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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01-20 제3과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요한복음 20:30~31
읽을말씀 : 요한복음 20:30~31  |  외울말씀 : 사도행전 2:36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21
교육목표 :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를 깨닫게 한다.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이 외에도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는 등 인간 경작을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는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경작을 위한 섭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무엇일까요? 바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얻기까지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나라마다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법이 있어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만 구원의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1.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놀라운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아직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찌하든 예수님의 허물을 찾아 책잡으려고 했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하나님과 성전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 지역을 관할하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사형 언도를 받고 밤새 심문과 온갖 고초를 겪으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아들을 혹독한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셨을까요? 이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대신 죗값을 치러야 했지요. 성경을 보면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저주받았다는 증거이며,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갈 3:13 ; 히 9:22).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셔야 했고, 하나님께서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심으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영의 세계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습니다(롬 6:23). 이 법에 따라 죄가 있는 사람은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놀라운 지혜 가운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했고, 골로새서 1장 27절에는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은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공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아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며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과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승천을 앞두고는 성령이 임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지금도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시며 천국 집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때가 되면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2천여 년 전에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셨던 초라한 모습과는 달리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 속에 장엄하고 영광스럽게 오시지요(살전 4:16). 그리고 신부 단장에 힘쓴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나 7년간 혼인 잔치를 치릅니다. 그 후 주님과 함께 지상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백보좌 대심판을 거쳐 영원한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아가게 됩니다.
   
   
   3.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여 주셨습니다(요 20:30~31). 부활하신 후에도 예루살렘과 갈릴리로 오가며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의심 많은 도마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마음 중심에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모든 의심을 버리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였지요. 결국 도마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순교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목도한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입니다. 도마의 경우만 봐도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에는 참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로서 사역하실 때는 단번에 영적인 고백을 하며 참믿음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와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말씀합니다. 즉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의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란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구세주’라는 뜻이며 완료형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가 이름이라면 ‘그리스도’는 직함과 같아서 어떤 자격을 갖출 때 주어지는 공식적인 호칭입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훌륭한 의사를 꿈꾼다고 해서 의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에 통과하고 정해진 코스를 밟은 후에야 의사라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얻기까지 특별한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탄생부터 30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의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가 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그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얻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와 ‘그리스도’라는 두 이름 사이에는 ‘구원할 자’와 ‘구원한 자’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 사건 전에는 ‘예수’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옳지만, 부활 사건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주 예수, 주님’이라는 호칭을 써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부활, 승천 사건 이후에는 ‘예수’라는 호칭에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아들을 혹독한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셨을까요?
   
   2. 예수와 그리스도의 의미를 써 보세요.
   ① ‘예수’란?
   ② ‘그리스도’란?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자가 처형법
   
   십자가 처형법은 너무 가혹하고 치욕적이어서 로마 사람들에게는 행하지 않았다. 유대인들도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여겼다(신 21:22~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아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과 수치를 당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01-15 응답과 축복의 하나님(5) -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자 - 이재록 목사 시편 141:3
응답과 축복을 더디게 하는 입술의 말을 범사에 주의하기 위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응답과 축복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가운데 주어집니다. 곧 여러분이 믿음으로 쌓은 분량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의 선에 이를 때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소원하는 내용에 따라서 조금만 쌓아도 응답되는 것이 있고 많이 쌓아야 응답되는 것도 있지요.
   물론 다시금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생겨서 응답도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행함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도 입술의 말을 주의하지 않아 응답과 축복을 더디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합당치 않은 입술의 말로 인해 믿음으로 쌓은 것이 헐리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믿음으로 쌓아가야 하는데 쌓았다, 헐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간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자’라는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생명과 능력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응답과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자
   
   ‘파수꾼’이란,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한눈팔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운다면 항상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온다.’ 했습니다(마 15:18). 마태복음 12장 35절에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여러분이 온 영으로 들어오면 마음에 악이 전혀 없고 선만 가득하기 때문에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절제의 능력도 온전히 임해 있기에 마음에서 자동으로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조절되지요. 때와 장소, 그리고 말을 듣는 상대에 맞게 가장 적절한 말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아직 마음에 악이 남아 있으므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절제 없이 하게 되면 오히려 은혜가 되지 않거나 덕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 편에서는 선한 의도로 말했어도 상대는 선으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온 영으로 들어올 때까지는 입 앞에 꼭 파수꾼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2.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는 방법
   
