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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11-04 제44과다시 오실 주님 마태복음 24:32~34
읽을말씀 : 마태복음 24:32~34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6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5:20
교육목표 :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공중 강림과 여러 징조를 조명해 봄으로 더욱 깨어 근신하게 한다.


   2천여 년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으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40일 후에는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자 두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합니다(행 1:11). 과연 주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1. 예언대로 성취될 주님의 공중 강림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 등 수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그중 대부분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버리고 깨어 근신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을 바라보니 세상의 헛되고 썩어질 것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장차 공중에 어떻게 강림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잠자는 자’라고 하지요(고전 15:20).
   무덤에 장사 되어 잠자는 자들의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고 공중에서 영혼과 함께 결합하여 부활체가 됩니다. 이렇게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다음에는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성경 곳곳에 나오지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말하면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로 치부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고 해도 주님의 재림은 속히 성취될 일입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기에 신부 단장에 힘쓰며 신랑 되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잘한 성도들은 구원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쭉정이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신부 단장을 하지 않다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날과 그때를 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어 근신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그런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지만, 세상과 짝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도적같이 임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6절에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홍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알고 사람들을 향해 애타게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며 세상을 취하다 결국 홍수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독립은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예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 하리라”라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립니다(마 21:18~19).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힐 때가 아니므로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평소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 강조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약 2:17 ; 마 7:21).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한 대로 그 피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저주로 임했지요(마 27:25).
   A.D. 70년,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하여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마 24:2),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의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등 그들에게 임한 저주와 시련은 참혹하리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1948년 5월 14일이지요.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진 나라가 약 1,900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설 것을 곳곳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8장 8절에는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들어 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했지요.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 이스라엘은 독립한 후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 신부 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 )라고 표현한다.
   
   2.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리새인’이란?
   
   신약 시대 유대 계파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로,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레위기의 청결 의식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은 장로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과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까지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간주했다.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고 겉으로만 거룩한 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과 ‘외식하는 자’라는 엄한 책망을 들었다.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대립하기도 했다(행 23:6~8).
지난 주 설교요약
2022-10-30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9) - 이재록 목사 롬 8:12~16
오늘은 믿음의 3단계에서 볼 수 있는 육신의 생각 셋째 단계인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의 3단계쯤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은 많이 깨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행위적인 분야만큼은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요. 안식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도 합니다. 기도도 하고 각종 예배와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지요. 거짓말, 다툼, 혈기, 음행 등 육체의 일을 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육신의 생각이 다 버려진 것은 아니므로 육신의 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3단계 초입의 경우 누군가가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면 순간적으로 미움이나 판단이 일기도 합니다. 마음에서 탐심이나 간음이 동할 때도 있지요. 그래도 육신의 일이 육체의 일로 나오지 않도록 육신의 생각을 물리칩니다. 육신의 생각을 계속 받아들여 죄를 범하지는 않지요.
   3단계 60퍼센트 이상, 곧 믿음의 반석은 이런 육신의 일도 대부분 버린 상태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이 깨어진 상태이지요. 굳이 어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믿음의 3단계 70, 80, 90퍼센트 이렇게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육신의 생각은 점점 더 흐려집니다. 육신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이 점점 희미해지지요.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서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믿음의 3단계에서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 해도 자기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아직 남아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지만 이 육신의 생각 때문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오랜 세월 동안 굳혀온 생각이나 행동 방식은 금방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런 생각 위에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틀까지 만든 경우, 진리에 담긴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기 어렵지요. 그 틀 안에서, 곧 자기 한계 안에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성령의 음성도 깊이 있게 듣기가 어렵지요. 오랜 세월 신앙생활 했고 일꾼으로 충성해 왔다고 해도 만족스러운 발전이 없습니다. 영적인 열매도 부족한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반드시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 의와 틀이 있으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 셋째 단계는 이처럼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못해서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영의 문턱에 머무르는 성도들이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않는 한은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3단계 99퍼센트까지 믿음이 성장해서 4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수치만 보면 1퍼센트만 이루면 되니까 곧 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질적인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못해서 쉽게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1퍼센트의 육을 영으로 일구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의 예
   
