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1
제32과하나님의 사랑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사 49:15 l 참고 말씀: 롬 8:26~27
교육목표 :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진리와 반대되는 비진리를 온전히 벗어버리고 알곡 성도의 신앙을 소유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을 창조하신 뒤 동방의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를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생령 아담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와라는 사랑스런 배필도 주셨지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셨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셨습니다.
1. 인간을 경작하시며 참 자녀로 이끄시는 사랑
하나님께서 주신 최상의 환경 속에서 아담은 무수한 세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에게는 참 자녀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마음껏 사랑을 주셨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지만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죽음과 불행을 겪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몰랐고, 미움을 체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알았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체험이 없으니 진정 마음에서 느끼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령 아담과 하와는 오랜 세월 동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결국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 경작이라는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경작을 통해 눈물, 슬픔, 고통, 사망 등을 체험함으로 장차 천국에 이르러 자신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깨달아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에덴동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국에서 세세토록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더는 에덴동산에 살 수 없었습니다. 천하 만물을 호령하던 아담이 권세를 잃으니 이 땅의 동식물까지도 저주를 받기에 이릅니다. 풍요롭고 아름답던 이 땅도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며,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록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지만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과 전혀 환경이 다른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에덴동산을 떠나 지구에서 살게 될 그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염려하며 걱정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급속도로 죄로 물들어 하나님과 멀어져 갔습니다(롬 1:21~23).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바라며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혹여 세상과 짝하며 잠시 하나님을 멀리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집 나간 자녀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보다 더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계시지요.
2.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사랑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 밑에서 호의호식하며 자란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이나 자신이 누리는 환경이 얼마나 값지고 좋은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먼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신데 유산을 달라는 아들은 철없고 버릇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결국 아들은 유산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아픔은 시작됩니다.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나쁜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합니다. 습관처럼 먼 데를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아들 생각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얼마 후 돈이 떨어진 아들은 사람들의 냉대 속에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주는 이가 없을 만큼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제야 아버지의 품이 생각났습니다.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달려가 안고 입을 맞춥니다. 못난 아들이라 나무라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시대, 특정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한 대로 모든 사람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마다 기뻐하시고 반갑게 맞아 주시지요.
이처럼 끝까지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만세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보혈과 생명으로써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다시 찾은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승천하신 후 우리 마음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돌이키도록 이끄십니다. 믿음이 적은 이에게 믿음을 더하고, 소망이 없는 이에게는 천국 소망을 더해 주십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섬세하게 양육하듯이 행여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때에 따라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시지요.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고 천국까지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깊이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강건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이는 영계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과 응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나 갖가지 문제를 해결받았을 때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다.”는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노라.” 하는 것이 진정한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또 근심 걱정이 없고 질병이나 이별, 사망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얼마나 가슴 벅차며 감격하였는지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사랑하신 것이 아니지요.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여인이 젖먹이 자녀를 한시도 잊지 못하는, 그 이상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살피시고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줄 아셨는데도 막지 않으시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놔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사랑의 극치를 보여 준 사건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94~20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죽옷’에 담긴 영적 의미
1. 가죽옷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떠나 척박한 지구에서 살아갈 아담과 하와를 매우 안쓰러워하시며 사랑의 표현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앞으로 변질된 땅에서 받게 될 충격과 몸소 겪어야 할 고통이 어떠함을 아셨기에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몸을 보호하게 하셨던 것이다.
2. 가죽옷은 ‘구원의 끈’을 의미한다.
가죽옷은 하나님과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구원의 끈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놓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사랑의 징표요, 구원의 끈인 가죽 옷이 있었기에 이 땅의 삶을 견디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함으로 결국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교육목표 :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진리와 반대되는 비진리를 온전히 벗어버리고 알곡 성도의 신앙을 소유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을 창조하신 뒤 동방의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를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생령 아담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와라는 사랑스런 배필도 주셨지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셨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셨습니다.
1. 인간을 경작하시며 참 자녀로 이끄시는 사랑
하나님께서 주신 최상의 환경 속에서 아담은 무수한 세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에게는 참 자녀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마음껏 사랑을 주셨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지만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죽음과 불행을 겪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몰랐고, 미움을 체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알았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체험이 없으니 진정 마음에서 느끼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령 아담과 하와는 오랜 세월 동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결국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 경작이라는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경작을 통해 눈물, 슬픔, 고통, 사망 등을 체험함으로 장차 천국에 이르러 자신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깨달아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에덴동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국에서 세세토록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더는 에덴동산에 살 수 없었습니다. 천하 만물을 호령하던 아담이 권세를 잃으니 이 땅의 동식물까지도 저주를 받기에 이릅니다. 풍요롭고 아름답던 이 땅도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며,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록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지만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과 전혀 환경이 다른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에덴동산을 떠나 지구에서 살게 될 그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염려하며 걱정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급속도로 죄로 물들어 하나님과 멀어져 갔습니다(롬 1:21~23).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바라며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혹여 세상과 짝하며 잠시 하나님을 멀리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집 나간 자녀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보다 더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계시지요.
2.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사랑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 밑에서 호의호식하며 자란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이나 자신이 누리는 환경이 얼마나 값지고 좋은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여 먼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신데 유산을 달라는 아들은 철없고 버릇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결국 아들은 유산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아픔은 시작됩니다.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나쁜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합니다. 습관처럼 먼 데를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아들 생각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얼마 후 돈이 떨어진 아들은 사람들의 냉대 속에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주는 이가 없을 만큼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제야 아버지의 품이 생각났습니다.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달려가 안고 입을 맞춥니다. 못난 아들이라 나무라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시대, 특정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한 대로 모든 사람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마다 기뻐하시고 반갑게 맞아 주시지요.
이처럼 끝까지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만세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보혈과 생명으로써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다시 찾은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승천하신 후 우리 마음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돌이키도록 이끄십니다. 믿음이 적은 이에게 믿음을 더하고, 소망이 없는 이에게는 천국 소망을 더해 주십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섬세하게 양육하듯이 행여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때에 따라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시지요.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고 천국까지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깊이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강건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이는 영계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과 응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나 갖가지 문제를 해결받았을 때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다.”는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노라.” 하는 것이 진정한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또 근심 걱정이 없고 질병이나 이별, 사망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얼마나 가슴 벅차며 감격하였는지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사랑하신 것이 아니지요.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여인이 젖먹이 자녀를 한시도 잊지 못하는, 그 이상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살피시고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줄 아셨는데도 막지 않으시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놔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사랑의 극치를 보여 준 사건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책자 194~20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죽옷’에 담긴 영적 의미
1. 가죽옷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떠나 척박한 지구에서 살아갈 아담과 하와를 매우 안쓰러워하시며 사랑의 표현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앞으로 변질된 땅에서 받게 될 충격과 몸소 겪어야 할 고통이 어떠함을 아셨기에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몸을 보호하게 하셨던 것이다.
2. 가죽옷은 ‘구원의 끈’을 의미한다.
가죽옷은 하나님과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구원의 끈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놓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사랑의 징표요, 구원의 끈인 가죽 옷이 있었기에 이 땅의 삶을 견디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함으로 결국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