   첫째, 범사에 무익한 말은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말하는 자신은 물론 듣는 상대에게도 무익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비진리의 말이 무익하지만, 이 시간 예로 드는 것이라도 명심하고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거짓말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에게도 해가 됩니다. 거짓말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니 상대에게 해를 끼치게 되지요. 상대가 거짓말을 사실로 믿으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데, 거짓말을 하는 자체가 육체의 일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숨기려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동문서답’도 무익한 말입니다. 이는 ‘물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대답’을 가리키지요. 동문서답을 하면 질문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답을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합니다. 질문에 맞는 답을 얻어야 그다음 대화를 진행할 수가 있지요.
   동문서답은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줄일 수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 속에서 들으므로 동문서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문서답에는 거짓말도 있고, 남의 탓을 하는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하나님 앞에 더 합당치 않지요.
   농담이나 세상의 유행어도 성도들에게는 무익한 말입니다. 농담을 많이 하는 사람은 가벼워 보이고 신뢰가 가지 않으므로 비밀을 나누거나 중요한 일을 맡기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농담을 즐겨하는 사람은 영으로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농담에는 사실을 부풀린 과장된 말과 전혀 이치에 안 맞는 허탄한 말들도 있지요. 이런 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들입니다.
   세상의 유행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유행어에는 세상 풍조가 담겨있어서 그런 말을 사용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풍조에 물들게 되지요. 설령 어떤 악의가 담기지 않은 유행어라도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성도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가 무익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말씀하셨지요. 물론 무익한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자복하고 회개한 것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무심결에 내뱉고서 자신도 잊어버린 무익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도님들은 이제부터라도 무익한 말을 내지 않도록 범사에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잠 10:19). 어떤 말을 하려고 할 때 이 말이 과연 ‘나와 상대에게 유익한가?’를 꼭 생각해 보는 습관을 지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유익한 말은 어떤 말일까요?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이 유익한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말, 믿음을 심어주는 말, 생명을 살리는 말도 영적으로 유익한 말이지요. 특별히 성전 안에서는 항상 서로에게 은혜를 끼치며, 믿음을 심어 주는 영적인 대화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분수에 넘치는 말은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말한 ‘분수(分數)’란,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뜻합니다. 따라서 교만함으로 마음이 높아진 경우에 분수에 넘치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겸손하게 마음이 낮아진 사람에게서는 자기 분수에 넘치는 말이 나오지 않지요.
   분수에 넘치는 말의 예로는 판단하는 말, 정죄하는 말을 들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비방하는 말도 마찬가지이지요.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할 권한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있지요(약 4:11~1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평, 불만, 원망의 말을 낸다면 분수에 넘치는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영원히 타는 지옥 불에 떨어질 뻔했는데 구원받아 아름다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왔다 해서 환경을 탓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한다면 그 크신 구속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옥 불에서 구원받은 큰 은혜를 입었음을 아는 자, 곧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직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떤 일을 이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겸손하여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은 어떤 일을 맡겨도 감사하게 받으며 순종합니다. 반면 불평의 말, 감사치 못하는 말을 한다면 이는 분수에 넘치는 말이지요.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당시 사회는 처녀가 잉태하면 간음한 것으로 정죄 받아서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런데도 동정녀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귀신 들린 딸의 문제를 예수님께 해결 받은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시고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셨지요. 즉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요, 이방인인 이 여인을 개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실망하며 포기하거나 업신여김당했다고 분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답했지요.
