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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심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살전5:16-18 등록일자 2006.05.14
오늘은 중심이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중심을 기뻐하시는지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중심이란 마음이 굳어진 것

예전에는 단맛을 낼 때 설탕보다 값이 싸면서 단맛이 훨씬 강한 사카린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 사카린의 당도는 대략 설탕의 300배 이상이며, 물에 1만 배로 묽게 해도 단맛이 없어지지 않을 만큼 단맛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카린이 녹아 들어간 물을 사람의 마음에 비유한다면 단맛으로 똘똘 뭉쳐진 사카린은 바로 중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심이란 마음이 굳어진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마음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의 힘이 됩니다.
이 중심은 선천적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분야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각 사람이 마음 안에 무엇을 많이 받아들이고 새겼는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선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성장하면서도 악한 것보다는 선한 것을 더 좋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기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나 비록 부모는 선했다 할지라도 태어나서 나쁜 환경에 접하면서 나쁜 것을 배워 나가면 악한 중심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7 후반절에 보면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중심을 중요하게 보시는 이유는 사카린 알갱이 하나가 많은 물을 달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그 중심에 의해서 마음씀과 말과 행실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2. 온전한 중심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온전한 중심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감동으로 밀려와서 눈물을 짓기도 합니다. 이러한 은혜의 체험을 통해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함을 보이려고 노력하지요.
그런데 때로는 '세상과 하나님' 중에 한 가지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세상의 것을 놓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놓기는 했지만 미련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의 마음 한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나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과 하나님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할 때 마음에 전혀 갈등하거나 번민하지 않고 단호하게 하나님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심의 차이지요.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면 중심에 거짓이 아닌 '진실'이 온전히 굳혀진 사람은 아무리 손해가 온다 해도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인데도 돈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등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마는 경우를 볼 수가 있지요. 이 사람은 그만큼 중심이 진실치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중심이 얼마나 선한가, 중심이 얼마나 곧은가 등에 따라 각 사람의 행동 양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혹 '나는 좋은 중심을 타고 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지요? 마태복음 19:26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사람의 중심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진리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벗어 내고 진리에 속한 것들만 자꾸 마음에 새겨나가면 그것이 쌓이고 굳혀져서 진리로 형성된 온전한 중심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이처럼 온전한 중심을 이루어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온 행함을 보이기 원하십니다. 중심에서 나오는 행함은 참되고 진실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3. 중심의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으려면

시편 51:6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좇을 때도 중심의 진실함으로 좇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중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중심 속에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죄사함으로 사망의 형벌을 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된 기쁨입니다. 이것은 사실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받기 전에 극적으로 모든 죄를 사면 받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이라든가 어릴 때 부모를 잃어버리고 홀로 자란 사람이 다시 부모를 만난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런 일이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서는 몇 가지만이 아닌 모든 죄를 사함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기쁨을 중심에 온전히 간직한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연단을 받는다 해도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지요.
이러한 구원의 기쁨 외에도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동안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하나님께로부터 많이 얻게 됩니다. 기도가 응답될 때도 기쁨을 얻으며 하늘의 신령한 은사들을 체험하고 맛볼 때도 마음속에서 희열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느끼는 이 기쁨을 마음 안에 잘 새기고 새기면 그것이 차츰 중심으로 굳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중심으로 굳힐 수 있을까요? 구원의 기쁨은 물론이요, 기도 응답의 기쁨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구할 때 좋은 것을 주시며 항상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새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중심 속에 굳혀진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 응답이 내 생각보다 좀 더딘 것 같을 때도 "아버지는 내게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다."는 믿음이 오니 자연히 기뻐할 수 있게 되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억지로 기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중심 속에 있는 "기쁨"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므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중심에 기쁨이 있었기에 복음을 전하면서 무수히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기뻐했고(골 1:24, 빌 2:17) 하박국 선지자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고백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혹 여러분 중에 나는 하나님께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은데 드리지 못하니 슬프다거나 민망하다 하며 잠시 기쁨을 잃은 분이 계신지요? 아버지 하나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보신다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드리든 그것을 드리는 중심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중심 속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만큼 하나님께서도 기쁨으로 받으시는 것이며 심은 대로 축복해 주시지요.

2) 중심 속에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천국의 소망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경작받는 자녀들이 장차 가게 될 천국을 가장 아름답고 좋은 재료들로 만드시고 영원토록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비록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어렵고 힘든 형편과 처지에 있다 해도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바라보므로 중심 속에 감사가 나옵니다.
히브리서 6:19에 보면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했습니다. 닻을 내린 배들은 풍랑이 일고 파도가 쳐도 풍랑에 휩쓸려 나가지 않듯이 중심 속에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어서 영혼의 닻을 천국에 든든히 내린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험한 시련의 파도를 만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닻을 내린 그곳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빌립보서 3:20 전반절에는 이미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 했고, 로마서 8:18에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천국의 소망 가운데 중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요, 장차 가게 될 천국이 실상으로 보이게 됨으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은 많지요.
그런데 중심 속에 감사하는 사람은 꼭 무엇을 응답받고 축복 받아서가 아니라도 항상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나를 사랑하시고 안위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감사가 나오며 귀한 제단과 목자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나오지요. 이러한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중심에서 나오는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서도 감동적으로 받으십니다. 또한 이러한 감사 가운데 변화되고자 기도하며 금식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심령이 변화되게 해 주시며 이러한 감사 가운데 예물을 드릴 때 신속하게 축복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3) 중심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과 우리가 기도하는 곳이 육의 공간의 개념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나 영의 공간의 개념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역대하 7:15에 보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하셨고, 마태복음 18:20에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여러분을 바라보시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육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졸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중언부언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면서 무엇을 구했다면 아버지께서 보실 때 '정녕 저 자녀가 저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에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심을 믿으면 중심 속에서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중심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기도가 나올 것이고 내 편에 필요한 것만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기도하게 되지요. 그리고 성령의 주관하심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중심 속의 기도는 여러분의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되는 기도입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자녀들에게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중심 속에 믿음으로 간절히 구한다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항상 중심의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진실한 믿음의 기도로써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마음에 감동을 드리는 선한 기도를 올린다면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기특하게 여기시며 신속하게 응답과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이제는 작은 일 한 가지를 한다 해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중심에서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에 이룰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닌 참으로 가치 있고 영원한 것을 위해 모든 열정을 드리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받아 마음껏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5-16 오후 4:19:54 Posted
2006-09-16 오전 5:30:4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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