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3
제25과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는 것
고전 13:5
읽을말씀 : 고전 13:5 | 외울말씀 : 약 1:20 ㅣ 참고 말씀: 고전 10:31
교육목표 :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성냄을 버리고 내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희생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게 한다.
현대 사회는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고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단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갓난아이들이 먹는 분유에 유해성 화학물질을 첨가하는가 하면, 국가적으로 중대한 원천 기술을 빼돌려 막대한 손실을 입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1.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서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령 여러 사람이 식당에 갔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 같지만 마음은 불편합니다. 반면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해당합니까?
또 직장에서 자기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상대 의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설령 자기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기쁨으로 따라 주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각 사람의 마음에 얼마큼 영적인 사랑이 있느냐에 따라 나오는 현상이 다릅니다.
만일 의견 대립이 심해져서 다툼이 생기고 화평이 깨진다면 이는 바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 자꾸 부딪치고 마음에 상처만 더 깊어지지요. 서로 양보하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화평할 수 있는 일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므로 화평이 깨집니다. 우리가 상대를 사랑하면 늘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1) 사랑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한 아브라함
내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범사에 내 유익을 구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한 사람으로는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올 때 조카 롯이 함께했는데, 아브라함과 함께함으로 롯도 더불어 복을 받아 가축이 심히 많아졌지요. 어찌나 많았던지 가축에게 먹일 물이 부족하여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화평이 깨지기를 원치 않았기에 롯에게 땅을 택하여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을 양보합니다. 목축업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풀과 물입니다. 가나안 지경은 물과 풀이 넉넉한 곳이 많지 않으니 땅을 양보한다는 것은 생존권을 양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이 롯을 사랑했기에 배려한 것입니다. 이런 삼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롯은 물이 많고 넉넉한 요단 들을 택해 떠납니다. 자신의 유익을 좇아 떠나는 롯을 볼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불편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카가 더 좋은 땅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선한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는 곳마다 함께하시며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주변 나라 왕들의 예우를 받을 만큼 엄청난 거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기쁨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 따릅니다.
2)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그러면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성령을 의뢰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주관에 따라 하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거기다 참사랑을 이루면 각 상황마다 선의 지혜가 풍성히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지요. 이처럼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져서 마음껏 충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지 않는 이웃이나 가족에게 사랑받게 되지요.
우리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게 되면 화평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건건 나를 힘들게 하고 자신의 유익만 좇는 사람, 나에게 피해가 되는 사람, 비진리를 행하고 노상 악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지요?
그런 경우에는 피해 버리거나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사랑으로 희생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될 때 영적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들며, 또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게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냄으로써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놓는 대표적인 덫이 바로 미움과 성냄입니다.
성내는 것은 단지 격렬히 화를 내고 큰소리로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얼굴이 굳어지고 안색이 변하는 것, 말투가 퉁명스러워지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성내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표정만 보고 ‘화가 났구나.’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 의분과 성냄의 차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신 일이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인들은 성전 뜰에 좌판을 펴고 돈을 환전해 주거나 가축을 사고팔았지요. 온유하신 예수님은 이 광경을 보고 돌변하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제사에 쓰일 가축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이들의 의자를 엎으셨지요.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이 혈기가 대단하시네? 화를 내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 미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분을 내신 것이지요. 비록 좋은 목적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는 결국 공의로 사랑을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분을 내신 것도 영혼들을 깨우고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냄과 의분은 전혀 다릅니다. 그만큼 성결되어 죄가 없을 때 의분 또는 책망을 통해서도 영혼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2) 성내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성내는 이유는 먼저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저마다 성장한 환경이나 배움이 다르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이 다르고 교양이 다르며 판단 기준이 다른데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니 감정이 나지요. 또한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성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상대보다 앞서거나 나은 위치에 있으면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요. 이 외에도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자신의 지시나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누군가에게 욕설을 듣거나 모욕을 당했을 때 화를 냅니다.
사람들은 성내기 전에 먼저 마음에서 나쁜 감정부터 일어납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먼저 감정을 자극하고 결국 성내는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흔히 ‘감정이 상한다’는 단계가 바로 성냄의 전초 단계입니다. 우리가 성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깨우쳐 내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해서 혈기를 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고전 3:16).
그러면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절제를 잘해서 꾹 눌러 참으면 될까요? 스프링은 누를수록 더욱 강한 반동력이 생겨 튕겨져 나오듯이 화를 눌러 참는 것이 순간의 위기는 모면한다 해도 언젠가는 폭발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성내지 않으려면 성내게 하는 감정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마음을 선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우리가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3.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 )으로써 걸려 넘어지게 한다. 원수 마귀 사단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놓는 대표적인 덫이 ( )과 ( )이다.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30~1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화가 날 때’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서재에는 “화가 나면 열까지 세고 매우 화가 나면 백까지 세라.”는 글이 있었다고 한다. 화가 날 때 ‘지금 이 순간 성내는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 찬찬히 생각해 보자. 그러면 한순간 참지 못해 후회할 일이나 부끄럼 당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으로 인내하다 보면 나중에는 성나게 하는 감정까지 차츰 버려진다.