   자기 문제를 해결해 주실 예수님 앞에 자신을 철저히 낮추며 변함없는 믿음으로 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절실했던 딸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았지요. 이런 예들을 통해 여러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과 축복의 길을 깨달으며 찾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려워 보입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요.” 이런 말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잘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쓰는 습관을 들여 보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말을 입술로 내면 듣는 다른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흐리고 어둡게 만들지요. 잘해 보고자 하는 의욕을 뺏어가며 어깨도 축 처지게 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말은 분위기를 맑고 밝게 만들지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느끼게 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줍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습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하면 안 되던 일도 잘될 수 있지요. 이런 예는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눈앞의 현실을 보거나 부정적인 말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나아갔지요(삼상 17:45~47). 그리고 물맷돌 하나를 던졌는데 그것이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다윗의 믿음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는 너무 어렵고 힘든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고백으로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출애굽 1세대 중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정탐꾼 중 열 명이 그러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차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온 정탐꾼 중 열 명이 부정적인 고백을 늘어놓았지요(민 13:32~33). 이러한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는 금세 백성 대부분에게 악영향을 끼칩니다. 절망적이고 암울한 생각을 갖게 하고 이어 탄식과 불평과 원망을 하게 하지요.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민 14:7~9). 성도님들은 현실의 문제가 어렵고 힘들수록 ‘여호수아와 갈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된다. 우리와 함께하시면 된다.” 믿음으로 긍정하는 고백을 하므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13장 2절에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린다.’ 했습니다. 이제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더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가 응답과 축복을 받아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1-15 마음 - 이수진 목사 로마서 13:10
오늘은 신년 기도제목 세 번째인 <마음>에 관한 말씀을 통해 대성전에 담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이뤄야 할 바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닮아 거룩하고 온전한 마음이 됨에 따라 실상으로 드러나리라 약속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대성전이지요.
   대성전에 담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이뤄야 할 바를 깨닫고 대성전 건축을 함께 이루기에 더욱 합당한 모든 성도님들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1. 참 자녀를 얻기 위하여 인간 경작을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억지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마음 깊이까지도 헤아림으로써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를 얻기 위하여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 불순종의 죄를 지으면서부터 인류에게는 죄가 들어왔고, 아담의 후손들도 걷잡을 수 없이 급속하게 죄에 물들게 되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9대째인 노아 시대에 벌써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물의 심판으로 지면의 모든 사람을 쓸어버리고 인간 경작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새롭게 시작된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원수 마귀 사단은 여전히 사람들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며 사망으로 이끌어 들였지요.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이 온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히 신뢰하는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형성하셨지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모델로 삼아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나타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독생자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시고 십자가 섭리를 이루어 구세주가 되게 하셨지요.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피를 흘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으며, 나무에 달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여 계실 필요가 없으므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사망 권세를 완전히 깨트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마음에 믿으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마음의 할례를 하고 성결되어 참 자녀로 나올 수 있도록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과정 중에 섭리해 놓으신 십자가 구원의 도는 이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고전 1:18). 그러나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말씀했지요.
   이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완성된 십자가 구원의 도를 통해 무수한 영혼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결되어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가 완성된 후에도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향락에 빠지게 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상과 이론으로 인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해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는 죄를 지으면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면서 믿음에서 떠나게 해왔지요.
   그러나 아무리 악이 우세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선이 승리했으며,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빛 앞에서는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참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목적은 오늘날까지 꾸준히 성취되어 왔습니다.
   
