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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9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2:6-10 등록일자 2009.04.03
지난 시간에는 새 예루살렘 성 길 가운데 있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과 좌우에 늘어선 생명나무,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1.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4절에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 위에 있으리라" 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서는 합당한 자격을 갖춰야만 합니다. 주님을 뵙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살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19-2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고자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시내산 위에 있고, 심히 큰 나팔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리고 연기가 자욱하더니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죽을 것을 염려하여 산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경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두려워 떨며 감히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서서 모세에게 부탁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빛 되신 하나님의 위엄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산에 임하신 징조만 보고도 감히 그 앞에 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물론, 아직 온전히 성결을 이루지 못했다 해도 은혜 가운데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직접 하나님을 대면해서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편에서 그 빛을 가려 주시므로 일시적으로 그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려 주시지 않은 채 사람이 그 빛을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성결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얼굴과 주님의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습니다. 그 품에 직접 안길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주님이 눈앞에 계신다 해도 찬란한 영광의 빛 때문에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자신이 사는 1천층 보다 높은 처소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고, 다른 처소에 특별히 초청받아 들어갈 때에는 거기에 맞는 의복을 빌려 입어야만 그 처소의 빛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결을 이루지 못했다면, 주님을 대할 때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성도들을 대할 때에도 그들의 빛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둠을 다 벗어 버리고 빛에 속한 사람들이므로 천국의 어느 곳이라도 다닐 수 있고, 하나님도, 주님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2.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12절의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축복의 말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했습니다. 모든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성도들에게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어린 양이신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새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주님은 물론 우리 모두도 천국에 가면 지금 쓰는 이름이 아니라 새 이름을 받게 되는데, 빌라델비아 교회 위에 기록되는 주님의 새 이름은 바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입니다. 물론 이 이름은 이 땅의 언어가 아닌 천국의 언어로 불려 집니다. 이렇게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성도들의 몸에 실제로 어떤 글자를 써넣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인치시고 보장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4절 후반에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했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이마는 사람을 볼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입니다. 책으로 비유하자면, 새 책을 볼 때에 가장 먼저 보는 곳은 앞표지와 제목입니다. 그런 것처럼, 사람의 몸에서도 어떤 글자를 쓰거나 표를 붙일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마입니다. 이마에 무엇을 새기고 다닌다면, 그 사람에 대해 매우 중요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의 영광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다"는 말씀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3.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라

5절에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했습니다. 천국에는 더 이상 저주도 없고, 밤의 어둠도 없습니다. 오직 빛이신 하나님의 영광만이 영원히 온 천국을 비추게 됩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그 영광 가운데 세세토록 왕 노릇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천년왕국 때에도 성도들이 왕 노릇을 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는 사람들과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사람들은 그 범위가 다릅니다. 천년왕국 때에는 구원받은 영의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했지만 7년 환란 때 살아남은 육의 사람들이 공존하는데 이때 왕 노릇한다는 것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생활이 육의 사람들에 비할 때 왕과 같이 영화롭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들어간 성도들 뿐 아니라 믿음의 1, 2단계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라 해도 육의 사람들의 생활에 비하면 왕처럼 존귀하게 살아갑니다.
반면에,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것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온 자녀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왕들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릴 뿐 아니라, 천국의 다른 처소에 사는 성도들에 비해서도 훨씬 영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물론 왕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왕의 사랑을 받는 왕자들은 왕처럼 영화를 누리듯이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그의 종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서 족히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천국의 다른 처소를 두루 돌아다니며 성도들에게 은혜를 입혀 주기도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신하여 두루 살피며 각 처소마다 행복을 더하는 것입니다.

4.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6절 전반에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했습니다. 여기서 "이 말"이란 새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만이 아니라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의 모든 말씀을 포함합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편지, 공중 혼인 잔치와 7년 대환란, 최후의 대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 이르기까지 모든 말씀을 전부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록의 모든 말씀은 요한이 보고 들은 그대로 기록한 참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장차 이뤄질 일들을 힘써 전하게 하셨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깨우쳐서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것과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려주셨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빛 가운데 살아야 함도 깨우쳐 주셨습니다.
또한 말씀만 듣고는 믿지 않는 인생들에게 증거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천지만물을 보아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가 잘 나타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베푸셔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들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의 기도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모세가 열 재앙을 베풀고 권능을 행할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병자를 치료하시고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또한 이러한 역사들을 무수히 체험하고 목격해 온 증인들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가능해 지는 것을 보셨고, 또 체험해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인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2009-04-06 오후 7:26:24 Posted
2018-06-25 오후 8:08:0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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