나 사랑을 받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마음 안에 ‘이생의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생의 자랑이란 자기만족과 쾌락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이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자랑하게 마련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외모를 자랑합니다. 즉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진 돈과 외모, 명예, 권세 등이 앞선 것입니다.
이처럼 자랑하는 마음은 헛된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자랑 중에도 선하고 좋은 자랑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7절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하신 대로 ‘주 안에서의 자랑’입니다. 주 안에서의 자랑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고백한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고 천국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예수님 덕분에 영생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도 바울은 도리어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면서 자기를 자랑합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축복받을 수 있었다.”며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지요. 결국에는 자신의 공로로 돌립니다. 그러니 사단의 송사를 받아 이런저런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지요. 세상의 자랑거리는 영원한 생명이나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헛된 욕심을 불러일으켜 멸망으로 가게 만들 뿐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 나가면 이생의 자랑을 뽑아 버릴 수 있는 힘이 옵니다. 마치 어렸을 때는 그렇게 좋았던 장난감이 어른이 되면 너무 시시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생의 자랑을 버리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2. ( )이란 자기만족과 쾌락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속성이다.
3. 사람들은 왜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4. 요한일서 2:15~16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00~1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히스기야 왕의 자랑으로 인한 여파
히스기야 왕은 한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였고 성전을 정결케 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기도로 앗수르 제국의 공격을 이겨냈고 죽을병에 걸렸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15년간이나 생명을 연장받았다. 그런데 그의 병이 치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이 외교 사절단을 보냈을 때 그들에게 자신의 보물과 성전의 기물들을 보여 주며 위세를 자랑한다. 결국 그 자랑 때문에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그토록 자랑하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만다.
교육목표 :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투기하는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자랑하며 믿음의 형제 자매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한다.
투기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기, 질투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사랑받을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나보다 지식이 많고 부유하며 능력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고, 비슷한 조건을 가진 상대가 승승장구하면 부러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상대가 밉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아 행복을 짓밟고 싶어 하지요. 한편으로는 ‘저 사람은 인정받고 사랑받는데 나는 뭔가? 왜 나는 늘 이 모양인가?’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1.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대부분 낙심하는 마음은 시기, 질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상대가 잘될 때에 낙심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지요. 낙심하거나 자책하며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自己)’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자아(自我)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악한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투기가 심해지면 상대에게 해를 가하거나 죽이기도 합니다. 투기는 악하고 추한 마음의 죄성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에 투기하는 사람은 구원받기 어렵습니다(갈 5:19∼21). 눈에 보이도록 드러나는 죄, 곧 현저한 육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투기의 유형
먼저는, 이성 간의 사랑에서 비롯된 투기입니다. 이성에게 더 사랑을 받으려고 투기하는 것입니다. 바로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이들은 자매 지간이지만 남편 야곱의 사랑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지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영적인 사랑이 있었다면 상대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투기하므로 불행하였으며 자녀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음으로, 상대가 나보다 나으므로 투기하는 경우입니다. 대체로 상대가 부유하고 지식이 많으며 외모나 능력 면에서 앞서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투기가 일어납니다. 자신보다 앞서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미워하고 헐뜯습니다. 내가 잘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경쟁자의 약점을 알리기도 하고 누명을 씌워 상사의 눈 밖에 나도록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를 따돌리거나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있지요. 부모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형제간에 다투며 헐뜯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형제들 간에 투기하는 경우입니다. 질서나 직분 또는 신앙이 앞서거나 열심히 충성하는 형제, 자매를 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경우 보통 자신과 나이나 직분이 비슷한 상대, 잘 아는 사람에 대해 많이 나타납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잘못이나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괜히 불편하고 부글부글합니다. 서로를 잘 알다 보니 자신보다 별로 나은 것도 없고 이런저런 부족함도 많은데 사랑받고 인정받으니 불만스러운 것이지요. 이러한 투기는 주의 종과 성도 사이에, 혹은 교회와 교회 사이, 교단 사이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끼리, 주님의 몸 된 교회 간에 투기한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투기로 인생을 허비한 사람입니다. 충신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의 사랑을 더 받자 투기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많은 군사를 이끌고 오랜 세월 다윗의 뒤를 쫓아다니다가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14:30) 한 대로 투기는 자신을 상하게 하니 백해무익합니다. 따라서 남보다 앞서고 싶다면 투기함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투기하는 이유는 믿음이 적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적으면 세상 부와 명예, 권세 등을 더 갖기 위해 투기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주 안에서 맺어진 형제 자매가 가족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어찌하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고 주의 일에 열심을 냅니다.
2.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자랑이란 ‘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기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보다 더 나은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내세워 인정받고 싶어 하지요. 이러한 자랑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이웃에게 자랑한다고 합시다. 함께 기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공부를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어떻겠습니까? 대개 자존심이 상하지요. 속이 상한 나머지 괜히 자녀를 나무랍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선한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자기 자녀가 공부를 잘해도 함부로 자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웃의 자녀도 잘하기를 바라며, 잘되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칭찬해 줄 것입니다.
자랑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데에는 몹시 인색합니다. 남이 드러나는 만큼 자신이 가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찌하든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랑이 다툼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이처럼 자랑하는 마음은 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멉니다. 스스로 자랑하면 높아지고 인정받을 것 같지만 진심 어린 존경이나 사랑을 받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마음 안에 ‘이생의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생의 자랑이란 자기만족과 쾌락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이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자랑하게 마련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외모를 자랑합니다. 즉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진 돈과 외모, 명예, 권세 등이 앞선 것입니다.
이처럼 자랑하는 마음은 헛된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자랑 중에도 선하고 좋은 자랑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7절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하신 대로 ‘주 안에서의 자랑’입니다. 주 안에서의 자랑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고백한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고 천국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예수님 덕분에 영생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도 바울은 도리어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면서 자기를 자랑합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축복받을 수 있었다.”며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지요. 결국에는 자신의 공로로 돌립니다. 그러니 사단의 송사를 받아 이런저런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지요. 세상의 자랑거리는 영원한 생명이나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헛된 욕심을 불러일으켜 멸망으로 가게 만들 뿐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 나가면 이생의 자랑을 뽑아 버릴 수 있는 힘이 옵니다. 마치 어렸을 때는 그렇게 좋았던 장난감이 어른이 되면 너무 시시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생의 자랑을 버리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2. ( )이란 자기만족과 쾌락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속성이다.
3. 사람들은 왜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4. 요한일서 2:15~16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00~1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히스기야 왕의 자랑으로 인한 여파
히스기야 왕은 한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였고 성전을 정결케 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기도로 앗수르 제국의 공격을 이겨냈고 죽을병에 걸렸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15년간이나 생명을 연장받았다. 그런데 그의 병이 치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이 외교 사절단을 보냈을 때 그들에게 자신의 보물과 성전의 기물들을 보여 주며 위세를 자랑한다. 결국 그 자랑 때문에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그토록 자랑하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