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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딤후4:7-8,요20:16-18 등록일자 2004.05.23
오늘은 사도 바울과 막달라 마리아의 주님에 대한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참자녀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목적은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참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희생을 먼저 감수하셨는데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속죄제물로 주시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저주의 상징인 나무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여전히 범죄하며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영혼에 대한 사랑은 결코 식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더욱 뜨겁게 변함없이 나타내 주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곧 성령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말하지만,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듯이 사랑의 정도도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 새생명을 얻은 후 주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도 귀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 사도 바울과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고 헌신적이었습니다.

2. 사도 바울과 막달라 마리아의 주님에 대한 사랑

1)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까지,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부르심을 얻기까지 믿음을 지키고 사랑을 지켰던 것만 보아도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사랑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임했다는 뜻인데 영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오직 상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누가복음 8:2-3에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여인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되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했듯이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섬김에 있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비록 자신도 풍족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주님에 대한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고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며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며 나아갈 수 있었지요.
사도 바울도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였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 것이 아니요, 영의 생각을 하며 끝까지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영의 마음이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은 영의 마음이 되어진 만큼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며 육신의 생각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를 결코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늘 주님을 곁에서 공궤하였어도 주님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았는데, 이는 영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사랑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 속에서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섬긴 것이 아니라 영의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항상 주님의 마음에 맞춰드렸던 것이지요.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방인의 사도'라는 사명을 맡길 만한 신뢰함이 있었던 것도 정녕 사도 바울이 주님을 영으로 사랑하여 그 마음을 잘 헤아려 나갈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는 '나'라는 자아를 온전히 비워야 합니다. 자기적인 육신의 생각과 의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영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영의 마음이 되어 나오는 영적인 사랑은 항상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섬기기 때문에 상대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드리게 되지요.

2) 불타는 열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세상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육적으로 뜨겁게 사랑하면 상대의 결점이 장점으로 보이는 것을 봅니다. 하물며 정열적인 영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설령 상대가 자신을 배려해 주지 않거나 그로 인해 자신이 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으며 능히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사도 바울의 주님께 향한 사랑이 이처럼 누구보다도 뜨겁고 정열적이었지요.
막달라 마리아는 단 하루도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만큼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던 분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때로 냉대하시기도 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실 때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이로 인하여 서운해하거나 낙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왜 주님께서 자신에게 그렇게 행하시는지, 그 깊은 마음까지도 헤아려 모든 것을 주님의 사랑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인성과 신성의 온전한 평형을 이루고 계셨지만, 만일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인성의 분야를 열어 놓으신다면, 그 평형이 깨어질 수도 있었지요. 그 정도로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은 아름답고 선한 향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더욱 신성적인 분야를 비치게 하심으로 때로는 차갑게 대하시기도 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때도 있으셨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막달라 마리아는 오직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았고 또한 예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지, 즉 예수님의 인성의 분야는 한없는 사랑이 있으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왜 신성적인 면을 더 보이시는지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는 말로써 오히려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렸습니다. 정녕 영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이처럼 자신이 주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 해도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게 내어 주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에, 당대 최고의 문하에서 교육받은 엘리트요, 당시 지배국인 로마의 시민권까지 소유하여 육적으로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주를 만난 후 자기에게 유익되던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처음 주님을 만날 때부터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께 헌신했던 사도 바울은 순교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열정이 식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난을 당할 때에도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고 어렵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간 적도 없었으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오직 푯대를 향하여 뜨겁게 달려갔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아무리 곤란한 상황,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고 깊은 감옥에 가두어 놓았을 때에도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주님을 핍박했던 자신을 하늘에 상급을 쌓을 수 있는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심을 중심에서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핍박하고 고난을 가한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낮아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 주님을 뜨겁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3)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함이 없이 사랑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했었다는 이유로 자신도 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제자들은 이미 두려워 숨어 버렸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도 그 사랑은 변개하지 않았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예수님의 시신에라도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시며, 머지않아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약속해 주셨지요. 이러한 약속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주님의 부활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맨처음 뵙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생명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되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섬겼으며, 그 사랑이 결코 변개하지 않았던 것을 주님께서 보상해 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천국에서도 지극히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는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순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향한 사랑이 변개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였지만, 주님에 대한 마음이 가득 자리잡고 있음으로 인해 육체의 고통은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지요. 오히려 핍박들을 밑거름으로 삼아 더욱 값진 영광의 열매를 맺으며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에도 두려움이나 회한이 아니라, 너무도 보고 싶고 그 품에 안기고 싶었던 주님을 곧 뵈올 수 있다는 소망으로 인해 가슴이 부풀 정도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과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도 귀하니 주님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하겠나이다" 고백하며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며 나아갔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영적인 사랑을 했고 열정적인 사랑을 했으며,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그 사랑이 변개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천국에서도 지극히 주님의 사랑받는 자리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가까움을 보는 이때에 더욱 뜨겁게 아버지와 주님을 사랑하심으로 이 땅에서도 범사에 주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넘쳐나며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받는 복된 자리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1-15 오후 10:00:5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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