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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엇보다도 값진 천국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 25:14-30 등록일자 2010.01.10
오늘은 주의 종 헌신 예배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의 삶을 드리고자 자원하신 분들이기에 하나님께서도 특별한 사랑과 권세를 부어 주십니다. 하물며 주의 종으로서 받게 될 천국의 영광과 상급은 더 말로 할 수가 없지요. 제3 도약기를 맞아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무엇보다 값진 천국을 알고 소중히 여겨야

마태복음 13장 45~46절에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했습니다. 천국의 영광을 살 수 있다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도 미련 없이 팔아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긴다면 이 땅에서 아무리 고된 시간을 보낸다 해도 기쁨으로 모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 소망이 없으므로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매 순간을 버겁게 지내는 경우도 있지요.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까지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소망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경작받는 인생들 중에 가장 복된 길을 택했다는 자부심과 확신이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장 귀한 천국,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반드시 헌신자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천국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주의 종이라면

1) 마음에 하나님만 가득해야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만 가득하다는 것은 곧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하며 하나님과 주님, 또한 섬기는 목자와 양 떼만이 여러분 안에 있어야 하지요. 주의 종이 아닌 양 떼 중에서도 그 마음에 하나님만 가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므로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며 영으로 온 영으로 열심히 들어오고 있지요. 하물며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로 결단한 주의 종이라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내 안에는 하나님만으로 가득하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여 27년이 넘도록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어디를 가는 것도 제 마음대로 할 자유가 없었습니다. 때때로 불같은 시험이 올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라 하시면 아무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여 그대로 갔습니다.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몸이 견디지 못하여 많은 피를 흘리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안식년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는 순종만 하고 인생들에게는 선으로만 대했는데도 수많은 배신과 애매한 고난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결코 힘들다고 불평한 적도 없고 주의 종으로서 걸어온 길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를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날마다 감사하며 이길 수 있었지요. 주님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다 드려도 부족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 순종과 충성에 대해 어떤 상급을 주실지, 천국의 영광을 손에 만진 듯 알려 주셨으니 잠시의 고난이 힘들지 않은 것이구요.

여러분도 주의 종으로 헌신하기까지는 나름대로 특별한 은혜의 순간들을 체험해 오셨을 줄로 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이렇게 하나님만으로 마음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만으로 마음을 채우라 하면, 어떤 사람은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머리로만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그 은혜를 갚고자 노력하는 행함을 열심히 쌓아 나가야 하지요.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편안하기 원하며 섬김 받기 원하는 것, 내 것, 내 가족, 내 의와 틀,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육을 버리면 버릴수록 그 육을 버린 자리는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또한 범사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봐야 합니다. ‘이제 내가 믿음이 있으니, 이 정도는 누리고 취해도 괜찮겠지’ 하며 예전에 버렸던 육의 것을 조금씩 용납하거나 ‘어느 쪽을 취할까’, 선택하는 순간에 내게 유익되는 것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을 택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근신하고 절제하는 쪽을 택할 수 있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지요. 이런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고 내 안에 하나님만, 주님만 목자와 양 떼만 있나이다” 고백할 수 있는 주의 종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그토록 여러분이 사모하는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받으며, 더 나아가 권능을 행하는 종으로서 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말이 온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 같은 눈동자로 매 순간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어떤 일로 마음에 요동하는 한순간도, 육의 감정이 담긴 눈빛 하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지요. 이런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과연 여러분의 입술이 어떠해야 할까요? 주의 종답게 항상 거룩한 입술이어야 하지요. 사랑과 덕의 말로 영혼을 살리는 입술이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입술이어야 합니다. 믿음 없는 의심의 말이나 불평불만, 무익한 말, 희롱하는 말은 결코 없어야 하구요. 나는 진리로 분별한다 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거나 헛된 소문을 전하는 입술이 되어서도 안 되지요. 어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이 계절에는 어디에 무슨 음식이 맛있고, 무엇이 몸에 좋고, 어디에 좋은 옷이 싸게 팔고, 이런 대화들이 빈번하게 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것도 분명, 주의 종으로서 은혜롭다 할 수는 없지요.