   
   2. 대성전은 인간 경작의 승리를 나타내는 상징물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 6천 년의 기한이 다 차가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승리하셨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물을 세우기 원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에서 승리하셨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되 그 증거로 무에서 유의 창조 역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 중심에서부터 아버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계명을 지켜 성결을 이룸으로 참마음을 가진 자녀들을 얻으셨다는 것이지요. 참마음이 됐다는 말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마음의 성전을 온전히 이뤘다는 말과 같습니다.
   솔로몬의 성전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있었기에 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심히도 사랑하여 이웃 나라에서까지 가장 좋은 재료들을 모아 성전 건축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이라도 그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그의 손으로 성전 짓기를 허락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인 솔로몬 대에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물며 대성전은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에서 승리하셨음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요.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육의 공간에 드러내는 최고의 성전인데, 과연 어떠한 사람이 지을 수 있겠는지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졌으며, 성결되어 온전한 마음의 성전을 이룬 하나님의 참 자녀들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대성전은 천국 최고의 처소인 새 예루살렘 성의 모형입니다. 그러니 대성전을 이룰 교회라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이가 많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3. 대성전 건축의 축복을 앞당기려면
   
   우리가 이룰 대성전은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공간을 이끌어 오신 하나님 마음의 결정체입니다. 이러한 대성전 건축의 사명을 바로 우리 제단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중차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기에 우리에게 성결의 복음을 주셔서 자신의 마음을 비춰봄으로 깨우치고 변화되게 하셨지요. 또한 크고 놀라운 권능을 보이심으로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성전 건축에 합당한 참 자녀가 되기까지는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전지전능하시다 해도 인간 경작은 온전한 공의 가운데 이뤄져야 하기에 연단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지요.
   연단을 받는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곤고하고 힘이 들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심은 합당한 자녀가 되게 하시려는 깊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밝히 깨닫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1:6~7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여러 가지 시험도 허락하셨고 불같은 믿음의 시련도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자와 하나 되어 믿음을 굳게 지키고 성결의 복음을 잘 양식 삼은 성도들은 어느덧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며 더욱 아름답게 변화되고자 하는 자녀들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음 중심에서 성결을 사모하고 영의 사람이 되기를 사모하는 성도님들이 많이 나왔지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마음이 되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속에 내재된 악의 모양도 버리리라’ 다짐하며, 악을 발견하면 지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고 변화되어 하나님 형상을 온전히 되찾고 주님 마음을 닮을 때 대성전 건축을 이루기 위한 우리 편에서의 준비는 마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대성전 건축을 위한 재정 마련과 대지 구입, 설계와 공사 등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역사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 더 신속히 앞당겨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의 성전을 깨끗게 하며, 성령의 열매들로 아름답게 채워야 합니다. 또한 대성전의 언약을 잊지 말고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대성전 건축의 축복은 우리의 상급과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대성전과 함께 우리가 바라고 기도해야 할 것은, 가나안 성전 건축과 성전 이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법적인 허락 하에 아름다운 가나안 성전을 이룰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전 이전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 기도, 찬양을 기뻐하시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향이 하늘 보좌에까지 상달되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마음과 모습이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사랑의 향이 될 때 신속히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앞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와 기도, 찬양이 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의 예배, 기도, 찬양, 봉사, 헌신 등은 세계 많은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의 본이 되어 왔습니다. 이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사모하는 많은 영혼들과 목회자, 교회들이 이 제단에 방문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변화된 아름다운 성도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을 이루어 드리며 더 나아가 대성전 건축의 사명을 이루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많은 성도들의 기쁨과 행복이 되는 성전을 이루어야겠습니다.
   우리가 대성전을 이루었다면 이는 숱한 믿음의 시련을 잘 통과하고 정금 같은 믿음을 이루며, 마음의 성전도 온전히 이룬 것이니 우리에게 임할 은혜와 감동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한 장차 천국에 이르러서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대성전 건축에 합당한 자녀로 나온 여러분에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해 주시지요. 이러한 축복은 대성전에 담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에게 임한다는 것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더욱 온전한 마음의 성전을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 기뻐하시는 대성전 건축에 합당한 모든 성도들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1월 15일 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57장 1절
성시교독 24번
찬송 539장
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이사야 59:1~2
찬양 영광의 소망 되신 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치료와 응답의 공의(1)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74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1월 15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빈금선 명예 권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4:11~12
특송 리베하모니
설교 재창조의 권능 100%(신년 기도제목④)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월 18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문신현 목사
대표기도 황미경 전도사
성경봉독 빌립보서 2:6~8
설교 범사가 잘 되는 가정은
박형렬 목사
금요 철야예배 (1월 20일 금요일 오후 11시)
금주 금요 철야예배는 없습니다.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01-15 2023년 1월 셋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천국(상)」 영어, 「십자가의 도」 러시아어, 「사랑은 율법의 완성」 불어, 러시아어가 오디오북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포르투갈어(124호), 말레이시아어(17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2023년 제1회 정기 원로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5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1월 은사집회에 치료하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은사집회를 인도해 주신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은사집회를 통해 치료받거나 응답받으신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 또는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에 간증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3년 7가지 기도제목, 은사집회를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를 인도해 주신 기도원 원장님께 감사드리며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작정 다니엘 철야 마지막 날로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준비찬양은 오후 8시 50분부터입니다.

● 설 연휴 관계로 금주(20일) 금요 철야예배는 없습니다.

● 1월 20일(금)~24일(화)까지 다니엘철야가 녹화방송으로 있으니 성도님들께서는 각 처소에서 자유롭게 참여하시면 됩니다. (이 기간 중 다니엘철야는 각 성전과 예배실에서 운영하지 않습니다.)

● 2022년도 소득공제용 「기부금 확인서」는 교회 홈페이지 및 모바일로 발급이 가능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구 소식

중국대교구 일꾼 월례회/ 1월 15일(주일) 오후 5시 3층 성전 (인도: 황금란 대교구장)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1-21
[주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살후 3:13]
2024-01-22
[월요일]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5]
2024-01-23
[화요일]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6]
2024-01-24
[수요일]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2024-01-25
[목요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잠 10:20]
2024-01-26
[금요일]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2]
2024-01-27
[토요일]
만일 네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