   1) 기질적인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기질이 기 속에 깊이 감춰져 있어서 이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이 기질 자체에서 육신의 생각이 발동되지요.
   예를 들어 내성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늘 조용합니다. 성내거나 다투어서 화평을 깨는 일을 보기 힘들지요. 그래서 특별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연단 받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잘 발견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사람이 온유함을 인정받아 어떤 기관의 머리가 됐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조직의 머리는 물론 온유해야 하지만 담대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성적인 사람은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신감이 적고 소극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할 때도 소극적으로 대처할 때가 있습니다.
   항상 자신이 먼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담대하게 이끌어 줘야 하는데 그런 분야도 취약하지요. 그러면서도 자신은 주변 사람과 걸리는 일도 없고, 또 항상 남을 선하게 바라봐 주므로 자신의 부족함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향적인 기질을 타고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이고 표현력도 좋고 활동적이어서 대인관계도 넓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 앞장서서 충성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 열정은 참으로 중요하고 또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하지만 섬김이 부족합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고 평안하게 해 주는 분야가 취약하지요.
   예를 들어 교회 행사가 있을 때면 봉사할 일이 분야, 분야 많습니다. 이때 자신이 특히 사모하는 분야에 지원자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마음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나 그 분야는 반드시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잘 감당할 자신도 있지요. 그래서 결국 양보하지 않고 그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내가 사모함이 더 승해서 결국 내가 맡게 된 것이다.’라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섬김이 부족한 마음, 자신을 앞세우는 마음,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는 마음은 깨닫지 못하지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기질이 틀이 되어 한 발짝 물러나야 할 때도 ‘영을 사모해야 한다. 침노해야 한다.’ 이런 생각 속에 화평을 이루지 못합니다.
   
   2)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성격의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삶의 굴곡을 많이 겪으면서 부정적이고 어두운 성격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픔과 원망 가운데 세상을 어둡게 보고 살아온 시각이 성격으로 굳은 것입니다. 이 성격이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두운 성격의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때문에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지요.
   예를 들어 죄를 버리기 위해, 응답받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축복을 자기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다른 사람이 먼저 받습니다. 또는 다른 사람이 먼저 큰 직분을 받지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아 초조해지기도 하고 낙심되기도 합니다. 진리와 함께 온전히 기뻐하지를 못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범사에 자기를 스스로 정죄하고 질책합니다. 자기 생각의 틀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보다는 율법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으로 느낍니다.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느끼지요.
   하나님을 사랑해서 기쁘게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징계받을까 봐 두려워서 행합니다. 작은 실수만 해도 심하게 자책하지요. 기도할 기운조차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도 못합니다.
   물론 믿음의 반석에 서면 이 정도까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틀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요.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상대를 그 사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해하고 용납하기보다는 자기 틀에 맞춰 바라봅니다. 상대의 부족함을 보면 답답해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앞섭니다. 믿음이 아직 연약한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기도 하지요.
   이 과정에서 그 영혼에게 하나님을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신앙생활을 힘든 것으로 심어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3) 미세한 비진리까지 온전히 벗지 못해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예를 들어 어떤 일꾼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대로 순종하고자 합니다. 질서상 윗사람이나 동역자가 지적하거나 어떤 권면을 해도 그대로 순종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동시에 불편한 마음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조언이나 권면을 수긍하기는 하지만 순간적으로 불편한 생각이 스칩니다. 99퍼센트 “아멘.” 하고 순종할 마음이어도 1퍼센트라도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영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0.1퍼센트만 있어도 아직 영이 아닌 육이지요. 그런데도 99.9퍼센트는 선한 마음이기에, 또 육신의 생각은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것이기에 나머지 0.1퍼센트를 덮어버립니다. 그러니 미세한 비진리를 벗을 수가 없고 영의 문턱을 넘지 못하지요.
   