그런데 이 시간 특별히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주의 종으로서 양 떼를 실족시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방을 할 때도 믿음의 분량에 맞게, 힘과 소망을 주며 생명을 공급해 줘야지, 찌르고 정죄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런데 종종 교구나 선교회에서 보면, 믿음이 연약한 성도에게 강한 말로 책망하여 실족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지적하고 무안을 주어 상처받게 하는 경우도 있구요. 자기가 맡은 양 떼의 허물이나 단점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드러내어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일꾼들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자기 의와 틀을 강요함으로 오히려 사명 감당할 힘을 잃게 만들기도 하지요. 상대의 믿음이나 여러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뜻대로 순종하도록 강요하여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대로 순종하지 않는 일꾼이나 양 떼가 있으면 그를 대할 때 마음을 닫아버리고 표정도 싸늘하게 굳힙니다. 자기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양 떼에게 혈기를 내듯 책망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걸리고 힘들어 하는 양 떼가 있으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정죄하지요. 교만해서 주의 종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악하여 스스로 실족한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을 들으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바로 그 영혼은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사랑하는 양 떼입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주어 살리신 것처럼 여러분도 자기 생명을 다해 지키며 사랑과 헌신으로 돌봐야 하는 양 떼이지요. 마가복음 9장 42절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했습니다. 물론 양 떼가 사망으로 가는데도 책망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종이라면 당연히 생명과 사망의 길을 분별해 줘야 하지요. 또 일꾼들이나 성도들에게 더 잘하도록 권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5장 3절에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했지요.

주의 종이 자신의 의와 자신의 믿음 속에서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양 떼가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 떼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낌으로 감동함으로 깨우칠 수 있게 해 줘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 먼저는 여러분 자신 안에 천국의 소망과 주님의 사랑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을 통해 양 떼가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고 기쁨과 감사로 진리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명심하여, 이제 여러분의 입에는 상처 주는 말, 찌르는 말이 아니라 덕과 사랑으로 생명을 살리는 말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영육 간에 간음이 없어야 합니다.
육적인 간음이 무엇이고 영적인 간음이 무엇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헌신자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5절에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신부로서 단장하는 성도들은 거룩하고 순결하여 흠도 점도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육을 취하며 하나님을 서운케 해서는 안 되지요. 신랑 되신 주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세상 정욕을 더 사랑할 때 이것이 음란한 것이요 영적인 간음입니다. 더구나 주의 종들은,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맡겨진 양 떼들을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중매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종에게는 더더욱 영적인 간음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고 하물며 육적인 간음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주의 종이라면 행위적인 간음만 아니라 마음의 죄성까지도 온전히 뽑아내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2절에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했습니다. 양 떼나 동역자를 이성으로 대해서는 안 되며 일절 깨끗함으로, 오직 소중한 영혼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하지요. 눈빛과 마음, 언어, 행실과 몸가짐, 옷차림 등이 다 온전하여 육적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성에게 희롱하는 듯한 말을 건네거나 몸을 습관적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자신이 그러는 줄 모르는 경우도 있지요. “이것은 음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편하게 대한 것 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거룩하면 행실도 당연히 거룩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변명한다 해도 하나님의 눈을 가릴 수는 없지요.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심판하실 때는 유리 바다에 행위는 물론, 그 행동을 할 때의 마음과 생각까지 낱낱이 비춰진다 했습니다. 심판 때까지 이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미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는 것이구요. 육에 미련을 두는 마음과 거룩하지 못한 모든 몸의 행실들까지도 속히 다 벗어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럽고 추한 육의 속성들을 버릴수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크게 사랑하시고 보장하시며 영광으로 입히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주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미 세상의 좋은 것들을 뒤로 하고 주의 종으로 자신을 드린 여러분입니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신속하게 온전한 종들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하신 대로 영의 마음을 이루어야 만이 여러분의 충성이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천국의 영광으로 갚아질 수 있습니다. 성결 복음의 기수로, 영과 온 영의 장수들로 나오는 만민의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1-11 오후 10:09:55 Posted
2018-02-21 오후 2:48:5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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