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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8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1:1-7 등록일자 2009.01.09
최후의 대심판이 끝나면, 성도들은 천국의 자기 처소로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립니다. 사도 요한은 심판 후에 들어갈 천국과 그 안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보고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우리가 경작 받은 육의 하늘과 땅을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셋째 하늘, 곧 천국의 하늘과 땅을 말합니다.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이후에 있는 것이므로, 둘째 하늘과 둘째 땅 혹은 나중 하늘과 나중 땅이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 한 이유는 경작 후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아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경작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경작이 끝난 시점에서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아무 가치가 없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요한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한 것입니다. 물론 필요가 없다고 해서 이 육의 세상이 소멸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첫째 하늘, 곧 육의 공간도 태초에 하나님의 근본의 공간에서 나뉜 공간이기 때문에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 공간의 문을 닫아두실 뿐입니다.

1) 새 하늘
그러면 새 하늘, 곧 천국의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요? 히브리서 8장 5절 전반에 보면,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것 중에는 천국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의 하늘이 푸른 것도, 구름이 떠다니는 것도 천국의 하늘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실체와 그림자가 똑같지 않은 것처럼, 천국의 새 하늘은 이 땅의 하늘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천국의 하늘은 이 세상의 하늘과 달리 전혀 오염되지 않은 매우 맑고 깨끗한 푸른색입니다. 파란색은 깊이와 높이, 그리고 맑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깨끗함을 갖기 원하는 마음이 듭니다. 저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게 살아야겠다. 더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야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만약 하늘 전체가 노란색, 혹은 빨간색이라면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노을이 질 때 붉은 빛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도들이 보고 싶어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노을을 천국의 하늘에 연출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항상 하늘이 붉거나 노란 빛이라면, 사람들의 정서가 안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 하늘이 온통 잿빛 구름으로 덮였을 때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우울하고 어둡고 부정적이게 됩니다. 반면에 오랜 장마가 끝나고 구름이 걷히면서 푸른 하늘이 드러나면,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에 좋은 영향을 주는 푸른빛을 천국의 새 하늘에 펼쳐 주셨습니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세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맑고 푸른 천국의 하늘에는 해나 달, 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했습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새 예루살렘에서부터 낙원의 가장자리까지 환히 비춰 줍니다. 만일 그 빛이 새 예루살렘을 비추는 것과 같이 낙원에도 그대로 비춘다면, 낙원의 영혼들은 그 빛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눈이 너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고, 고개도 들 수 없습니다. 그 빛은 하나님을 닮아 온전한 영을 이룸으로써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성도들만이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낙원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낙원의 성도들에 맞게 적당한 밝기로 조절됩니다. 3천층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빛보다 그 밝기가 조금 줄어들고, 2천층으로, 1천층으로, 낙원으로 갈수록 빛의 밝기가 점점 더 줄어듭니다. 그러한 빛이 항상 비추므로 천국에는 어둠이 없고 밤도 전혀 없습니다.
혹여 이 땅에서는 밤이 되면 잠을 자야 몸의 피로가 풀리고 쉼을 얻었는데, 천국에 가면 어떻게 쉴 수 있을까? 주위가 온통 밝으면 어떻게 잠이 들 수 있을까? 하며 염려 아닌 염려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무엇을 해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피곤치 않습니다. 천국에서는 피곤을 풀기 위한 휴식이 필요 없습니다. 또 천국에서 입는 온전한 영체는 이 육의 몸과는 달라서 피곤을 느끼지 않습니다. 천국의 빛이 밝다고 해서 눈이 피로하고 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빛으로 인해 오히려 더 충만하고 행복해지기 때문에 쉬는 데 방해되지는 않습니다. 이 땅에서처럼 밤하늘에 별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일정한 공간에만 밤하늘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주시기도 합니다.

