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6
제24과사랑은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는 것
고전 13:4~5
읽을말씀 : 고전 13:4~5 | 외울말씀 : 잠 16:18 ㅣ 참고 말씀: 약 4:10
교육목표 : 누구에게든지 무례히 행치 않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며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은 남보다 우월하다 느끼고 쉽게 교만에 빠집니다. 또 일이 술술 풀리고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우쭐대거나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악 중에 하나가 바로 교만입니다.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이 땅의 언어가 혼잡하게 나뉘었던 바벨탑 사건도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고자 하는 교만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1.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제일로 여깁니다.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며 가르치려 하지요. 자신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준 사람이나 질서상 윗사람까지도 무시합니다.
윗사람이 어떤 권면이나 지적을 해 주어도 “뭘 모르고 저렇게 말씀하시네.”라고 불평하거나 “그 정도는 나도 다 아는데…. 잘할 수 있는데.” 하고 귀찮아합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곧잘 변론이 생기고 자기가 옳다며 혈기를 내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데도 잘 모르지요. 교만하면 자신이 틀려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주장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변론하지 않습니다. 백 퍼센트 확신이 있어도 만에 하나 자신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지요. 굳이 상대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에는 그만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요. 모든 영혼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로서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체로 눈에 띄게 자신을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교만을 육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영접하여 진리를 알고 버리기 위해 노력하면 비교적 쉽게 버려집니다. 하지만 영적인 교만은 스스로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말씀을 들어 많이 압니다. 직분과 사명을 받아 위치가 높아지지요. 그러니 자신이 아는 말씀을 마음에 이룬 것처럼 착각합니다. 또 상대를 지적하고 판단,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한다 하지요. 마음이 높아지니 꼭 지켜야 할 절차도 무시해 버립니다. 명백히 질서를 거스르는 행동인데도 ‘나는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 괜찮다. 나는 예외다.’라고 생각하지요. 이처럼 높아진 마음을 영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또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즉 낮아지면 주님께서 높여 주시지요.
사람은 누구나 성결하기 전에는 교만해질 수 있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 죄성을 뿌리째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같은 기도로 온전히 뽑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다시 나올 수 있지요. 마치 잡초를 잘라내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싹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며, 나보다 상대를 낫게 여기고,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기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작은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썩고 말지만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끝을 알 수 없는 대양에 이르러 생명의 보고를 이룹니다. 이처럼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 앞에 지극히 큰 자, 존귀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식사 매너, 대화 매너, 전화받는 매너, 공공장소에서의 매너 등 우리의 생활 속에는 다양한 예절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합니다. 바른 몸가짐과,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좋은 인상을 심어 줍니다. 반대로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줍니다. 더구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어떨까요? 그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인사법이나 대화법 등 나라나 시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무례히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지요.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허물없이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 자칫 예의 없는 행동이 나오거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진정 사랑이 있다면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 앞에 무례를 범하는 것일까요?
가령, 예배 시간에 좁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이나 상사 앞에서 조는 것도 무례한데 하나님 앞에 존다는 것은 큰 실례이지요. 또 예배 시간에 대화하거나 딴생각을 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예배 도중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돕는 사명 때문에 나가는 경우를 빼고는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묵도나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나 주기도문으로 마칠 때까지 모든 순서를 마음 다해 드려야 하지요. 찬양이나 기도 시간은 물론 헌금이나 광고 시간에도 집중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무례한 행동입니다. 사람들과의 약속도 늦으면 민망한데 예배에 지각한다는 것은 너무 불손한 행동이지요.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입니다. 이 밖에도 술 담배를 하고 예배드리거나 예배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 껌을 씹거나 음식을 먹는 것도 무례한 행동이지요.
