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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천국 (2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전 9:25 등록일자 2021.01.24
    오늘은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영혼의 영적인 상태와, 천국 1천층에 들어가는 성도의 실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천국 1천층이 처소로 주어지는 ‘믿음의 2단계’

    천국의 1천층은 믿음의 2단계 곧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입니다. 말로만이 아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변화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열 번 혈기를 냈던 사람이 다음 달에는 여덟 번으로 줄고, 그 다음 달에는 네 번, 두 번으로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겉으로는 혈기를 내지 않았다면 믿음의 3단계에 입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혈기 한 가지를 내지 않았다고 믿음의 3단계라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어 행하는 모든 비진리 중 ‘혈기’를 한 예로 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온전한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도 드려야 함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최소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마치 배를 타고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같이 힘이 듭니다. 그렇다 하여 노 젓기를 멈춘다면 배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지요.
    육체의 일을 끊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퇴보하기 마련입니다. 믿음의 1단계로 떨어지거나 다시 세상으로 완전히 빠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힘들게 느껴져도 결코 죄와의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최종 목적지인 새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때로는 눈보라와 같은 시련이나,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는 듯한 암담한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전진해 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힘든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일어서는 여러분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말씀하신 대로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힘들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뛰어갈 수도 있게 해 주실 수 있음을 중심에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의 2단계에서 정체되는 이유

    신앙생활은 등산처럼 정상을 향해 올라야 하는데,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믿음의 2단계에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등산을 하다가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힘들어 산 어귀에 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정상을 향해 가는 근본 목적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고 머물러 있는 산 어귀에서 힘들지 않은 다른 일을 찾아서 하지요.
    이는 신앙 안에서 죄를 벗어버리는 싸움이 힘들기 때문에 이 일은 뒷전에 두고 다른 일에 마음을 쏟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각종 봉사를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거나 ‘찬양이나 무용 등 예능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는 유일한 길은 비진리를 벗어내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비진리를 벗고 참마음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과 온전한 믿음을 주십니다.
    따라서 각종 충성 봉사를 할 때도 반드시 마음의 할례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물론 아무런 충성, 봉사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성결되기 쉽습니다. 각종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자신과 다른 성품,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부딪치고 몰랐던 마음의 죄성을 발견하기 때문이지요.
    이때 발견된 죄성들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은 약해지고, 진리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강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많은 기도와 금식을 하는 분들 중에서도 믿음의 2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된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되 정녕 믿음과 사랑으로 성령의 주관하심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의 할례도 합니다. 그런데 기도 자체만을 즐기며 머리로 아는 내용을 떠올려 기도한다면 마음의 할례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금식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한 사람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습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기 위해 금식하는 사람 중에는 금식 자체만으로 죄가 벗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만족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철저히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금식할 때의 고통과 힘듦을 통해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라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지요.
    금식이나 기도 자체로 마음의 할례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금식과 기도를 통해 마음을 다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림으로써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끌어내리지 못한 금식과 기도라면 아무리 오랜 시간 많은 양을 한다 해도 영으로는 더디 들어갑니다.
    기도, 봉사, 찬양, 전도, 심방 등 그 어떤 형태의 사명 감당도 근본 목적은 마음의 할례를 통한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나 봉사, 찬양 등 사명 자체에만 주력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충성하는 일꾼인데도 실상은 믿음의 2단계에서 더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3. 믿음의 2단계에서 정체되어 1천층에 들어간 장로님

    이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과 생각이 있으므로 사업을 하면서도 공의와 정도를 좇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분야도 많이 있었습니다. 말에 진실이 부족하고 불순종한 것이 많았으며 사람들과도 걸림으로 자신의 믿음으로는 겨우 구원받아 낙원에 가면 족한 상태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일도 잘 지키고, 다니엘 철야도 항상 했으며 맡은 여러 사명에 충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혈기를 내고, 부딪침이 있었으며, 하나님 말씀에 많은 불순종을 낳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이런 점들을 다 체크하셨습니다.
    연말에 일꾼을 선출할 때 이분이 머리로 뽑혔습니다. 성도들이 이분을 머리로 뽑은 것은, 이분에게 붙좇음이 승한 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면 돈을 벌어서 힘이 될까. 융통금도 갚고, 성전도 지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변함없이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진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육적인 지혜를 동원하여 사업을 하니 문제가 생기고 어려워졌지요. 돈을 빌려 약속대로 갚지 못한 일들이 빈번했고 수년 동안 쌓였습니다. 육적인 상황들이 어려워지자 영적인 충만함이 떨어지며 충성해서 쌓아 놓은 상급도 잃게 되었지요. 만일 그대로 두면 낙원으로 떨어지게 되고 구원받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 속에 1천층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상태에서 그 영혼을 데려가셨던 것입니다.


    4.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나 영으로 일구지 못한 권사님

    이분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한다 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의 마음으로 일구지는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충성한다 했지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충성도 되지 않았지요. 그렇다고 크게 육체의 일을 행한 것도 아닌데 왜 1천층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신앙생활을 10년, 20년을 했을지라도 비진리를 버리지 않고 담아두고 있으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서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의 마음이 되어야 정확하게 그만큼씩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은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마음을 영으로 일군 분량이 하나님의 공의로만 볼 때는 1천층도 바라보기 힘든 상태였으나 하나님의 사랑이 결부되어 1천층에 가게 되었습니다.
    꼭 이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나는 어른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버리기 힘든 비진리의 마음이 바로 ‘서운함’입니다. 서운한 마음은 주로 자신이 한 만큼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또한 상대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틈탑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를 낳아 키우고 장성하기까지 많은 수고와 공을 들이는데 자녀들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대우해 주지 않을 때 금세 서운함이 틈타서 삐지거나 원망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키웠는데,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에서도 상호 간에 서운한 마음이 틈타 다툼과 언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관은 부하 직원이 잘 섬겨 주지 않을 때, 부하 직원은 상관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서운해합니다. 이런 서운한 감정들이 한 번, 두 번 쌓이다 보면 불평이 나오기도 하고, 상대의 작은 약점을 크게 부풀려 말하는 등 여러 가지 악의 모양으로 파생되어 나오기도 합니다. 자신이 섬김 받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령, 상대가 도리나 예의범절에 어긋나게 행했을 때 큰 소리로 엄히 꾸짖습니다. 이때 서운함과 감정을 품고 말하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자신도 알 수 있고 주위 사람들도 어느 정도 느끼지요.
    그런데 자기적인 의와 틀이 너무 강할 때는 “내가 서운해서, 섬김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 한다”며 참지 못하고 거칠고 강한 말을 내뱉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신 그대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욱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며 말씀과 기도로 마음의 거룩함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01-27 오후 8:11:31 Posted
    2021-01-29 오후 1:19:2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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