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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20:17-18 등록일자 2007.04.08
뜻깊은 부활주일에 '사랑'이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을 아름답게 키워 나가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사랑을 나타내실 수 있기 바랍니다.

1. 진정한 사랑은 변개함이 없는 사랑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리는 참되고 진정한 사랑을 이루려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처럼 변개치 않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받기 원하시는 진정한 사랑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변개치 않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변개치 않는 마음'도 다시 세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중심의 측면입니다
우리나라 말 중에 '맑게 갠 하늘에서 치는 날벼락'이라는 뜻을 가진 '청천벽력(靑天霹靂)'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뜻밖에 일어난 큰 변고나 사건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아무리 청천벽력 같은 일을 만난다 해도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조금의 요동함도 없을 때 바로 중심에 변개함 없는 사랑이 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가 그러했지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이후로 중심에서 예수님을 사랑하여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드리고자 자신의 모든 소유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오직 선한 일만 하시고, 권능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유대 병정들에게 붙잡혀 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요.
이에 막달라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대제사장의 뜰에 가 보니 정말 예수님께서 붙잡혀 계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여 거짓 증거를 하며 예수님을 죽일 거리를 찾다가 결국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침을 뱉으며,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희롱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겐 너무나 고귀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맞으며 희롱을 당하시는 것을 볼 때 '그동안 내가 예수님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잘못하면 나도 해를 입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의 요동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맞으실 때 마치 자신이 맞는 것처럼 마음에 심한 고통을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지요. 예수님은 잔인한 십자가 형벌을 면할 방법이 없으며,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중심에 변개함 없는 사랑이 임해 있었기에 육신의 생각이나 두려운 마음, 의심도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너무도 충격적인 일들이 연속되어도 두려움으로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사랑의 힘으로써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뒤따랐고 끝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통을 고스란히 마음으로 함께 느끼되, 사랑하는 예수님을 차마 보내드릴 수 없는 마음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까지 곁에 머물렀지요. 이것이 바로 중심에 변개함이 없는 사랑이 임한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시험이나 연단을 받을 때 과연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심에서 변함이 없었는지요? 깊은 속마음인 중심에서가 아니라 겉마음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들은 막상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 했던 마음이 때론 크게, 때론 작게 요동하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조금만 어렵고 힘든 일이 와도 생각하기를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서운해하고 낙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부족하고 잘못도 많으니까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실 거야.' 하고 좌절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이런 생각과 마음이 든다는 자체는 벌써 자신의 마음이 요동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변했는데 자신이 변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이전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니 이제는 더욱 중심에서 변개함 없는 사랑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2) 진실됨의 측면입니다
마가복음 12:30을 보면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셨는데, 이 중에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진실로 변함없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변함없이 마음을 다해 사랑했는가'입니다. 초신자 때는 진리를 잘 알지 못했지만 첫사랑의 뜨거움으로 인해 진리를 아는 만큼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 나갔습니다. 주일성수 해야 함을 알아 주일을 지켰고, 십일조 드려야 함을 알아서 십일조를 드렸지요. 비록 진리로 일군 마음의 분량은 적었지만, 그 적은 마음의 분량을 다하여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녕 변함없이 마음을 다해 왔다면 믿음이 성장하여 진리로 일군 마음의 분량이 초신자 때의 두 배, 세 배가 되고 하나님께 쏟아드리는 정성도 두 배, 세 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녕 변함없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진실한 사랑입니다.
어떤 경우는 믿음이 성장해도 초신자 때 만큼밖에는 마음을 드리지 않는데 '나는 변함없이 내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초신자 때보다 믿음은 3배가 성장했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과 정성은 1.5배입니다. 절대적인 수치는 높아졌지만, 비율로 보면 절반밖에 미치지 못하지요.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마음을 드리고 있으니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경우를 진실함의 잣대로 재어 보면 분량이 모두 미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진실로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달려왔다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못했고 반대로 내 유익과 안일함을 좇는 마음이 조금씩 틈탔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얼마나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는가'입니다. 비유를 들면, 여러분이 열 살 때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5킬로그램의 짐을 들 수 있는 힘이 있다면, 15세가 되면 더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힘이 있고, 20세가 되면 더 무거운 짐도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15세나 20세가 되어도 계속해서 5킬로그램의 짐만 지면서 변함없이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진실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힘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믿음이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명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면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명만 받아 놓고 힘써서 감당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무거운 짐을 함께 질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힘을 다해 함께 감당하면 훨씬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되는데도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질 힘이 없다.'고 하거나 '무거운 짐은 지기 싫다.'고 한다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3) 행함의 측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뵌 후 모든 슬픔과 고통이 사라졌고,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중심에 변개함이 없는 진실한 사랑이었기에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행함의 열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 곧 부활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정녕 최선을 다해 힘껏 해 나갔던 것입니다.
당장은 주님이 곁에 계시지 않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슬퍼하거나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이 후에 다시 주님을 뵐 약속을 믿으므로 기쁨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론 먹을 것이 없어서 주려야 했고, 유대인들이 핍박하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너무나 힘들어서 못하겠다.' 한 것이 아니라 주님 곁으로 가기까지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주님의 부활을 열심히 알렸던 것이지요.
정녕 주님을 중심에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진실로 변함없는 사람에게서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행함의 열매가 나옵니다. 전도의 행함, 성결의 행함, 기도의 행함, 영혼들과 영으로 인도하는 목자에 대한 사랑의 행함으로 반드시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너무나 기뻐하고 감사해하는데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자 첫사랑을 잃게 되는 것은 처음 행위가 언제부턴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계 2:4-5).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했으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기보다는 어느 때부턴가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또한 내 생각과 유익에 맞지 않는 어려운 일에는 더 마음과 정성을 드리려 하지 않고 힘을 다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라도 이런 마음을 돌이켜 매 순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을 택하여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첫사랑의 충만함 그 이상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중심에서 변함없이 사랑했고, 그 사랑을 진실한 행함으로 변함없이 나타냈기에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뵐 수 있는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장차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기쁨으로 담대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랑스런 주님의 신부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의 조건을 꼭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여러분의 것으로 이루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4-10 오전 1:33:08 Posted
2007-04-18 오후 5:36:4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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