예배에 나올 때 몸가짐도 중요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입던 옷 그대로 아무렇게나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복장은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는 에티켓입니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바로 오는 경우는 예배 시간에 맞춰 서두르다 보면 작업복 차림으로 오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께서 바쁜 일과 중에도 어찌하든 예배에 참석하려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기도를 통해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특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상대가 기도하고 있는데 다급한 일로 툭툭 쳐서 기도를 중단시킨다면 윗사람과 대화하는데 불쑥 끼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또 기도하는데 누가 자신을 부른다고 곧바로 멈추는 것도 하나님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는 것이지요. 마무리 기도까지 마친 후 응수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성전은 예배실뿐 아니라, 마당과 부속 시설 등 모든 공간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큰소리로 다투거나 사업이나 연예인, 드라마, 오락 등 세상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물을 함부로 다루어 상하게 하거나 헌금봉투를 임의로 사용해서도 안 되지요. 성전 부속 사무실에서 인터넷 결제를 하고 물건을 받는 것 역시 명백한 매매입니다. 교회 마당에서 바자회 같은 행사를 여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에게도 무례를 잘 범하는 이유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밤늦게 전화를 한다거나 바쁜 사람에게 전화해서 장시간 붙들고 있습니다. 또 약속시간에 늦거나 남의 집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갑니다. 내 편에서는 친해서라고 여기지만 상대는 다를 수 있지요. 가깝고 편한 사이일수록 더 조심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라 해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하여 상처를 주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족 또는 절친한 친구에게 예의 없이 대하다 보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한테 쉽게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고 명령하는 태도는 불쾌감을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 사이에도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니 세상의 법과 질서도 잘 지켜야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침을 뱉고 교통 법규를 어기는 것도 무례하지요. 무례함이란 결국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마음,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상대를 진정 사랑하면 늘 배려하므로 무례를 범치 않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 )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 )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2.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 )하지 않는다.
100% 확신이 있어도 만에 하나 자신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 )를 남겨둔다.
3. 하나님께 무례를 범하는 경우와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은 무엇인지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17~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배려하는 마음’
깜깜한 밤에 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 길을 가고 있었다. 마주 오던 행인이 보니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행인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앞을 보지 못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
그러자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등불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배려는 사소한 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있다.
교육목표 : 누구에게든지 무례히 행치 않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며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은 남보다 우월하다 느끼고 쉽게 교만에 빠집니다. 또 일이 술술 풀리고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우쭐대거나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악 중에 하나가 바로 교만입니다.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이 땅의 언어가 혼잡하게 나뉘었던 바벨탑 사건도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고자 하는 교만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1.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제일로 여깁니다.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며 가르치려 하지요. 자신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준 사람이나 질서상 윗사람까지도 무시합니다.
윗사람이 어떤 권면이나 지적을 해 주어도 “뭘 모르고 저렇게 말씀하시네.”라고 불평하거나 “그 정도는 나도 다 아는데…. 잘할 수 있는데.” 하고 귀찮아합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곧잘 변론이 생기고 자기가 옳다며 혈기를 내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데도 잘 모르지요. 교만하면 자신이 틀려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주장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변론하지 않습니다. 백 퍼센트 확신이 있어도 만에 하나 자신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지요. 굳이 상대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에는 그만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요. 모든 영혼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로서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체로 눈에 띄게 자신을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교만을 육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영접하여 진리를 알고 버리기 위해 노력하면 비교적 쉽게 버려집니다. 하지만 영적인 교만은 스스로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말씀을 들어 많이 압니다. 직분과 사명을 받아 위치가 높아지지요. 그러니 자신이 아는 말씀을 마음에 이룬 것처럼 착각합니다. 또 상대를 지적하고 판단,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한다 하지요. 마음이 높아지니 꼭 지켜야 할 절차도 무시해 버립니다. 명백히 질서를 거스르는 행동인데도 ‘나는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 괜찮다. 나는 예외다.’라고 생각하지요. 이처럼 높아진 마음을 영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또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즉 낮아지면 주님께서 높여 주시지요.
