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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마음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사53:4-9 등록일자 2007.04.01
부활절 한 주 전 주일인 오늘은 종려 주일이며, 내일부터 토요일까지인 고난주간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내셨는지 살펴보고, 이때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증거하고자 합니다. 단, 예수님의 고난주간 행적은 지금 우리의 하루 개념으로 말씀드립니다.

1.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종려 주일에 해당하는 2천여 년 전 오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환영하였지요. 이처럼 일요일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낮에는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고, 해가 저물면 베다니로 가셔서 쉬셨습니다(눅 19:47).
다음 날 월요일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내어 쫓으심으로 성전을 정결케 하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성전에 계신 예수님께 나아와 책잡고자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지혜롭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답하시니,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방책을 모색해 나갑니다.
수요일 저녁 때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로 오셨는데, 죽은 지 나흘 만에 살아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드렸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가 못마땅해 하며 향유를 허비한다고 마리아를 책망하는 말을 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 14:8) 하시며, 마리아의 행함을 널리 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기회를 찾게 됩니다.
목요일 저녁에는 예수님께서 베다니로 가시지 않고 예루살렘 성내에서 유월절 만찬을 드신 다음 감람산의 겟세마네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될 정도였지요. 그러나 제자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두 차례 권면에도 불구하고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졸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깨우러 오셨을 때 어느덧 목요일 자정이 되어 가고 있었고, 바로 그때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의 하속들을 데리고 나타나 예수님을 체포하니 제자들은 도망하고 말았지요. 붙잡힌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안나스의 뜰로 가시는 동안 시간은 자정을 넘겨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대제사장 안나스의 뜰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다음에는 그해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넘겨져 힐문을 당하셨습니다(요 18:13).
그러던 중, 날이 새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공회에 세웠고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기에 이릅니다(눅 22:66). 그리고는 당시 로마에서 파송되어 온 총독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려 가셨고, 대제사장의 무리가 고소하는 말을 들어본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헤롯의 관할인 것을 알아 헤롯에게 보냈지만, 헤롯은 다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돌려 보냅니다.
결국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거센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예수님을 채찍질한 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판결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십자가 구속의 섭리를 이루셨고, 죽임 당하신 지 3일 만인 일요일 새벽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여신 것입니다.

2.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주님의 마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부활하실 것을 아셨지만, 십자가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시기까지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러한 심정을 예수님께서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50)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그 마음은 과연 어떠하셨을까요?

1)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온전한 순종이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아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멘'과 '예'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9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했고, 빌립보서 2:8에도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중한 죄를 지은 죄인에게 내려지는 사형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처형 장소까지 지고 올라가서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힌 채,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극심한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손목은 찢어지며, 피 냄새를 맡은 벌레들이 날아와 몸에 달라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채찍에 맞아 온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해를 입으셨습니다.
로마 군병의 채찍은 끝 부분에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려 있고 줄에는 유리조각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한 번만 채찍을 휘둘러 잡아채어도 온몸에 상처를 남기고 끝 부분의 갈고리는 살점을 도려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채찍으로 많이 맞으셨고, 단단한 가시로 엮어진 가시관을 머리에 쓰심으로 고통 가운데 많은 피를 흘리셨지요.
이처럼 몸으로 느끼는 아픔과 고통보다도 예수님께서는 더 큰 마음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이 변질되어 죄에 심히 물든 인생들로 인한 고통이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까지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멸망의 길로 가는 어리석은 인생들에 대한 아픔이었던 것입니다(사 53:4).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의 섭리를 완성해 놓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혜 가운데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해 가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시어 무수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을 바라보셨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의 길이 아무리 참담하고 고통스런 길일지라도 온전히 순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2) 주님의 마음은 희생의 마음입니다
희생의 마음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어떠한 보상이나 대가가 약속되지 않았어도 묵묵히 내 것을 다 내어 주고 또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할 때 육적으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달라면 주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셨는데, 이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도 때로는 물질과 시간을 내어줘야 합니다. 그렇게 주면 손해가 되니 주지 못하고, 결국 순종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며 희생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한 희생양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에도 어떠한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내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피조물들로부터 왜 멸시와 조롱을 받아야 하는가? 나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고 선한 일만 했는데 어찌하여 애매히 핍박하는가?' 이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왜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누구 하나 깨닫지 못했고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전혀 서운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죄 중에 고통받는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묵묵히 십자가의 희생양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사 53:7).
제가 교회 재정을 위해 절식을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되어 갑니다. 저라도 하나님 앞에 긍휼함을 입어 축복을 앞당기기 바라며 절식을 시작했지요. 그렇게 절식해 오면서도 '왜 나만 제대로 먹지 못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가? 왜 나를 위해서는 쓰지 않고 구제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도 함께 희생합시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꾼들은 더 잘 먹고 힘을 내 열심히 충성해 주길 부탁했지요. 또한 가장 머리된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짐을 지기 위해 숱한 세월 경련과 싸우면서도 '왜 나만 이렇게 힘겹게 가야 하나?' 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시며,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이번 고난 주간에 성도님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큰 은혜와 감동으로 와 닿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물로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실 수 있었던 것은 감사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나 하나의 희생으로 무수히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예수님 자신이 그 일을 이룰 수 있음도 감사하는 마음이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이뤄질 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기면 억지로 힘들게 희생하는 것이 아니요, 즐거움으로 희생할 수 있습니다.
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해 교회가 축복받고 성도님들의 사업터, 일터가 잘될 것을 믿기에 감사함으로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제하고 선교하기 위해서는 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성도님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제하여 새 힘을 받게 된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또한 고국을 떠나 먼 외국 땅, 오지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선교사님들이 마음껏 선교사역을 펼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면, 절약하여 모은 재정으로 그분들을 후원하는 것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감사하고, 영혼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에 감사하며, 이 길을 갈 수 있는 능력과 기도의 능력을 주심에 감사하는 등 온전히 감사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마음, 곧 순종과 희생과 감사의 마음이 성도님들의 마음에도 가득하여 성도님들의 순종과 희생을 통해서도 많은 열매가 맺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죄인들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해 드리며, 기쁨을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4-03 오전 1:26:27 Posted
2007-04-18 오후 5:36:4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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