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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9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2:6-10 등록일자 2009.04.24
지난 시간에 본문 6절을 말씀드리다가 마쳤습니다. 이번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에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하여금 장차 이뤄질 일들을 힘써 전하게 하십니다. 그 말씀은 모두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며, 듣는 사람들을 깨우쳐서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믿지 않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삽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고, 23절에는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실로 믿는다면, 불법을 행하고 죄 가운데 살 리가 없습니다.
또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을 때,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믿는다면, 심는 것에 인색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알려 줘도, 믿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의 상급보다는 눈앞의 유익을 구하게 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게 됩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아무리 표적을 보아도 마음에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믿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어 깨우치고 또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선지자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셔서 앞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앞으로의 일들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됩니다.
그런데 신명기 18장 21-22절에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했습니다. 이 육의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앞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악한 영들 역시 앞으로 될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악한 영들도 영의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난 일은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악한 영과 교통하여 예언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단지 확률에 의존하는 것일 뿐, 정확하게 앞일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때라야만 미래를 정확히 예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생각 속에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영이신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선지자들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에도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종" 역시 영적인 자격을 갖춘 참된 종을 말합니다. 참된 종이란 자기 의사가 없이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들이며, 생명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선하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때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게 됩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동방의 박사들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니 구세주의 탄생을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앞일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2. 내가 속히 오리니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7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속히 오리니"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말씀을 드러내어 설교하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것은 성경에 확실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면, 그 사람이 아직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그릇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면 지금 열심히 살 필요가 없구나, 적당히 살아도 되나보다 생각하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당장 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뒤로 하고, 불성실하게 살아가므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마땅히 선포해야 할 말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겠느냐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선포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혹여 그 말씀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르게 깨우쳐 주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운 것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무절제하거나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다듬어 더욱 반듯하고 정결하게 살아갑니다. 마음을 더 거룩하게 하고, 온 집에 충성하면서, 거룩하신 주님의 신부로 단장합니다. 성도들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이 말씀을 더욱 열심히 전하며 서로 격려하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 날을 얼마나 자주 떠올려 보십니까? 주님께서 임하시는 그 순간, 공중에 우렁찬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영광의 구름 속에 주님께서 임하십니다. 천군 천사와 수많은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공중에 임할 때, 우리의 몸은 순간에 신령한 몸으로 변하여 하늘로 들려 올라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이러한 감동의 순간을 떠올리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릴 것입니다. 그런 분이라면 내가 빨리 주님 맞을 준비를 마쳐야지, 어서 속히 신부 단장을 끝내야지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살다가 갑자기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면, 큰일입니다. 만약에, 앞으로 일주일 후에 혹은 한 달 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그 시점을 알았다고 해서 남은 시간 동안 신부단장이 온전히 되겠습니까? 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신부단장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까지 성결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부르짖어 기도해 왔으니, 이 사실을 절실히 느끼실 것입니다. 영적인 신부단장은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여인들이 결혼할 때도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준비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당시만 해도, 부모님들은 딸이 태어나면 그때부터 시집보낼 준비를 했습니다. 빠듯한 살림 속에서 비단이나 가구 등의 혼숫감들을 틈틈이 마련해 두고자 했던 것입니다. 육의 혼인을 준비하는 신부단장도 이렇게 정성들여 하는데, 하물며 우리 영의 신랑과 혼인 잔치를 하려면 얼마나 정성껏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속히 다시 오실 주님을 널리 선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이 곧 오신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외치고 또 외치는 것입니다.

3.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8-9절에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했습니다.
요한은 깊은 계시의 말씀들을 받고 너무나 감격스러운 마음에 자신을 안내해 준 천사에게 절을 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자신에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했습니다. 요한이 보고 들은 모든 섭리와 천국의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도,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신 분도, 천국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선한 것이 있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주 안에서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칭찬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찬양팀이 특송을 충만하게 하면, 열정적인 박수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 가수들에게 박수 치는 것처럼 노래를 잘했다고 칭찬하는 박수가 아닙니다. 그 찬양을 통해 은혜와 감동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수고해서 힘껏 준비한 찬양팀에 대한 격려와 감사의 표현도 담겨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은혜와 감동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입을 수 있는 것이며,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한 사람이 내가 이렇게 잘했다 하고 교만해지거나, 스스로 영광을 누리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때 이것이 참으로 천국의 상급이 됩니다.