사람은 누구나 성결하기 전에는 교만해질 수 있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 죄성을 뿌리째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같은 기도로 온전히 뽑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다시 나올 수 있지요. 마치 잡초를 잘라내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싹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며, 나보다 상대를 낫게 여기고,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기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작은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썩고 말지만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끝을 알 수 없는 대양에 이르러 생명의 보고를 이룹니다. 이처럼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 앞에 지극히 큰 자, 존귀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식사 매너, 대화 매너, 전화받는 매너, 공공장소에서의 매너 등 우리의 생활 속에는 다양한 예절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합니다. 바른 몸가짐과,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좋은 인상을 심어 줍니다. 반대로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줍니다. 더구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어떨까요? 그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인사법이나 대화법 등 나라나 시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무례히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지요.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허물없이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 자칫 예의 없는 행동이 나오거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진정 사랑이 있다면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 앞에 무례를 범하는 것일까요?
가령, 예배 시간에 좁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이나 상사 앞에서 조는 것도 무례한데 하나님 앞에 존다는 것은 큰 실례이지요. 또 예배 시간에 대화하거나 딴생각을 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예배 도중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돕는 사명 때문에 나가는 경우를 빼고는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묵도나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나 주기도문으로 마칠 때까지 모든 순서를 마음 다해 드려야 하지요. 찬양이나 기도 시간은 물론 헌금이나 광고 시간에도 집중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무례한 행동입니다. 사람들과의 약속도 늦으면 민망한데 예배에 지각한다는 것은 너무 불손한 행동이지요.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입니다. 이 밖에도 술 담배를 하고 예배드리거나 예배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 껌을 씹거나 음식을 먹는 것도 무례한 행동이지요.
예배에 나올 때 몸가짐도 중요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입던 옷 그대로 아무렇게나 오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복장은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는 에티켓입니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바로 오는 경우는 예배 시간에 맞춰 서두르다 보면 작업복 차림으로 오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께서 바쁜 일과 중에도 어찌하든 예배에 참석하려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기도를 통해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특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상대가 기도하고 있는데 다급한 일로 툭툭 쳐서 기도를 중단시킨다면 윗사람과 대화하는데 불쑥 끼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또 기도하는데 누가 자신을 부른다고 곧바로 멈추는 것도 하나님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는 것이지요. 마무리 기도까지 마친 후 응수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성전은 예배실뿐 아니라, 마당과 부속 시설 등 모든 공간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큰소리로 다투거나 사업이나 연예인, 드라마, 오락 등 세상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물을 함부로 다루어 상하게 하거나 헌금봉투를 임의로 사용해서도 안 되지요. 성전 부속 사무실에서 인터넷 결제를 하고 물건을 받는 것 역시 명백한 매매입니다. 교회 마당에서 바자회 같은 행사를 여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에게도 무례를 잘 범하는 이유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밤늦게 전화를 한다거나 바쁜 사람에게 전화해서 장시간 붙들고 있습니다. 또 약속시간에 늦거나 남의 집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갑니다. 내 편에서는 친해서라고 여기지만 상대는 다를 수 있지요. 가깝고 편한 사이일수록 더 조심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라 해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하여 상처를 주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족 또는 절친한 친구에게 예의 없이 대하다 보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한테 쉽게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고 명령하는 태도는 불쾌감을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 사이에도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니 세상의 법과 질서도 잘 지켜야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침을 뱉고 교통 법규를 어기는 것도 무례하지요. 무례함이란 결국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마음,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상대를 진정 사랑하면 늘 배려하므로 무례를 범치 않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 )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 )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2.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 )하지 않는다.
100% 확신이 있어도 만에 하나 자신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 )를 남겨둔다.
3. 하나님께 무례를 범하는 경우와 사람에게 무례한 행동은 무엇인지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17~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배려하는 마음’
깜깜한 밤에 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 길을 가고 있었다. 마주 오던 행인이 보니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행인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앞을 보지 못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
그러자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대답했다. “당신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등불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배려는 사소한 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