   4) 환경에서 오는 충만함에 가려져 있는 육신의 생각
   어떤 사람들은 아직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영육 간에 좋은 환경 속에 있다 보니 항상 영의 생각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 제단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늘 넘칩니다. 성경에만 있을 법한 기사와 표적, 권능 등 영적인 체험도 할 수 있고 각종 성령의 은사를 체험할 수도 있지요. 성령 충만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또 영적인 말씀이 풍성합니다. 이런 제단에서 신앙생활 하며 항상 지킴 받고 때를 따라 축복도 받기 때문에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좋아 보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충만한 것은 좋으나 문제는 정작 중요한 일, 곧 마음 밭 개간에는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외부 환경에서 비롯되는 충만함으로 순간순간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을 덮어 버려서 자신이 늘 영의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지요.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그친다면 욥과 같은 모습을 보일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 마음의 악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와 부와 건강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리자 그때야 마음의 악이 나왔지요.
   어린아이가 부모의 등에 업혀 갈 때는 든든하고 마냥 행복합니다. 그러나 혼자 땅을 디뎌서 걸어보면 자신이 어리고 연약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믿음의 분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지켜 주실 때는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진리로 일궈졌는지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도 하고 육체의 일도 범하지 않으니 믿음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막상 눈앞에 어떤 연단이 오면 충만함이 사라져 버립니다. 마음에 이룬 진리의 분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은 명백한 비진리를 어느 정도 버린 단계에서 주로 나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과정은 거룩함에 더하여 온전함을 이루는 과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요.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30 욥기강해 (27) - 이수진 목사 욥기 12:1~6
오늘은 친구들의 말을 반박하며 하나님을 오해하는 욥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친구들의 말을 비꼬며 반박하는 욥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욥 12:1~2)
   욥의 입장에서는 친구들의 말이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자기들만 옳다며 욥을 훈계하니 욥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뒤집힐 뿐이었지요. 친구들이 못마땅했던 욥은 “너희의 말은 옳고 내 말은 옳지 않으니 나는 사람도 아니요 너희만 사람이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비꼬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 말이 옳다”라고 한 것은 중심에서 상대를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속이 상한 나머지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어버리는 상황입니다. 친구들이 지식과 지혜가 있는 척하며 자신을 가르치고 무시한다고 생각한 욥은 속이 뒤틀리고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몹시 기분 나빠하며 “너희들이 그렇게 지혜가 많으냐? 너희들이 죽으면 지혜도 다 죽겠구나” 하고 빈정거리는 것입니다.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욥 12:3)
   이 말은 “나도 너희처럼 총명하고 영리하다. 내가 너희보다 잘났으면 잘났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런 뜻입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한 말을 난들 모르겠느냐? 내가 바보도 아닌데 주제넘게 나를 질타하느냐…” 이렇게 반문하는 내용이지요.
   서로가 옳다고 끝없이 변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변론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고부간에, 그리고 성도들 간에 어떤 상황에서도 변론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옳다면 상대에게 먼저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고, 이때 상대가 깨우치지 못하면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고, 그래도 깨우치지 못하면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만일 그러지 않고 혈기를 내며 다툰다면 서로 관계가 서먹서먹해지고 원수 맺는 일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 변론하지 말고 은혜롭게 웃으며 잠잠히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하지요. 이렇게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탈 수 없고, 하나님 앞에 담을 쌓는 일도 없습니다.
   
