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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한 대로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잠31:30-31 등록일자 2007.05.20
오늘은 바울, 마리아 헌신예배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의 소망 가운데 심은 것을 축복으로 응답받는 길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곱고 아름다운 것도 세월이 지나면 썩어지고 변질되어 가치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가 빛나게 되지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장차는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의 영광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잠 31:30-31).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여 받는 복은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복과는 달라서 한순간의 사고나 재앙으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지 않습니다. 천하 만물과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순간에도 모든 축복을 보장해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기에 여러분들은 그동안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을 드리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이제까지 심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심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때 천국에 상급으로 쌓이게 되며, 축복받을 그릇이 준비되기만 하면 이 땅에서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받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좋은 것으로 풍성히 갚아 주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심고 행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경외하고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말을 순종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 안에 살아야 하지요.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진리에서 벗어나게 행한다면 이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무례히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한 번, 두 번 불법과 불의를 행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도 외면하시고,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라 인정받지 못하니 완전히 버림받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육은 육으로, 영은 영으로 그 흐름이 더욱 확연히 나누어진다는 말씀을 여러분은 계속 들어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마음의 할례를 멈추고 영적인 잠에 빠져 버리면 이미 육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결국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지만 마음의 할례는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이라면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말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고자 노력해 왔다면 반드시 진리로 변화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반면에 마음의 할례를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안에 이뤄 가지 못하면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 사명 감당을 한다 해도 점차 뜨거움이 식어지고 습관적인 행함이 되어 버리기 쉽지요. 그러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자신의 영적인 성장이 더디고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 서서히 실망과 낙담이 오게 됩니다. 마음에 허전함을 느끼고 세상을 취해 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에 곤고함은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비진리가 발견될 때 대충 덮어 버리고 피해가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자체를 변화시키며 말과 행동, 생각까지도 진리로 이뤄 나갈 때 기쁨과 감사가 항상 넘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을 기뻐하시므로 주님을 위해 심고 행하는 모든 것들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갚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포기해 온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고통과 절망 속에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생명과 건강을 얻었고 참 소망과 위로를 받게 되었지요. 이후로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모든 소유와 정성을 다해 예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막달라 마리아는 그동안 헌신했던 일이 후회되었을까요? 결코 아니었지요.


오히려 예수님의 고난을 차라리 자신이 대신 당할 수 있기를 원했고, 자신의 생명을 다 드려서라도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숨어 있을 때도 주님의 시신에나마 향유를 부어드리고자 새벽 미명부터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뵐 수 있었고, 이후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어떠합니까? 주님을 한 번 만난 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여 드렸습니다. 가문과 지식, 명예,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주님만 위해 충성하며 달려갔지요. 그러다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좋은 아내를 얻어 단란한 가정을 꾸밀 수도 있었는데 어찌 모든 행복을 다 버리고 고난을 자초했던가?” 하며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백한 것처럼 오히려 주님을 위해 고난받을 수 있음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순교하는 순간까지도 그 열정은 더해지기만 했지요.


여러분 중에서도 수년, 혹은 10년, 20년씩 충성하면서 젊음과 물질, 달란트까지도 다 드리며 달려온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동안 아무리 많은 것을 드리고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할지라도 갈수록 기쁨과 행복은 더해져야 합니다. 주님을 만날 날이 점점 가까워 오며, 그런 만큼 각자가 행한 대로 받게 될 날이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를 위해 많은 것을 드리고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선택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동년배들과 비교해 볼 때 자기를 위해서 변변하게 이 땅에 쌓은 것이 없어 보이므로 ‘그때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사람보다 더 나은 형편이었을 텐데, 주님께 드렸던 시간과 물질, 노력을 조금만 더 나를 위해 투자했더라면 더 좋은 자리에 올라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 하다가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게 되므로 마음이 변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단이 너무 힘들면 도피처를 찾게 되지요. “저 사람도 원하는 것을 취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힘들고 외롭게 가야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질되어 아쉬워하는 마음 자체가 벌써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주님을 위해 헌신했다고 하지만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등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을 헌신하여 드렸다면 이와 동시에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을 진리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헌신하여 드렸을 때 삶에 빈자리가 생긴 것처럼 느껴지므로 충만함이 떨어지면 허전하여 다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육의 것들로 채우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감당하던 사명을 놓으면서도 “영적인 열매가 없으니 차라리 내가 물러서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도 더 유익이 될 것 같다.”며 변명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선과 진리를 사모하여 마음에 채워나갈 때는 주님께 드릴수록 삶이 허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과 감사,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또한 영육간의 축복이 임하고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의 보장하심이 따릅니다. 이런 사실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혹여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다 해도 낙심하여 육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구하게 되지요.


세상에 수많은 길이 있지만 생명수이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며 좁은 천국길로 걸어가야만 합니다. 지식, 물질, 명예, 이성이 참된 만족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만이 여러분의 심령을 채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길도 생명을 줄 수는 없으니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여러분이 쌓아온 모든 것을 온전한 상급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마음의 의를 이룰 수 있도록 중심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도한다 하면서도 마음의 의를 이루지 못하므로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기도 속에 어떠한 내용을 실어, 어떠한 중심으로 기도했는지 잘 깨달아 보아야 합니다. 나름대로 소리 내어 부르짖는다 했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정녕 중심을 다하는 기도라야 하는 것이지요.


부모로부터 기 속에 타고난 죄성과 수십 년씩 세상에서 자기 안에 받아들인 육의 속성들을 뽑아 버리고자 한다면 그만큼 진액을 쏟는 기도라야 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하여 불의 응답을 받았는지 말씀을 통해 많이 들으셨습니다.


“이 기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응답을 받으리라, 반드시 기도하기 전과 다른 모습, 다른 마음을 이루리라.” 이런 각오로 날마다 부르짖으셨는지요? 그러면 졸음이 올 리도 없고 중언부언할 리도 없습니다. 설령 피곤해서 왔다가도 돌아갈 때는 성령이 충만해서 돌아가게 됩니다. 단 5분, 10분을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진한 기도, 마음의 향을 실어 올리는 기도를 드릴 때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보면 통장의 저축이 늘어나는 재미로 먹고 입는 것도 아끼며 쉬는 시간도 없이 밤낮으로 일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비길 수 없는 재미가 있지요. 중심으로 기도하여 육을 하나하나 버려 나가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면 세상을 바라볼 마음이 전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깊이 느껴지며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대로 반드시 주십니다. 다만 여러분이 어떤 중심으로 구했는가에 따라 그 응답의 속도와 열매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후서 1:10-1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신 대로 힘써 마음의 할례를 이루며 감사와 기쁨이 항상 충만하게 달려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헌신하여 드린 모든 것을 이 땅에서의 기름진 축복과 천국의 영원한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5-22 오전 4:39:34 Posted
2018-09-04 오전 11:42:2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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