2) 새 땅
이 땅은 바위와 돌, 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 땅, 곧 천국의 땅은 금과 은, 그리고 각종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국의 땅 곳곳에는 포장된 도로처럼 정금으로 입힌 길이 있고, 보석이 블록처럼 깔린 길이 있으며, 금모래와 은모래가 가득 펼쳐진 강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의 땅에 깔린 금, 은이나 보석은 흙처럼 가루 형태가 아닙니다. 아주 작은 구슬처럼 생겨서, 바람이 불어도 먼지처럼 날리거나 몸에 묻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금이나 보석 속에 식물을 심으면 살 수 없지만, 천국에서는 살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보석이 썩지 않는 것처럼 보석의 토양에서 자란 식물도 썩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심고 자라게 하신 것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반면에, 흙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땅은 인생의 허무함을 알게 해 줍니다. 흙에서 자라난 모든 식물도,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사는 짐승과 인간도 결국에는 죽어서 부패되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우리는 육의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변질되는 헛된 것을 취하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2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했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흠과 티가 없으며 진실하고 참되어 영화롭게 빛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성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빛으로 만든 성으로서, 이 성 안에는 어둠이나 거짓된 것, 가증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성에 새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함으로써 예루살렘 안에 복음이 심긴 것과 그 복음을 통해 이룬 모든 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하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은 서기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고, 하나님의 성전도 완전히 훼파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예언에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뿐만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율법이 주님의 사랑으로 완성됨을 의미하는 영적인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이 무너졌다 해서 구약시대 하나님의 율법이 모두 무효가 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산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는데, 신약에서는 제사가 아니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예배의 절차 안에는 구약시대 제사법에 담긴 영적 의미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율법을 온전히 이룸으로써 세워진 새 예루살렘에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 그리고 그 말씀대로 온전히 이룬 사람들이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 했습니다.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친히 예비하신 성입니다. 그런데 이 성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정성껏 예비되었는지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했습니다.
보통 신랑과 신부의 비유는 우리 주님과 성도들의 관계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성도들이 신랑이고, 새 예루살렘 성이 신부입니다. 육의 세상에서도, 신부는 신랑을 위해 매우 정성스럽게 단장을 합니다. 몇 주, 혹은 몇 달씩 걸려서 자신을 가꾸고,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그의 마음에 쏙 들게 준비합니다. 이처럼 새 예루살렘은 그곳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에 꼭 맞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흠 없이 단장한 주님의 신부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고 오직 신랑 되실 주님의 마음에 꼭 맞도록 온전히 말씀대로 살았고, 아버지와 주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드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그들의 마음에 꼭 맞는 처소를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단장한 신부와 같은 새 예루살렘의 처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당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3.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3-4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넷째 하늘, 곧 근본의 하늘에 계시지만, 심판 후에는 새 예루살렘에도 거처를 두십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과 함께 계시면서 성도들의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시는 것입니다. 단지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근본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사망이나 애통이 없고, 곡하는 것도 없고, 질병이나 재앙으로 아픈 것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경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참 자녀들을 얻으셨으니, 더 이상 사망이나 아픔을 허락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4.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했습니다.
보통 하나님의 보좌를 언급할 때에는 심판주로서의 권세를 나타내실 때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시점은 심판이 끝난 때이니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좌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치시는 것처럼 말씀을 확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왕의 어인이 찍힌 문서는 변개치 못하는 것처럼,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시는 것이 얼마나 신실하며 참된 것인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제 썩고 변질되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만물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6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하신 것은 인류 대속의 사업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이루었도다" 하신 것은 경작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참 자녀를 얻으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이고 만물을 새롭게 하기까지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1장 8절에서 설명한 대로, 문명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뜻입니다. 처음과 나중이란 구원의 섭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재림함으로써 구속 사업을 마무리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구원의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데, 하나님께서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 하신 것은 모든 구원의 섭리를 주관한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물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영적으로도 물, 곧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도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했습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생명이 없으므로 항상 갈급하며 허전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헛된 것, 세상 것을 취하려고만 합니다. 아무리 재물을 모으고 쌓아도 여전히 불안할 뿐입니다. 교회를 다닌다 해도,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똑같이 늘 목마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생명수를 마시는 사람은 진리로 마음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던 비진리를 벗어 내고 진리로 채우는 사람이라야 영적 갈급함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성결을 이룰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 속에서는 능히 진리로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진리로 채우는 만큼 목마름은 사라지고, 마음속에 참 기쁨과 평안과 만족이 솟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7절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신 대로 이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영위하면 마침내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의 참 아들이라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저의 아버지가 된다" 하시지 않고,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고 표현하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주관한다는 것과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가 들어가야 할 새 예루살렘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9-01-12 오후 10:44:09 Posted
2018-06-25 오후 8:09: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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