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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천국 (2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눅 23:43 등록일자 2021.01.03
    지난 시간에는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첫 번째 경우를 말씀드렸고, 오늘은 두 번째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구원’

    이사야 43장 11절에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구원할 만한 영혼이면 구원하시고, 구원할 만한 영혼이 아니면 구원하지 않으시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공의와 사랑을 이룬 분이시므로 그 판단에는 조금의 실수도, 틀림도 없습니다. 오히려 공의만으로는 구원받기 어려운 영혼을 크신 사랑으로 구원하시는가 하면, 공의로는 천국의 낮은 처소로 보낼 영혼도 사랑으로 더 좋은 처소로 보내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하나님을 정녕 ‘아버지’라 부른다면 주어진 날들 동안 더욱 마음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과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경우

    2) 믿음의 1단계에서 성장 없이 머물러 있다가 구원받은 경우
    낙원이 영원한 처소로 주어지는 두 번째 경우는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다 해도 믿음의 1단계에서 성장 없이 머물러 있다가 구원받은 경우입니다. 초신자라면 믿음이 성장할 시간이 짧았다는 이유라도 댈 수 있지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아 계속 믿음의 1단계에 있다가 낙원에 들어갔다면 이는 더욱 부끄러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예
    성경상의 인물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에 해당되는데, 왜 그러한지 그의 신앙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3장 1절에 “사라가 일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했으니 175세를 살았던 아브라함에 비하면 사라는 비교적 일찍 삶을 마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 경작의 역사에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하나의 표본으로 세워질 만큼 온전했던 아브라함의 아내라면, 사라 역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가 돼 있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라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마음에서 악의 모양을 벗어내지 못했지요. 따라서 영적인 믿음이라기보다는 아브라함 곁에서 늘 보고 들어서 지식적으로 아는 육적인 믿음에 가까웠습니다.
    육적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지만 영으로는 아브라함과 너무나 큰 차이가 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반자로서 여러 연단을 함께 받았던 사라를 사랑하여 어찌하든 좋은 천국에 함께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23장 2절에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내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어떤 곳이며, 사라가 천국의 어떤 처소에 들어갈 것도 알았기에 그녀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면 왜 사라의 믿음으로는 낙원밖에 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이삭에 대한 언약을 주셨을 때, 사라는 그 말씀을 듣고 믿지 못하여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창 18장).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보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음에도 마음에서 온전히 믿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며,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불순종할 수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갈 때도 이에 대해 사라에게 알려 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말해 주어도 사라는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뜻을 좇기보다는 자기 보기에 좋은 편을 택했던 일이 또 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방법대로 후손을 얻기 위해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었지요.
    그런데 하갈이 아들을 낳자 사라는 시기 질투하여 결국 하갈과 그의 아들을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사라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것이 아니라 사람 편에서 보기에 좋은 방법을 취했던 것입니다.
    사라가 하갈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면, 그 마음에 얼마나 악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기 질투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려는 마음,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멀리하고 심지어 상대는 어떻게 되든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하려는 마음 등 여러 악의 모양을 발견할 수 있지요.

    당시는 구약 시대로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에 쉽게 마음에 할례를 할 수 있는 때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통해 선과 사랑이 무엇인지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라는 단지 악을 마음에 담아 두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권세와 위치를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단계로 보자면 믿음의 2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지요.
    믿음의 2단계는 비록 육체의 일을 다 벗지 못했다 해도, 진리가 무엇인지 들어서 알기 때문에 육체의 일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며, 조금씩이나마 변화되어 가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악의 모양을 마음에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겉으로도 드러내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사라는 아브라함이라는 훌륭한 신앙의 모델이 곁에 있었음에도 그 마음과 행함이 변화되지 못했으니 하나님께서 과연 믿음의 몇 단계로 보시겠습니까? 사라는 분명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았고,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자임에도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 드릴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눅 12:47~48). 비록 구약 시대이지만 사라는 상대적으로 매우 좋은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육에 거하며 마음과 행함이 변화되지 않았으니 낙원 이상의 좋은 천국은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겨우 구원받아 낙원에 갔다는 것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지만,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 아브라함의 아내였다고 해서 더 봐주는 것도 없고, 오히려 아브라함의 아내였음에도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내세에 대해 잘 아는 아브라함은 평소에 사라에게 많은 교훈도 주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라가 그것을 받지 못하고 흘려버렸으므로 죽은 후까지도 아브라함의 마음을 심히 아프고 애통하게 했습니다.

    이미 소천한 본 교회 성도의 예
    먼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뒤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성도의 경우입니다. 이분은 군대 중령으로서 인생의 뚜렷한 목표가 있어 성실하게 그 목표를 향해 살아갔지요. 군대에서는 부하들에게 위엄과 덕망 있는 상관으로서 인정받기 원했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에게 자신이 이뤄온 삶의 열매들을 남겨 주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문제들로 인해 좌절과 번민 속에 고통받았고 불치병까지 걸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제 간증 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를 읽고 우리 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각종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나름대로 하나님께 심음도 있었지요. 그런데 왜 낙원에 이르렀을까요?
    이분은 죽을병에 걸려 의지할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교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권능의 역사를 보고 들어 ‘나도 이곳에 있으면 혹여 나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서 이런저런 행함을 보였던 것입니다.
    즉 믿음의 행함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하니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행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심고 행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질병을 치료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마음에서 확연히 믿고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응답받았다고 하니 자신도 그대로 따라 해 본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여러 분야가 치료의 응답을 받기에는 부족했기에 결국 치료받지 못하고 소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이 인생의 마지막 기간에라도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자 했던 것을, 구원받을 만한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낙원을 영원한 처소로 받았지요. 이 땅에 사는 동안 온갖 슬픔과 아픔을 겪으며 중한 질병으로 고통당하다가 낙원에 이르게 되니 얼마나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겠습니까.
    비록 낙원이라 할지라도 천국이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평안과 행복은 육의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도 마음 안의 육을 버리고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천국의 행복과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육의 속성이 힘들고 슬프게 하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여 속상해하거나, 부와 명예를 더 갖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혹여 빼앗길까 불안 초조해하는 것도 육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기보다는 사람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시기 질투도 나오는 것이지요. 이런 육의 마음을 다 벗어버리면 진리와 함께 기뻐할 수 있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기쁘고 좋으니 내어 주고 또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육의 마음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얼마나 부질없고 무익한지 깨우쳐서 미련 없이 육의 마음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자녀들과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01-06 오후 7:26:11 Posted
    2021-01-08 오전 10:04:0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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