   
   2. 하나님까지 끌어들여 자기주장을 하는 욥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욥 12:4)
   욥은 친구들에게 감정을 내더니 이제는 하나님까지 끌어들입니다. 종종 사람들이 서로 변론하며 다투다가 엉뚱하게 제삼자를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어느 일꾼이, 하나님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며 자기주장을 하는 데 이용합니다. 상대가 내 말을 안 들어주니 나보다 높고 상대가 인정할 만한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변론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이렇다”라고 인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변론하지 말라고 했는데 진리를 위배하여 변론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욥이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욥은 선조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이 능력자이심도 알았지요. 그래서 때를 따라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자녀들을 대신하여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욥이 번제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시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삶에 대하여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롭고 순전한 욥 자신이 번제를 드렸더니 이웃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친구들에게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욥의 말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믿음의 선진들은 이웃에게도 인정받고 칭송을 받았지 결코 조롱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이방인들까지도 경외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애굽의 왕 바로도 모세 선지자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 선지자를 보장해 주셨지요.
   물론 진리를 듣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싫어합니다. 어둠이 빛을 싫어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고 지켜 주시며 결국 높여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함으로 백성들로부터 조롱받는 것 같았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수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예레미야는 생명을 보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바벨론 왕으로부터 선대를 받았습니다.
   설령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한다 해도, 그들의 중심에서는 조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지 말씀 안에서 반듯하게 살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 때문에 조롱거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악한 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으로 판단하는 욥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욥 12:5)
   욥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재앙 속에 처해 있지만 친구들은 염려 근심 없이 평안합니다. 그러니 평안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 재앙을 당한 욥을 멸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친구들의 권면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이는 욥 자신이 실족당한 자이며 재앙 속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욥 자신은 의롭고 순전한데 그러한 자기에게 재앙이 온 것이라는 말이지요.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의 말에는 비진리도 많았지만 상당 부분 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만일 욥이 친구들의 권면을 듣고 순종했다면 재앙은 물러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이 아무리 진리로 설명해도 나만 옳다고 주장하며 계속 무시하니 여전히 재앙 속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욥 12:6)
   종종 진리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선한 사람은 불통하고 오히려 악한 자는 더 형통하고 잘되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을 사랑하시지, 악한 사람을 사랑하실 리가 없습니다.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의인을 형통케 하시는 분이지요(잠 12:2).
   그런데 욥은 강도의 장막이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다고 말하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과 평안을 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의로운 자에게는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말입니까?
   물론 욥이 처음부터 이렇게 악을 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감정이 자꾸 뒤틀리다 보니 점점 악이 더하여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충만하게 달려갑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점점 충만함을 잃고 기도를 쉬게 되지요. 자연히 주변으로부터 진리의 권면이나 훈계 또는 책망을 듣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들을 들어도 스스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본의 아니게 입술에서 진리에 합당치 않은 말들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 신속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원수 마귀 사단이 떠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이 계속하여 감정을 돋우어 마침내는 절제하지 못하는 단계로 몰아갑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면 회개하려고 해도 되지 않으니 욥과 같이 광풍 같은 말들을 뱉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계속 서운하게 하다 보면 결국 지킴받지 못하고 재앙이 임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진리가 나를 비출 때에 신속하게 회개하고 돌이키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욥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나쁜 하나님이 아니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여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때로는 악한 사람들이 잘되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악을 행하는 이가 평안하고 잘 되는 것 같은데…”라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나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차라리 거지가 되어도 하나님 말씀 안에 살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축복이지요. 잠시 살아가는 동안 더 먹고 입고 누리고 즐기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남을 속이며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어찌 마음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항상 불안하고 염려 근심이 떠나지 않지요. 물론 그들도 악이 지나치다 보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홀연히 재앙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7:1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말씀한 대로 항상 진리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잠잠히 진리를 행함으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시고 연단 중에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시는데 욥은 그런 하나님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나의 어려움과 문제가 기도하는 대로 바로바로 응답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를 버리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회개했다 하지만 아직 진리로 변화되지 않았으니 응답의 때가 아닌 것이지요.
   인내와 참 믿음을 갖길 원하시기에 축복의 때를 늦추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더 열심히 찾아 변화되며,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힘과 능력 되시는 주님을, 아버지 하나님을 더욱 높여 드릴 때 응답과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3:17~19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넘쳐나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10월 30일 주일)
* 사회: 임학영 목사
개회찬송 34장 1절
성시교독 27번
찬송 453장
기도 정진영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8:12~16
찬양 놀라워라 주의 사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0)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33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10월 30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조혁희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2:7~22
특송 바이올린 듀오
설교 욥기 강해(28) - 자기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욥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1월 2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정규원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7:1
설교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며
황금란 목사
금요 철야예배 (11월 4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안성헌 목사없음
대표기도 강영식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14:17~15:4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55)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10-30 2022년 10월 다섯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가 불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우르두어(98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은사집회, 성전이전을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가 11월 7일(월) ~ 11월 27일(주일)까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 시작합니다.

● 추수감사절(11월 20일)을 맞이하여 학습문답 및 세례문답을 실시합니다.
문답 내용을 숙지하시고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답 책자는 우림북에서 구입)
※ 일시: 11월 6일(주일) 오후 2시
※ 장소: 학습문답(신학교 3층 예배실), 세례문답(사택 예배실)

● 11월 추천도서는 「일곱교회」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전 직원 조회 및 법정의무교육이 10월 31일(월) 오전 10시에 신학교 3층 예배실에서 있습니다.
※ 대상: 주의 종, 레위직원
※ 교육 후 레위직원들은 성전 대청소가 있습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대전만민교회(담임 박흥영 목사) 창립 31주년 기념예배/ 11월 6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영 목사, 특송: 서승원 집사

순천만민교회 창립 12주년 기념 및 성전이전 감사예배, 명예권사 취임/ 11월 6일(주일) 오후 3시 30분
※ 강사: 이미경 목사, 특송: 김진희 권사
※ 성령충만기도회/ 11월 5일(토) 오후 7시 (인도: 이미경 목사)
※ 교회주소: 순천시 장천동 팔마로 11-5(계영빌딩 3층)


● 교구 소식

중국2교구 모임/ 10월 30일(주일) 오후 5시 사택예배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전상우 집사(21교구, 3가나안) ? 염문영 집사(19교구, 3가나안)/ 11월 5일(토) 오후 3시 40분
구로구 구로동 501 「명품웨딩 프로포즈 3F 글로리홀」
※ 주례: 조혁희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김명권, 허신경 집사 부부(13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자료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