예전에는 10번 화내던 것이 9번, 8번 점점 줄어들어 아무리 화가 날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교육목표 :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성냄을 버리고 내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희생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게 한다.
현대 사회는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고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단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갓난아이들이 먹는 분유에 유해성 화학물질을 첨가하는가 하면, 국가적으로 중대한 원천 기술을 빼돌려 막대한 손실을 입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1.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것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서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령 여러 사람이 식당에 갔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 같지만 마음은 불편합니다. 반면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해당합니까?
또 직장에서 자기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상대 의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설령 자기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기쁨으로 따라 주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각 사람의 마음에 얼마큼 영적인 사랑이 있느냐에 따라 나오는 현상이 다릅니다.
만일 의견 대립이 심해져서 다툼이 생기고 화평이 깨진다면 이는 바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 자꾸 부딪치고 마음에 상처만 더 깊어지지요. 서로 양보하고 상대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화평할 수 있는 일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므로 화평이 깨집니다. 우리가 상대를 사랑하면 늘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1) 사랑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한 아브라함
내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범사에 내 유익을 구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한 사람으로는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올 때 조카 롯이 함께했는데, 아브라함과 함께함으로 롯도 더불어 복을 받아 가축이 심히 많아졌지요. 어찌나 많았던지 가축에게 먹일 물이 부족하여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화평이 깨지기를 원치 않았기에 롯에게 땅을 택하여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을 양보합니다. 목축업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풀과 물입니다. 가나안 지경은 물과 풀이 넉넉한 곳이 많지 않으니 땅을 양보한다는 것은 생존권을 양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이 롯을 사랑했기에 배려한 것입니다. 이런 삼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롯은 물이 많고 넉넉한 요단 들을 택해 떠납니다. 자신의 유익을 좇아 떠나는 롯을 볼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불편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카가 더 좋은 땅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선한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는 곳마다 함께하시며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주변 나라 왕들의 예우를 받을 만큼 엄청난 거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기쁨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 따릅니다.
2)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그러면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성령을 의뢰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주관에 따라 하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거기다 참사랑을 이루면 각 상황마다 선의 지혜가 풍성히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지요. 이처럼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져서 마음껏 충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지 않는 이웃이나 가족에게 사랑받게 되지요.
우리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게 되면 화평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건건 나를 힘들게 하고 자신의 유익만 좇는 사람, 나에게 피해가 되는 사람, 비진리를 행하고 노상 악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지요?
그런 경우에는 피해 버리거나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사랑으로 희생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될 때 영적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들며, 또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게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냄으로써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놓는 대표적인 덫이 바로 미움과 성냄입니다.
성내는 것은 단지 격렬히 화를 내고 큰소리로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얼굴이 굳어지고 안색이 변하는 것, 말투가 퉁명스러워지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성내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표정만 보고 ‘화가 났구나.’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 의분과 성냄의 차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신 일이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인들은 성전 뜰에 좌판을 펴고 돈을 환전해 주거나 가축을 사고팔았지요. 온유하신 예수님은 이 광경을 보고 돌변하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제사에 쓰일 가축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이들의 의자를 엎으셨지요.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이 혈기가 대단하시네? 화를 내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 미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분을 내신 것이지요. 비록 좋은 목적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는 결국 공의로 사랑을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분을 내신 것도 영혼들을 깨우고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냄과 의분은 전혀 다릅니다. 그만큼 성결되어 죄가 없을 때 의분 또는 책망을 통해서도 영혼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2) 성내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성내는 이유는 먼저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저마다 성장한 환경이나 배움이 다르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이 다르고 교양이 다르며 판단 기준이 다른데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니 감정이 나지요. 또한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성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상대보다 앞서거나 나은 위치에 있으면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요. 이 외에도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자신의 지시나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누군가에게 욕설을 듣거나 모욕을 당했을 때 화를 냅니다.
사람들은 성내기 전에 먼저 마음에서 나쁜 감정부터 일어납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먼저 감정을 자극하고 결국 성내는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흔히 ‘감정이 상한다’는 단계가 바로 성냄의 전초 단계입니다. 우리가 성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깨우쳐 내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해서 혈기를 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고전 3:16).
그러면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절제를 잘해서 꾹 눌러 참으면 될까요? 스프링은 누를수록 더욱 강한 반동력이 생겨 튕겨져 나오듯이 화를 눌러 참는 것이 순간의 위기는 모면한다 해도 언젠가는 폭발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성내지 않으려면 성내게 하는 감정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마음을 선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우리가 성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3.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 )으로써 걸려 넘어지게 한다. 원수 마귀 사단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놓는 대표적인 덫이 ( )과 ( )이다.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30~1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화가 날 때’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서재에는 “화가 나면 열까지 세고 매우 화가 나면 백까지 세라.”는 글이 있었다고 한다. 화가 날 때 ‘지금 이 순간 성내는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 찬찬히 생각해 보자. 그러면 한순간 참지 못해 후회할 일이나 부끄럼 당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으로 인내하다 보면 나중에는 성나게 하는 감정까지 차츰 버려진다.
예전에는 10번 화내던 것이 9번, 8번 점점 줄어들어 아무리 화가 날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