이것은 범사에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했습니다. 구역장이 심방을 해서 양 떼가 은혜를 받았다면,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여 양 떼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봉사하여 교회에서 상을 받았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충성할 수 있는 건강과 성실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간증하는 것도 자기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중심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감사의 조건과 영광 돌릴 조건을 여러분의 삶 속에 더욱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4.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10절에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했습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은 좁게 보면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의 말씀이지만, 넓게 보면 성경 66권의 말씀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성경의 모든 말씀을 보고, 듣고,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비밀한 것을 알려 주시면서 종종 "공개하지는 말라" 하시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 12장 4절 전반에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시는 이유는 아직 그 비밀을 드러낼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룰 때는 가장 적절한 때와 시점이 있습니다. 그때가 무르익기 전에는 아무리 중요한 예언을 한다 해도 유익이 없고, 오히려 불필요한 핍박만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앞일을 알려 주신다 해도 필요한 순간이 되기까지는 선포하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는 세계와 국내의 정세나 교계의 일들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즉시 선포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제 주변의 몇몇 분들과만 대화하고, 때가 되기까지 함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한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의 첫 글자만 따서 주보에 실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계의 비밀한 일들에 대해 알려주실 때, 처음부터 모든 내용을 깊이 있게 풀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천국의 단계를 풀어 주실 때에는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점점 더 깊이 풀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3단계로 풀어주셨다가, 성도님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좀 더 상세하게 5단계로 다시 세분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내용들은 밝히 알려 주시면서 "아직은 함구하라" 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가 되어 어떤 것을 "선포하라" 하시면, 저는 반드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될 줄 안다 해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축복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이 마지막 때에 인봉하지 말고 널리 선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인봉해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들을 사람의 생각 속에서 임의대로 해석하여 잘못 적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그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른다고 해서 성도님들도 그 말씀을 읽으면 안 됩니다 하고 막을 수는 없습니다. 성도들이 안 배워도 되는 내용이라면, 하나님께서 왜 성경 66권 가운데 두셨겠습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교과서 한 권 전체가 시험 범위라면 전체를 다 가르쳐 줘야 합니다. "나도 이 부분은 잘 모르니까 너희도 공부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 한다면,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습니까? 책임감 있는 선생님이라면, 자신이 모를 때는 배워서라도 가르쳐 줘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양 떼를 가르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면, 하나님께 금식하고 철야하며 매달려서라도 깨우침을 받아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가르침 받는 사람들의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2) 때가 가까우니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봉인하지 말라" 하신 것은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때가 가깝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기간이 거의 다 찼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경 곳곳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4장 12절에는 마지막 때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셨고, 14절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셨습니다. 또 다니엘 12장 4절에는 마지막 때에 대해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말씀들을 통해 경작의 마지막 날이 매우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마지막 때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서 마지막 때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더욱 실감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바로 때가 가깝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둘째로, 때가 가깝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 그 사람에게는 그 순간이 마지막 심판의 때가 됩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했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짧고, 자신이 언제 죽을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나마도 없습니다.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불러 가시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이 납니다. 설령 인류의 역사가 수천 년 더 이어진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은 꼭 늙어서만 죽는 것도 아닙니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혹은 어린 나이에도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수명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천 년 전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마지막 때가 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라도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때가 가깝다는 말씀을 널리 선포하는 것은 이를 듣고 깨닫는 사람마다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영적인 잠에 빠진 사람들은 주님께서 더디 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갑자기 오시는 주님을 준비하지 못한 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갑자기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빛 가운데 살면서 준비하게 하시다가, 기쁨과 감격으로 주님을 맞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가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중심을 다해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을 만날 때 큰 영광을 누리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4-27 오후 5:46:14 Posted
2018-06-25 오후 8:08:0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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